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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킹 라오>를 추천받으며 (a) <고목탄>스러운 50-60년대 인도 달리트 대가족 이야기 (b) 유사 잡스-빌게이츠-머스크 이야기 (c) 2020년대의 미국 리버럴이 상상할 법한 미래 세계 이야기, 세 가지가 제대로 결합되지 않은 채 괴상하게 접목되어 있는 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그렇다. <한밤의 아이들>, <양철북> 같은 느낌으로 3대 이상 이어지는 가문 내력을 읊는 문제적 서술자와, 그 서술자의 기억 속에 있는 자신의 불굴의 IT 기업인 아버지 킹 라오의 성공 신화와, 그 성공 속에서 알고리즘 기반의 기업 국가 체계가 완전히 자리잡은 현재의 이야기를 병행해 나가는데, 이 셋이 킹 라오라는 인물을 통해 묶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 큰 공통점은 없다. 여기에 중간중간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을 비판하는 페1미니즘적 시각이 인도, 미국에서 돌출되고, 이따금 영문 모를 역사적 정보가 삽입문으로 들어가 있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꽤나 난잡한 글이지만, 왜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솔직히, 난잡한 글이 난잡하지 않은 글보다는 더 낫다.



<불멸의 킹 라오>의 괴상한 점은 이 세 요소가 사실 하나씩 분리되어 쓸 수 있을 만한 내용이라는 점에 있다. 브라만 가문의 시종으로 늘 일하던 달리트 가문이 어떻게 브라만 가문의 쇠퇴에 힘입어 부유한 농장 가문이 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어떻게 친척들이 서로 경쟁하고 다투며 가문의 후계자가 될 킹 라오를 둘러싸고 여러 사건이 있었는지를 따로 보면, 아마 아마 이 이야기는 정치적 갈등이 본격적으로 가문을 찢어놓지 않은 <한밤의 이야기>1)가 될 수 있을 테다. (아마도 IBM에서 따온듯한) "컴퓨타"라는 대규모 컴퓨터 회사에 맞서 (매킨토시가 떠오르는) 초소형 컴퓨터를 제작해 신규 시장을 개척하고 소프트웨어 혁명을 이끌다가 (빌 게이츠를 연상시키듯) 미국을 포함해 전세계의 경제/사회/문화 자체를 통제할 수준의 영향력을 떨치다가 (소위 페이팔 마피아처럼) 시스테딩으로 미국을 협박해 대규모 민영화 붐을 재차 일으키는 이야기는 아마 제목처럼 <불멸의 킹 라오>에 가장 어울릴듯한 스토리라인이 됐을 테다. <대량살상 수학무기>가 폭로하는 알고리즘 기반 디스토피아2) 속에서 기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채 망각하고 이를 파괴하거나 막을 방법을 찾지만 그 자체가 알고리즘 기반 세계의 한 '라이프스타일'로 포용되는 것으로 그치는 "엑스"의 이야기는 최근 나온 <광장의 역설>이 보여주듯 아랍의 봄, 월가 점령 시위 등에 실망한 리버럴이 그대로 공명할 듯한 사회 르포 기후 SF가 될 법하다. (물론 그랬다면 이 소설을 읽진 않았을 테지만)



덕분에 "라오 가문은 쉬지 않는다"는 킹 라오의 말이 다소 애매하게 소설의 중심을 차지하려 애쓴다. 쉬지 않는다는 것이 한때는 철저한 카스트 제도 속에서 나름의 성공 신화를 이끌어 보려다가 결국 몰락하는 가문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어떤 사회적 출신도 신경 쓰지 않고 능력을 토대로 노력만 하면 저 위까지 오를 수 있는 무한한 희망의 아메리칸 드림을 설명하는 표어가 되기도 하며, 이 쉬지 않고 계속 개인을 가능한 한에서 최대한 혹사시키려고 하고 여기에 조금이라도 반발하면 그 자체로 이 개인을 사회적으로 격하시켜 자연스럽게 도태시키는 거대한 국제 체제의 선동용 슬로건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라오 가문을 위해 제대로 대가를 받지 못하고 혹사당하던 여러 여성들을 무시하듯, 라오 가문의 후계자로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딸 아테나가 그 모든 절규를 가볍게 무시한 채 단 한 번도 이들에게 동정이나 공감을 표현하지 않고 오직 킹 라오에게만 애정과 노력을 기울이며 속으로 생각하는 인생 신조이기도 하다.



가장 아쉬운 점은 역시 이 탈-국가적 IT 영웅담 이야기에서 SF 국제 체제로 도약하는 과정일 텐데, 체제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 대표 "불멸의 킹 라오"의 이야기가 스티브 잡스에서 빌 게이츠로 넘어가며 우리에게 익숙한 실제 컴퓨터 역사를 다룰 때와는 달리, 이것이 단순히 스마트폰이 세상을 잠식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국가 행정에 침투하고 인간 의식을 다루는 "하모니카", "클라리넷"으로 넘어갈 때에는 그 도약과 묘사가 다분히 애매하다. 아마 이건 저자가 실제로 IT 저널리스트로서 경력을 쌓은 탓이기도 할 텐데, 창고에서의 성공과 테크 기업의 쇼 비즈니스에 능통해 굳이 너무 세부적인 묘사 없이도 현실성-혹은 핍진성-을 잘 살릴 수 있었던 성공담 이야기와 달리 미래 기술과 엑스의 이야기는 그리 흥미롭지도, 설득력 있지도 않다. (사실, 엑스의 코뮌은 자기들도 전세계 "주주"들의 세계가 그렇듯 기술을 사용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것처럼 단순히 현대 기술 체계에 기생하는 주변인들로만 보이기도 한다) 같은 SF에서 예를 들자면,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보다는 <크립토노미콘>에 가깝다고 할 만큼 역사성이 강하고, 미래 지향성이 약하다.



하지만 아마 이 정도가 내가 현대 SF에서 기대하는 글이 아닐까 싶다. 극도로 난잡하고 정돈되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더욱 더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는 세상에 대한 예측을 내려놓고 어디까지나 픽션의 재미 측면에서 현재를 외삽하며, 그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기대가 모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배반당하고 도저히 해피 엔딩이라고 보기는 힘든 방식으로 끝나는 개인의 서사까지.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 형식이 소설보다는 게임을 통해 더 잘 구현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소설로도 그리 어려운 건 아닌 듯하다. 귀신처럼 널뛰기하는 하이퍼링크와 메타픽션의 형식적 장난보다 그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난잡한 무력감의 마력이 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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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에서 먹히는 해외 이민자 출신 걸작의 스테레오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정말 너무 떠올라서 한번씩 언급하지 않고선 도저히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눈에 밟힌다. 형식 자체는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서 처음 제시된 것 같은데, <백년의 고독>이 여기에 냉전 독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신화성을 부여하고 <한밤의 아이들>이 보다 강렬한 디아스포라 연대감을 강조한 뒤로 아예 일종의 장르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미들섹스>는 여기에 젠더를 섞었고, <불멸의 킹 라오>는 IT를 섞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서술자의 비중이 가장 높아서 킹 라오와 그 딸 아테나의 이야기는 이 틀에서 또 벗어나 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2) 중국에서 개개인을 다방면에서 평가하며 SNS의 글까지 평가대상에 포함하는 세서미 크레딧이 그 악명과 함께 인터넷 밈으로 유행한지도 5년이 넘었다. 인터넷 인프라가 잘 깔려 있는 도시 시민이 주 타겟일 것을 생각하면 꽤나 유용하게 쓰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긴 하는데, 이것이 한 국가만의 일탈이라기보다는 세계적인 흐름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현대 사회의 체계가 과연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휴대폰을 비롯한 온갖 생활 흔적이 실제로 추적되면서 개개인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관심을 끌어다오는 암묵적인 방식-솔직히, 이것도 폭로된 이후에도 너무 노골적이라 피부에 와닿을 때가 많다-과 명시적인 신용 체계 도입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 간극이 빠르게 좁아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