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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오늘날 내 존재를 구성하게 된 모든 것을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마 그것을 나를 위해서 만들어냈을 것이고 또 동일한 결과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강요된 상황이 매일 매순간 새롭게 나를 이끌어갔다. 그리고 질병들이, 결국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죽음에 이르는 질병들이 나를 하늘에서 이 안전과 무관심의 대지 위로 끌어내렸다.” (142p)

베른하르트의 자서전 5부작 중 2번째 장편에 해당하는 <지하실>은 1편인 <원인>과 마찬가지로 어딘가가 심하게 뒤틀린 성장소설이다. 성장 소설이라고 해서 꼭 일반적으로 “올바르다”고 규정되는 길을 가야 하는가? <지하실>에서 화자는 어느날 갑자기 김나지움으로 가는 것을 거부하고 사회적 쓰레기장으로 인식되는 세르츠하우스 주택단지의 지하실 식료품 가게의 견습으로 들어간다. 

자아의 형성은 공간에 의해 영향 받고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공간은 보편적이지 않다. 우리 모두가 학교에 간다고 하여 반드시 타인들과 똑같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지는 않듯이 공간은 각 개인마다 개별적인 관념으로써 기능한다. 화자는 김나지움 대신 “반대 방향”인 세르츠하우스 주택단지의 지하실을 선택한다. 김나지움은 사회적으로 올바른 공간으로 취급 받는데에 비해 세르츠하우스 주택단지는 소외된 자들이 공존하는 배척의 공간이다. 

<지하실>의 부제는 “하나의 탈출”이다. 여기서 탈출은 어디서, 그리고 누군가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 독자는 베른하르트의 소설 속 빈정거림과 노골적인 경멸을 통해 순수하고 개인적인 쾌감들을 맛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념과 체계들, 그리고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불쾌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내는 스타일은 아마 베른하르트가 유일할 것이다. 반복적인 일상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짐에 따라 인간은 그 일반적인 구조 속에 적응하게 된다. 그러나 베른하르트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이 구조의 경계에 서게 되고 마침내, 탈출하게 된다.


쓰다가 망해서 던진 글이긴한데 그냥 올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