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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혹은 에스파냐)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흔히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고 불린다. 정신나간 한 노인의 기행과 모험으로 잘 알려진 이 소설은 탄생 이후 대문호들로부터 지속적인 찬사를 받았으며 오늘날의 세계적인 작가들이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소설"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 부르기엔 돈키호테 이전에도 데카메론이나 가르강튀아 연대기와 같은 산문 형식의 작품들은 존재했고(전자의 경우는 참작의 여지가 있으나 후자의 경우는 아예 소설이라 봐도 무방하다) 저 멀리 동쪽의 섬나라에서는 돈키호테보다도 몇 백년 이전에 근대 소설을 창작했다는 사실은 무시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어째서 돈키호테가 최초의 근대 소설이 되는 것인가? 어째서 모든 소설의 시작점은 돈키호테가 되는 것인가? 무엇이 이 소설을 위대하게 하는가?

근대 이전까지 사람들은 신과 같은 지고한 존재들의 판단에 자신들의 삶을 맡겼다. 이러한 존재의 판단 아래 인간은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이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시대는 근대로 접어들게 되었고 삶의 판단 주체는 신에서 인간에게로 넘어오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근대의 탄생이라 하면 데카르트를 통해 이루어진 인간 이성의 부각을 그 시작으로 한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를 기반으로 우주 앞에 선 채 만물을 이해하는 인간의 태도를 발견했고 이렇게 촉발된 행동 양식은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적 사고방식은 20세기를 넘어서면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인간의 이성 앞에서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과학과 기술을 진보시키며 인간 주위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는 증가시켰으나 정작 자신들의 삶의 세계에 대해서는 오히려 혼란만을 가중시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법, 사회 제도, 과학기술과 같이 인간 삶에 풍요와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도구들은 역으로 인간을 붙잡고 사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성을 통한 행동들이 사람들을 오히려 삶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현대인의 삶의 비극성에서 소설은 자신의 역할을 발견한다.

약 400년 간의 소설사의 기간 동안 소설의 목표는 이성이 신경쓰지 않은 삶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런 소설의 의의는 인간이 자신의 이성에게서 신뢰감을 읽었을 때 더욱 잘 부각되었다. 우리는 사회의 질서를 위해 법을 제정하고 여러 기관들을 세웠으나 그러한 관료제가 우리의 목을 조르게 될 줄울 누가 알았겠는가. 사회 질서를 위한 노력은 오히려 우리를 조종하는 거대한 질서가 되었다.

카프카는 그런 현대 사회의 단편을 어떤 사회학 이론보다 섬뜩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면서 자유가 무엇인지, 법이 무엇인지, 관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성은 더 이상 답을 알려주지 못하고 그저 애매한 상황으로 남긴다.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포착한 자가 가장 모호한 방식으로 이를 드러낸다. 카프카의 이러한 소설적 특징은 바로 우리 삶의 모호성 그 자체에서 연유한다. 이러한 삶의 비명료성은 근대를 시작할 때 그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딱 한 사람을 빼고 말이다.

돈키호테의 모험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돈키호테의 생각에 따라 풍차는 거인이 되고 대야는 투구가 된다. 이전의 인간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신들과 요정들의 신비가 가득한 세계는 절대적이고 명확한 모험을 선사했고 언제나 약속된 결말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우리의 돈키호테는 더 이상 그런 모험을 떠날 수 없다. 자유는 보장되어있으나 명료하지 않은, 모든 것이 상대적인 모험이 우리의 돈키호테가 추구할 수 있는 목표이다.

모든 것이 애매하고 주관적인 모험,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결국 돈키호테가 떠나는 모험은 우리의 삶을 함축해낸다. 이성이라는 불빛 하나로 세계와 삶을 판단하는 인간의 모습은 돈키호테와 닮아있다. 돈키호테의 모험은 다른 무엇이 아니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며 비명료하고 애매모호한 바로 우리의 삶 그 자체이다.

신이 떠난 인간의 삶은 더 이상 명확하지 않고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소설에서 이를 묘사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에서 돈키호테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돈키호테는 근대를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딪는 인간의 모습을 처음으로 담았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위대하다. 이후 몇백년간 이어질 소설사의 토대가 된 이 작품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 몰랑 이제 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