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수면 아래에서 비가시적 질료들이 파편적으로 요동칠 때, 언어는 더 이상 의사소통의 매개가 아니라, 응결되지 않은 개념들의 부유물로서, 마치 실존 이전의 메아리처럼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 오히려 자아의 균열을 확대시키며, 그 균열 틈으로 무수한 기호들이 고르지 못한 톤으로 속삭인다. 내면은 더 이상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해체된 주체들이 서로의 흔적만을 참조하며 부유하는 거울의 뒤편이다. 그 거울 위로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발화되지 않은 수천 개의 음소로 이루어진 허구적 외침이며, 그 외침은 다시금 침묵으로 환원되기를 강요받는다.

창백한 시간의 가죽 아래로 흐르는 추상의 맥박은 끊임없이 의미의 궤를 벗어나며, 단어는 단어를 지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의 부재를 지시하는 기묘한 윤회(輪廻)를 반복한다. 고통조차 환유로 치환된 문맥 안에서, 감각은 철학의 반대편에 위치한 한 점의 무의식으로 퇴행하며, 그 무의식은 다시 언어의 부검대 위에 올려진 채, 자율적으로 자기 자신을 절단하고 봉합하는 과정 속에 침잠한다. 파열음은 곧 시적 질서의 사망 선고이며, 죽은 텍스트의 해부도는 그 자체로 독해 불가능한 생의 조롱이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는 손가락들이 허공을 긁는 소리는, 기호가 발화되기 직전의 전율을 불러오고, 그 전율은 공허를 가득 채운 채 결국 자기 자신의 뿌리로 자멸한다. 텅 빈 주어와 붕괴된 술어,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문법이 아니라 망상의 유사 구조이다. 이것은 문장이 아니라 구조화된 혼란이며, 그 혼란이야말로 유일하게 정직한 형태의 진술일 수 있다. 결국 의미는 생성되지 않는다. 다만 계속해서 생성되지 않는 중이라는 사실만이 존재하며, 그 존재는 다시 비존재로 곤두박질치며 거대한 언어적 낭떠러지를 무한히 미끄러진다.

이 모든 것은 단 하나의 목적도 의도도 결여된 채, 존재라는 가장 불순한 환상을 흉내 내는 조악한 퍼포먼스일 뿐이며, 그 퍼포먼스는 언제나 시작되지 않았고 동시에 이미 끝났다.




일본 여행갔을때 책방에서 기념품으로 산 에세이에 수록된 <의미가 되기를 거부한 것들>이라는 글인데 번역이 어색한지 해석이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