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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어느 정도 하고나면 평생을 곁에 두고 싶은 책이 하나쯤은 생기게 된다. 나에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바로 그런 책이다. 삶이 과분히 무겁게 느껴질 때나 반대로 너무나도 가벼워서 현기증이 날 때면, 나는 곧장 이 책의 아무 페이지를 펴곤 한다. 그렇게 가만히 쿤데라의 유머 속에서 한바탕 웃고 나면 금세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테레자와 토마시가 이루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변증법은 사랑 혹은 그들의 정치적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탈로 칼비노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 '피할 수 없는 삶의 무거움'에 대한 씁쓸한 확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공통되는 인간의 상황에 대한 확인이다." (이탈로 칼비노 문학 강의)
칼비노의 말대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곧 우리들의 이야기다. 무거운 책임에 짓눌리기도 하고 가벼운 무책임 속에서 허우적대는 그런 이야기.
가벼움과 무거움을 오가는 시계추에 불과한 인물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씁쓸하지만, 또 편안함을 준다. 그 무엇도 완전하지 않고 덧없이 흘러간다는 걸 다시금 일깨워주니.
하지만 이 책이 단순히 허무적인 감상을 주는 소설은 아니다. 사람은 한없이 가벼운 존재나 무거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양 극단 사이,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어디 즈음에 있는 게 우리다.
사람은 견딜 수 없는 '키치'에 빠지고 끝없는 모순을 마주하면서도 끝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비록 테레자의 삶에도, 토마시의 삶에도, 사비나의 삶에도 정답이 없다 한들 그 모든 게 무슨 상관인가? 무거움을 짊어지면서도 순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밀란 쿤데라_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슬픔은 형식이고, 행복은 내용이다. 마지막이라는 사실은 형식에 불과하고, 우리가 함께한다는 사실은 내용이다. 이 문장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토마시는 진정으로 그녀의 아픔에 공감하고, 테레자는 더 이상 질투에 빠지지 않기에.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기쁨을 공유할 수 있다.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끝이 허전해 보여도 과정이 허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쿤데라의 소설 속 인물들이 전부 좌절을 겪고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끊임없이 인물들을 가치의 이중성에 몰리게 하는 이유는 단순히 허무주의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에세이 <커튼>에서 밝혔듯이 소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춰주기 위함이다. 비록 그의 소설이 이상주의에 대한 회의정신만 팽배해 보여도 그 이면에는 삶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 잘 생각해보면 쿤데라는 항상 소설 마지막 장에 순간의 아름다움을 남겨놓았다. 어쩌면, 쿤데라는 우리가 끝내 모순을 딛고 나아가길 원했던 게 아닐까 싶다.
"도로는 끊임없이 경적을 울리는 차들로 붐볐다. 오토바이들은 보도 위까지 올라와 보행자들 틈새로 길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나는 아녜스를 생각했다. 처음으로 그녀를 상상한 게 벌써 이 년 전이다. 그때 나는 클럽의 긴 의자 위에서 아베나리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내가 포도주를 한 병 주문한 것은 그래서였다. 나의 소설이 끝났기에, 첫 발상이 이루어진 곳에서 이를 자축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렸고, 성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아녜스는 물망초 한 가지를, 물망초 오직 한 송이를 사고 싶어 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아름다움의 마지막 자취로서, 그것을 두 눈 앞에 간직하고 싶어 했다."
-밀란 쿤데라_ 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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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는 문장 진짜 너무좋음 ㅋㅋㅋㅋ 미문으로 유명한 대부분의 말보다 난 저게 더 좋더라
마음을 울리는 문장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