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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 줄 알았으나 집 한구석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시집을 이제야 읽었다. 아마 전에 읽은 시집 중 하나를 쓴 게 이 시인이라면 그는 무척 겸손하고 아닌 듯하지만 타고난 예술인이 분명하다. 시작부터 기대하게 만든다.

 차분하고 잔잔한 것 같으면서도 울림이 강하다. 상상 이상의 필력이다. 요즘 젊은 시인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깊이를 선사한다. 시대의 탓일까 아니면 세대의 탓일까. 이 시기의 정서와 시를 이제는 찾기 힘들어 씁쓸하다. 

 대부분의 시가 골고루 좋다. 이런 시집을 지금에라도 접하는 건 축복이다. 명작은 세월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다. 간만에 이런 좋은 시집을 접하게 되어 기쁘다. 21세기 기준에서 본다면 운문보단 산문에 가까운 시도 여럿 있긴 하다. 그래도 쓸데없이 어렵고 난해하게 쓰는 것보다는 낫다.

 시집이 출간된 1980년대 분위기가 녹아 있는 것도 특징이다. 참여문학 요소도 강하다. 있는 그대로 표현해 호소력을 갖추고 있다. 신군부 시절 나오기 힘들 법한 사회 비판적인 시들이 보여서 놀랍다.

 시인은 시로 투쟁한 것 같다. 목숨 걸고 말이다. 본받고 싶다. 그 용기와 정신을. 나라면 겁 먹고 이렇게 시를 쓰지 못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