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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년 11월 15일, 작은 캔자스 마을의 일가족이 하룻밤에 몰살당합니다. 누가 봐도 마을의 귀감이었던 클러터 일가의 죽음은 목가적 이상향에 가까운 홀콤 마을에 찬 물을 끼얹습니다. 대체 어떤 냉혈한이 그런 짓을 저지르며, 그런 인간들이 존재하는 세상에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트루먼 카포티는 6,000여장에 달하는 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사건 이전, 이후, 범인 체포 후 사형 집행까지의 여정을 샅샅이 그려냅니다. 보다 보면 다큐멘터리는 절대 공정적일 수 없다는 모 감독의 발언이 떠오릅니다. 제아무리 사실의 배열에 그칠지라도, 무수한 사실들 사이에 무엇을 배열하고 배열하지 않느냐, 어떻게 배열하는가는 필연적으로 작가적 의지가 반영됩니다. 나중에 보니 실제 사건 당사자들의 불만이 많더군요. 범인의 무덤에서 담당 형사와 피해자의 친구가 만나는 엔딩은 완전 창작이라고.


 뭐, 반드시 사실만이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카포티는 백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각각 인류학적으로 해석하며, 수많은 인간군상의 행동 양식을 건조하면서도 유려한 필치로 분명히 그려냅니다. 이 책은 트루 크라임 팟캐스트 (의 연장선인 꼬꼬무까지)의 시초로도 여겨지는데, 요새 팟캐스트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작가의 모든 관계자에 대한 인간적 이해에 있습니다.


 클러터 일가는 어떤 사람이었나. 가장 허브 클러터는 아기자기한 홀콤 마을의 주춧돌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독실한 종교인. 술과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고, 교회에서 새 입주민들의 적응을 돕기도 했다죠. 심지어 주 규모의 농민 협회 대표기도 했지요. 아내 보니는 지병과 우울증으로 10여년 간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딸 낸시는 교내 최고 인기인으로, 남자친구 바비와의 미래를 고민하던 청소년이었죠. 동생 케니언은 기차의 작동 방식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밤중에 팔다리가 묶인 채, 차례로 머리에 총을 맞고 살해당했습니다.


 클러터 일가가 참혹하게 사라지자, 그들을 우러러 보던 마을 사람들은 집단 우울에 빠졌습니다. 서로를 범인으로 의심하기도 했고, 바비는 여자친구를 잃은 것도 모자라 제 1 용의자로 심문을 당하기도 했죠. 마을을 뜨는 사람들도 있었고... 맨슨 일가가 히피 시대의 종말을 고했듯, 클러터 일가 살해는 고향이 안식처란 그들의 관념을 산산조각 내고 말았습니다.


 앨빈 듀이와 캔자스 경찰은 캔자스 가든 시티부터 뉴 멕시코까지 두 살인범을 추적합니다. 깜깜한 암흑을 실낱 같은 단서만으로 헤쳐 나가는 형사들. 장기 수사의 피로, 가중되는 책임감에 삐걱거리는 결혼생활까지. 일면식도 없는 외지인들이 24시간을 운전해 저지른 사건을 CCTV도 없던 1957년에 수사하는 모습을 보면 경악할 정도입니다. 가든 시티부터 멕시코까지 모든 전당포를 뒤져 케니언 클러터의 소형 라디오를 찾을 때면 감탄만 나오죠. 하지만 당연히 수사는 곧 막다른 길에 다다릅니다.


 그 때, 범인 한 명의 감방 동기였던 죄수의 익명 제보가 동앗줄이 되어줍니다. 새로운 단서를 통해 듀이와 캔자스 경찰은 끝내 리처드 히콕과 페리 스미스를 체포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100여 페이지가 남았습니다. 카포티는 이들이 체포되어 재판을 거쳐 사형에 이르기까지의 3년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범죄와 범죄 관련 미디어가 만연하는 요즘, 살인이 너무 간단히 소비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살인의 무게, 그 끔찍함을 잊기 쉬워진다 할까요. 우리가 뉴스에서 지나치는 피해자 A, B, C, D들이 어떤 사람이었나, 그 주변인들에게 얼마나 큰 구멍이 생겼을까를 매일 생각하다 보면, 세상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름이 붙은 살인은 무거워집니다. 이러한 무게는 범인들에게까지 적용됩니다.


 카포티는 살해 이전부터 도주 생활, 체포와 사형에 이르기까지 두 범인의 여정을 상세히 따라갑니다. 주모자이자 숙련된 범죄자인 리처드 히콕. 락스타를 꿈꾸지만 늘 소심하고, 한때 감옥에서 종교에 귀의하기까지 한 페리 스미스. 빠르게 큰 돈을 벌고 싶던 사이코패스와 얼떨결에 따라간 머저리. 하지만 정작 사건 당일, 폭주해 모두를 쏴 죽인 건 스미스 쪽이었다고 합니다. 낸시를 강간하려던 히콕을 말릴 정도로 심성이 올곧던 스미스가 왜 그랬을까요?


 재판 과정을 묘사하는 중, 카포티는 여러 정신과 의사들이 제출하려 했지만 기각된 소견서들을 드러냅니다. 히콕은 어릴 때 나름 모범생이었으나 교통사고로 인한 전두엽 손상으로 충동 억제에 이상이 생긴 환자일지 모르며, 스미스는 불우한 성장 환경과 반복된 학대로 권위자에 대한 반감이 발작적으로 표출되는 성향이 있다... 는, 각 여섯 페이지에 걸친 상세한 소견입니다. 물론 사정 있다고 봐줄 수는 없겠지만, 들어 보지도 않는 체제에는 문제가 있다고 저자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동정의 여지가 없는 히콕조차도, 그의 어머니 인터뷰는 심금을 울립니다. "전 어릴 때부터 춤이라면 사족을 못 썼거든요. 춤을 기막히게 추던 남자가 있었는데, 언젠가 같이 도망쳐서 보드빌 무대에 올라가자고 약속했죠. 다 애들 꿈이었지만... 그러다 월터와 결혼했어요. 월터 히콕은 춤을 추느니 죽을 양반이거든요. 춤이 좋으면 말이랑 결혼하지 그랬냐고 맨날... 그 후로 저랑 춤을 춰 준 사람은 리처드뿐였어요. 계속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얼마나 다정했는데요..."


 [인 콜드 블러드]는 끝내 인생의 아슬아슬함을 설파합니다. 모든 인생이 가치 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그 가능성이 짓밟히기가 너무도 쉽습니다. 예술을 사랑하고, 어려운 말 쓰며 으스대길 좋아하던 청년은 끝내 후회 속에 형장의 이슬이 되었습니다. 아동 학대, 가난으로 인한 교육 기회 좌절, 감옥에서 만난 나쁜 친구, 엄벌주의에 대한 두려움까지. 세상엔 한 사람이 살인까지 내몰릴 이유가 너무도 많습니다. 어쩌면 정말 냉혈(cold blood)한 것은 세상이 아닐까요.


 결말. 담당 형사 앨빈 듀이는 클러터 가의 죽음과 페리 스미스의 죽음 양쪽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때 낸시 클러터의 베스트 프렌드, 수Sue가 나타나 자기는 인생을 계속 살아갈 것을 예고합니다. 듀이는 이에 일말의 희망을 얻습니다.


 말했듯이, 둘이 무덤에서 재회하는 장면은 전적으로 작가의 창작입니다. 앨빈 듀이 본인(과 그 아들)은 이 책에 지어낸 게 많다고 까대더군요. 아무래도 카포티 선생은 세상에 분명히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냉혈한 것은 세상일지 몰라도, 우리는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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