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나 카레니나』 민음사 본을 완독하고, 심심풀이로 안나 카레니나 관련 논문을 찾아보는데,


평소 책 구매하기 전에 번역 추천에 집착했던 본인으로서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흥미로운 논문을 발견했던 것임..


교수님은 "6종(민음사, 문학동네, 펭귄클래식코리아, 더클래식, 열린책들, 창비)의 번역을 두고 이 지면에서 서술하는 내용은 어느 번역이 더 좋은가에 대한 평가도, 오역에 대한 단순 지적도 아니다." 라고 밑밥을 까시긴 하지만, 해당 논문을 읽다보면 알게된다.


6종 모두 교수님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중 1 종을 극혐하시는 듯 하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링크를 첨부한다.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592327

한국어로 읽는 <안나 카레니나>: 2017년 이후 독서계의 지형도와 새로운 번역의 가능성러시아연구, 2020, 30(1), 1www.kci.go.kr



하지만, 대부분 오 그런 논문이 있어? 하고 지나칠 것이 분명하기도 하고, 


내 개인적으로도 이 논문 읽고 느낀 바가 커서 논문 중요 내용을 요약해보고 이와 곁들여 내 개인적인 평가도 해보겠음.


번역본 6종은 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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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피그라프


(1) 원문


"Мне отмщение, и Аз воздам"

(톨스토이 형님은 주석을 달지 않았음)


(2) 6종 번역


민음사: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 주겠다.” 각주: “『로마서』 12장 19절의 일부. 10~21절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 (내가 본 민음사랑 좀 다른듯?)


문학동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각주: “성서에서 따온 제사. [...]” 『신명기』 32:35, 『로마서』 12:19 인용.


펭귄클래식코리아: 복수는 나의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


더클래식: 에피그라프 누락...


열린책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 주겠다. 각주: “이 문장은 신약성서의 다음 구절에서 인용된 것이다. [...]” 『로마서』 12:19, 『신명기』 32: 32~35 인용.


창비: 복수는 나의 것, 내가 되갚아주리라. 긴 각주: “많은 초고에는 ‘복수는 나의 것’으로만 되어 있었다고 한다. [...]” 『로마서』 12:19 인용.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중 관련 부분 요약 설명.


(3) 교수님 의견 요약

- 에피그라프는 소설 전체의 메시지를 함축한 키 프레이즈(key phrase)인 만큼, 번역에서 누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ㄷㄷ..)


- 오블론스키, 안나, 브론스키, 레빈, 키티 모두는 소설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내게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들 모두 안고 있는 죄의식의 고백에 다름 아니다. 인간이라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고,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면서 죄 없는 자로 남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행복해지자고 한다. 자신은 죄가 없기 때문에 불행해질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기본 논리이며, 인물 각자의 입장으로 들아가 볼 때, 죄는 실제로 없을 수도 있다. 죄를 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죄가 충분히 이해받고 용서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는 문장은 복수와 벌이 아니라, 용서와 화목에 대한 메시지로 읽어 마땅하다.


- 톨스토이의 경우, 중요한 것은 인간 마음속에서 울려 나오는 깨달음의 목소리이지 위로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목소리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톨스토이 소설은 성서적 진리라 할지라도 종교적 틀을 초월한 보편성의 차원에서 그 가치를 역설한다.


- 톨스토이의 긍정적 주인공들은 인간의 가치에서 신의 가치로 이어지는 사고와 인식의 사다리를 거치며 성장하게끔 되어 있다. 톨스토이는 그 점을 존중했고, 개개인의 경험과 깨달음에 가치를 두었다. 톨스토이의 에피그라프는 성서만의 문구도, 철학자만의 논지도 아니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목소리다. 그러므로 원작의 의미를 존중한다면, 원작 그대로의 각주 없는 '열린' 에피그라프가 더 적합할 수도 있다. (그래도 번역자들이 각주 넣는 게 나름 이유가 있다고 보시는 듯..)


(4) 개인적인 평가

-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에피그램이 있는지도 몰랐다...


- 에피그램 해석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는 수긍이 된다.


- 펭귄 본이 각주 없는 에피그라프가 적합하다는 교수님 취지에 부합하겠으나, 해당 에피그램이 용서와 화목에 대한 메시지로 해석된다면 "복수"로 번역되어 있는게 조금 아쉽다.


- 나같이 지식이 비루하고 성경도 안 읽어본 놈들한테는 친절히 설명해주는게 나쁠 것 없으니 각주가 있는게 좋은 것 같다.


- 소결: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책들 +3점

창비, 펭귄 +2점

더클레식 0점



2. 소설 첫 문장


(1) 원문


"Все счастливые семьи похожи друг на друга, каждая несчастливая семья несчастлива по-своему."


(2) 6종 번역


민음사: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문학동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펭귄클래식코리아: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더클래식: 행복한 가정은 모습이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열린책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창비: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들은 각각 나름대로 불행하다.


(3) 교수님 의견 요약

- 톨스토이의 문장에 빗대어 말하자면, 모든 번역자는 하나의 야심으로 이 문장을 번역하지만, 각각의 번역자는 나름의 이유로 번역에 실패한다. 원문의 완벽함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ㄷㄷ.. 하지만, 논문에서 번역자의 노고를 알아주시기는 한다..)


- 톨스토이의 복합 평문은 단순명쾌한 대조법으로 이루어졌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은 ‘все’ vs. ‘каждая’, ‘похожи друг на друга’ vs. ‘по-своему’로 쌍을 이룬 문장 요소들에 의해 구분된다. 


- 톨스토이의 첫 문장은 문장을 이룬 두 대구(對句)의 기본 원리가 통합(integration)과 분열(disintegration)의 이중성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 성공적인 번역의 핵심은 통합과 분열의 대비를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고, 그것을 얼마나 압축적으로, 톨스토이만큼 명쾌하게 서술하는가에 있다.


(4) 개인적인 평가

- 읽으면서 간지나는 문장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음.


- 러시아어 전공이 아니라서 원문의 완벽함을 느끼지 못해 한스러움.


- 톨스토이가 분열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확실한 것 같기는 함(예를 들어서, 안나의 두 번째(?) 가정은 안나의 딸이 입양됨으로써 결국 해체되게 되는데, 종국에 깨달음을 얻는 레빈과 반대되는 인물이 안나임을 고려하면 안나의 가정은 확실히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임).


- 펭귄을 제외한 나머지은 앞부분에서 '모두' 나 '다들' 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통합의 의미가 잘 드러난 것 같음.


- 뒷부분에서 분열의 의미가 잘 드러난 번역은 "제각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열린책들이 가장 낫지 않나 싶음.


- 소결:

열린책들 +3점

민음사, 문학동네, 더클래식, 창비 +2점

펭귄 +1점


3. 1부 30장 안나 남편의 귀


(1) 원문


“Ах, Боже мой! отчего у него стали такие уши?”


(2) 6종 번역


민음사: ‘아, 어쩜! 저이의 귀는 어째서 저렇게 생긴 걸까?’


문학동네: ‘세상에! 어째서 저이의 귀는 저렇게 생겼을까?’


펭귄클래식코리아: “아, 맙소사! 저이의 귀는 왜 저렇게 생겼을까?”


더클래식: ‘아, 그이의 귀는 얼마나 잘 생겼는지!’


열린책들: <어머나, 하느님 맙소사! 저이의 귀는 왜 저렇게 생겨 먹었을까?>


창비: ‘아, 맙소사! 왜 귀가 저 모양이지?’


(3) 교수님 의견

- 브론스키와 사이에 열정의 싹이 튼 안나는 역에 마중 나온 남편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 


- 남편의 귀를 ‘잘 생겼다’고 한 D 번역(더클래식)의 경우는, 톨스토이 소설을 전혀 모른다는 혐의 외에는 달리 설명이 불가능한 오역이다. (ㄷㄷ.. 씨다씨..)


- 톨스토이 원문을 정확히 읽는다면, 문제는 귀 자체의 이상함이라기 보다 그것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 안나의 눈에 있다. 사실 귀(또는 그 무엇이 되었든)처럼 너무도 익숙한 나머지 평소 봐도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 중에는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다가올 형상들이 많은데, 안나에게 바로 그 같은 시선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 톨스토이는 안나로 하여금 ‘귀가 왜 저렇지?(отчего у него такие уши?)’ 대신, ‘귀가 왜 저렇게 된 거지?(отчего у него стали такие уши?)’라고 묻게 만들었다. 


- 대체 그사이 남편의 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의 질문은 ‘대체 그사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의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심리 묘사의 모범이 되는 그 구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인데, 대개의 번역은 간과해버린 듯하다.  (ㅠㅠ)


(4) 개인적인 평가

- 원문 직역을 챗 GPT로 시켜봤더니 「стали = 되었다」라고 명확히 짚어주었다. 교수님 의견이 확실히 맞는 것 같다.


- 해당 부분이 인상깊은 부분이기는 했지만, 교수님이 짚어준 것처럼 그렇게 심오한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교수님이 지적한 것처럼 제대로 번역이 되었다 하더라도(ex. 아, 어쩜! 저이의 귀가 왜 저렇게 되어 버린거지?) 교수님이 짚어준 심오한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을까?


- 소결:

더클래식은 오역이 분명하므로, 0점.

교수님이 지적한 시선의 변화가 제대로 묘사된 번역이 없다는 점에서 더클래식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번역 +1점. 



4. 프루프루의 척추를 박살 낸 브론스키(2부 25장)


(1) 원문


но в это самое время Вронский, к ужасу своему, почувствовал, что, не поспев за движением лошади, он, сам не понимая как, сделал скверное, непростительное движение, опустившись на седло.



(2) 6종 번역


민음사: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브론스키는 끔찍하게도 말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 자신이 안장 위에 내려앉으면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스스로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문학동네: 그러나 그 순간 브론스키는 끔찍하게도 자기가 말과 움직임을 같이하지 않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으며 용서할 수 없는 동작을 한 것을 느꼈다.

그는 너무 빨리 안장에 내려앉아버린 것이었다.


펭귄클래식코리아: 그러나 바로 그때 브론스키는 말의 동작을 따라잡지 못했음을 느끼고 경악했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안장에 내려앉으며 엄청난 실수를,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더클래식: 그런데 그때, 브론스키는 말의 움직임에 리듬을 맞추지 못한 자신이 착지를 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열린책들: 그러나 바로 그때,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브론스끼는 말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 채 말안장에 내려앉으며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고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다.


창비: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브론스끼는 크게 경악하며 자신이 말의 동작을 따라잡지 못했고,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자신이 안장에 내려앉는 몹쓸 짓, 용서 못할 동작을 한 것을 감지했다.


(3) 교수님 의견

- 브론스키의 낙마는 장애물을 뛰어넘던 말의 흐름이 저지되는 순간 일어난다. 점프와 함께 공중에 떠올라 있어야 할 몸이 반대로 안장에 내려앉음으로써 말과 기수 사이의 연결이 깨지고, 폭력적인 충돌의 충격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프루프루의 등뼈가 부러지는 것은, 톨스토이가 소설 도입부에서 말한 행불행의 원칙 그대로, 두 존재의 움직임이 서로에게서 분리되며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이다.


-  사고 직후 브론스키는 두 갈래의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즉각적이고도 본능적인 폭력 행위(그는 쓰러진 말의 복부를 발로 차며 고삐를 당긴다)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뼈아픈 인식(“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이 그것이다. 


- 원문에 따르면, 브론스키는 ‘자신도 모르게(сам не понимая)’ 실수를 저질렀다는 바로 그 사실에 끔찍함을 느낀다(кужасу своему, почувствовал, что...)고 되어 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행동에 대한 때늦은 인식(“Ааа! что я сделал!”)이 브론스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책하게 만드는 것이다(“И своя вина, постыдная, непростительная!”). 그러나 그 깨달음은 언제나 뒤늦게 오며, 또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데 브론스키의 비극이 있다.


- 브론스키는 폭력과 자책 모두의 능동체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순간적으로 자책하는데, 쉽게 분출하고 쉽게 후회하는 브론스키의 가벼운 능동성은 성찰적 인간의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 브론스키의 인간적 미성숙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문장에 들어 있는 두 가지 삽입 부사구 – к ужасу своему, сам не понимая как – 사이의 종속 관계가 정확해져야만 한다.

‘끔찍함’과 ‘이해할 수 없음’은 브론스키가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느끼는 등가의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 승마 사고 장면은 브론스키의 그 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서, 긴 복문으로 이어진 까닭에 번역이 간단치 않다. 번역자들은 대부분 복문을 두 문장으로 짧게 나누어 문제를 해결하거나, 한 문장으로 옮기더라도 번역의 매끄러움을 위해 상황의 인과 관계를 흐려버린 경향이 있다.


(4) 개인적인 평가

- 이부분을 읽을 땐 'ㅠㅠ 불쌍한 프루프루' 이러고만 지나갔었는데, 교수님이 짚어준 의미가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 교수님 의도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위 내용을 종합해서 번역해보자면, 「그런데 바로 그 때, 브론스키는 말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안장에 내려앉으며 형편없고 용서할 수 없는 동작을 했다는 것에 끔찍함을 느꼈다.」 정도가 될까? 근데 이렇게 번역 됐어도 'ㅠㅠ 불쌍한 프루프루' 이러고 지나갈 듯 ㅠ.


- 민음사, 문학동네, 펭귄, 더클래식은 복문으로 번역되지 않아서 ‘끔찍함’과 ‘이해할 수 없음의 종속 관계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은 것 같다.


- 열린책들, 창비는 복문으로 번역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번역되어 있어서, ‘끔찍함’과 ‘이해할 수 없음의 종속 관계가 원문에서 의도한 것과는 오히려 반대로 읽히는 것 같다.


- 소결

민음사, 문학동네, 펭귄, 더클래식 +1.5점

열린책들, 창비 +1점


5. 결론

- 위에서 살펴본 일부분의 번역으로 각 판본의 번역 우위를 가린다는 것은 말도 안되므로, 여기서는 명확히 순위를 가리지는 않겠다(궁금하다면 직접 계산해볼 것)


- 논문을 읽으면서, 과연 번역이 제대로 되었더라도 내가 그걸 알아챌 지식이 없었을 것 같다는 부끄러움이 가장 컸고, 그 동안 번역에 집착했던게 다 무슨 소용이었나 하는 허무함도 느꼈다.


-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그 책이 완전히 내 것이 되도록 공부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지, 번역에 있는 것은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