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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고 보통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유적 의미로 컴퓨터가 자신의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한다거나, 직접적으로 컴퓨터가 인큐베이터를 관리했다는 등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컴퓨터' 기계를 상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SF 소설 <듄>에는 인간 컴퓨터 멘타트가 나오고, 정규 교과 과정에서 주판이나 로그표 같은 계산 보조 기구를 접할 일이 많지만, 이제 우리는 사람이 단순한 계산 이상의 진지하고 복잡한 계산을 직접 한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워 한다. 컴퓨터, 즉 계산수는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수요가 많은 직업이었다. 실제로 손으로 숫자를 써가며 계산을 해나가던 계산수는, 기계 계산기의 등장과 함께 이를 적극적으로 써나가며 프로그래머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빠져나가기도 하다가, 휴대용 계산기 및 컴퓨터가 완전히 자리잡은 뒤에는 아예 사장된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여기에서 기술 발전이 부르는 노동 도태를 볼 수도 있겠지만, 캐서린 헤일스와 내 관심사는 그쪽은 아니다. 그 말고도 더 깊은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요소가 많다. 계산이라는 디지털 과정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관해서 특히.



계산은 세상과 점점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일부는 세상 자체가 계산으로 구성되어 있다고도 하지만1)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계산이 세상의 많은 요소를 충분히 모사할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계산 과정이 세상에 개입해 더 많은 계산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세상은 더욱 더 계산 친화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그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계산을 잘 할 수 있는 새로운 수행적 언어, 코드를 만들기. 이 코드를 위해 바깥의 정보를 잘 선별하여 저장하기. 그 제작과 저장 과정 중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소통이 잘 일어나도록 올바르게 전송하기. 이 세 요소는 순전한 디지털 세상에서도 중요한 요소이기에 아날로그 없이도 다룰 수 있지만, 그 바깥에서 아날로그와 상호작용하며 어떻게 이를 바꿔놓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헤일스는 실제로 좀 더 은밀한 수준에서, 디지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아날로그에 대한 생각의 기저를 흔들어놓는지에 주목한다. 그 분석 대상이 대체로 문학 텍스트로 한정되는 게 약간 아쉽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1부 3장 [정보의 꿈]에서는 헨리 제임스의 <전신 창구 안에서>, 필립 K 딕의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제임스 팁트리의 <플러그에 꽂힌 소녀>, 세 소설을 통해 희소성 없는 정보와 희소성 가득한 현실 사이의 연계가 어떻게 변화해나가는지를 분석한다. 원시-사이버스페이스라고 할 수 있을 전신 창구에서 전산 정보는 그저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도청 가능한 정보로 제공될 뿐이었지만, 이 정보의 세계는 <파머>에서 서서히 확장되며 인터페이스에 연결된 사람이 경험하는 세상과 그 바깥의 세상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반면, <플러그에>에서는 현실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정보 자체가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에 권력의 초점이 맞춰진 현실이 펼쳐진다. (당연하게도 <플러그에>는 원시-사이버펑크 소설로 꼽히곤 한다) 여기서 핵심은 정보가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 자체가 현실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며, 정보는 안에서부터 현실을 좀먹는다.



저장하기를 다루는 2부는 이 점을 좀 더 깊게 파고들며 우리가 무엇을 저장하기 위해 현실에서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하는지의 시각이 변하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책을 디지털화하기 위해 기록된 문자 뿐 아니라 자간 같은 인쇄 형식까지 통일하는 시도가 책이라는 인쇄 매체에서 어떻게 선별되었는지, 암호화를 다루는 소설 속 코드가 어떤 매체로 저장되느냐에 따라 어떻게 취급이 달라지는지, 하이퍼링크 문학에서 서로 연결되는 글쓰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 가장 고약한 것은 Mark Z. Danielewski가 쓴 악명 높은 메타픽션 <House of Leaves>인데, 가상의 글에 대한 글로 겹겹이 쌓여 몇 층의 주석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성과 별개로 이 책은 온라인에서 배포된 글의 2판으로 소개되거나, 밀로라드 파비치의 <하자르 사전>처럼 서로 다른 색의 다른 텍스트가 들어가 내용이 다른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그 진상을 이해하려면 서로를 참조해야 한다는 말이 나돌곤 한다. (그리고 이 수행은 이제는 좀 더 고차원적인 게임 구현에 녹아들어 좀 더 상업적이고 전문적인 비주얼 노벨 게임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3부 전송하기에서 종합되는 방식은 상당히 괴상하다. 여기에서는 본격적으로 포스트휴먼 비평답게 인간성, 주체성, 현실이 안에서부터 디지털로 조각나는 과정을 그리는데, 사람의 주체성이 그보다 더 기계적인 행위성으로 덮어씌워지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가면>이나 오직 단순한 규칙에 의해서 실행되고 있지만 이를 보면서 동물 사이의 서사를 상상하게 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세계, 그리고 그 둘이 종합되듯 인간성, 주체성이 우주적인 영향을 주는 동시에 우주의 구조가 인간이 그 스스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기계적인 존재라는 걸 밝히는 그렉 이건의 <주관적 우주론> 3부작을 재료 삼아 매우 일상적인 개념과 서사가 어떻게 인간적인 관점으로부터 완전히 탈색된 채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송이 가능하다는 믿음은 아날로그를 디지털화할 수 있도록 '열화'시키기보다는 변형시키는 쪽에 가까우며, 그 디지털 속에서 아날로그의 다양성이 창발한다.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요약"해낼 수는 없지만, 디지털 계산이 아날로그 물질만큼 가득 쌓여 그에 상당한 기능을 이뤄내는 것은 가능하다. 둘 사이의 전송에는 위계 관계가 없으며, 그보다는 서로 독립적인 체계 사이의 교류 속에서 서로가 서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점차 파악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사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감상을 따로 쓸 것도 없었다. 전체적으로 그 논조에 동의한다. 디지털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으며, 그렇다고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완전히 해체해낼 수 있을 정도로 디지털의 구현체가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질 일도 없을 테다. 대신,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결합부는 한때 컴퓨터가 인간이었다가 전자 회로로 점차 이동되었듯, 지금으로서는 짐작하기도 힘든 곳까지 이동하게 될 테다. 그게 일반적인 사람에게 살기 좋은 변화가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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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모든 생명체는 일종의 계산 기계/자동자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매스매티카의 제작자로 널리 알려진 스티븐 울프럼은 <A New Kind of Science>에서 콘웨이의 생명 게임 같은 극히 미세한 규칙으로 구성된 자동자만으로 온갖 유기체가 구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시각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에서 이미 제시된 바 있다. 마음을 어떤 기능들을 구현해낼 수 있는 보편적인 기계로 바라보는 기능주의 심리철학은 튜링기계로서의 마음의 비유를 자주 사용하며, 구현 물질이 다르다는 것만 제외하면 단순한 비유로만 쓰는 건 아닐 것이다. 좀 더 급진적으로는 모든 물리 기제가 일종의 계산기이며, 세계 전체가 하나의 계산을 수행하고 있는 시뮬레이션이라고 보는 시뮬레이션 우주론이 있다. 여기까지 오면 이게 진지하든 아니든 어차피 형이상학의 영역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