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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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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최근에 읽은 스탕달의 <적과 흑>,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주인공인 청년이 야망을 품고 파리로 온다는 공통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으며 <감정 교육>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소설을 위의 두 책과 작가를 비교해가며 읽어나갔으며 <감정 교육>을 다 읽은 지금, 위의 두 소설들에 대한 <감정 교육>의 차이점과 나의 감상을 솔직하게 풀어나가려고 한다.


 플로베르는 스탕달의 문장을 싫어했다. 스탕달이 강렬하고 압축적인 문체로 사물과 배경을 묘사하고 인물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면, 플로베르는 현미경처럼 사회와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인물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풀어나갔다.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를 5년 동안 썼지만, 스탕달은 <파르마의 수도원>을 52일만에 완성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발자크는 사실주의 소설의 포문을 연 작가이며 플로베르에게 큰 영향을 끼친 소설가지만, 플로베르는 발자크와 달리 상황이나 인물을 묘사할 때 객관적으로 담담한 문장으로 이어나갔으며, 인물의 개성을 최대한 표출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마담 보바리>나 <감정 교육>에서 보트랭의 사회의 진실을 파고드는 예리한 말솜씨와 죽음을 앞둔 고리오 영감의 가슴에 사무치는 장광설은 찾아볼 수 없다. 로크 부인이나 뒤사르디에의 죽음은 인물들과 소설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당브뢰즈가 죽자 그의 부인은 결혼 생활이 따분했다며 그를 조롱한다. 죽은 노인 당브뢰즈와 프레드릭의 어린 아이는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육체 덩어리에 불과하며 플로베르는 조소한다.


 쥘리앵과 외젠은 목표를 위해 사랑했지만(물론 후반부에 쥘리앵은 자신이 진심을 깨닫지만) 프레데릭의 아르누 부인에 대한 사랑은 그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이 사랑이 순수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녀에 대한 감정이 상할 때마다 다른 여자를 품는다. 그의 사랑은 허영심의 발판이다. 이런 행위는 부인과 자신 둘 다에게 고통을 주는 사도마조히즘적인 행위이며 프레데릭의 사랑을 더욱 집착적으로 만든다.

쥘리앵과 외젠에 비해 프레데릭의 목표가 다소 모호하게 보이는 것은 이 소설의 주 배경이 1848년 혁명과 관련되어 보인다. 1848년 혁명은 유럽 전역에 펼쳐진 광범위한 운동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프랑스에서는 공화적이 수립되었으나 혼란 속에서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가 되었다.


 플로베르는 이러한 정치적 흐름 속의 사회와 인물들을 내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혁명의 중심이 되어야 할 부르주아와 노동자들은 서로 적대하기 바쁘다. 윗사람들은 자신들의 자리 보존과 물욕을 위해 철새짓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플로베르는 이들을 나라도 팔아먹을 인간들이라며 강하게 비난한다). 정치 집단들은 서로 자기 할 말만 늘어놓으며 대책따위는 세우지 않는다. 정치에 무관심한 이들은 정치인들을 욕하며 연극이나 오페라를 본다. 광적인 공산주의자 세네칼이 배신자가 되고,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팰르랭이 사진사가 되는 것은 사회의 혼란과 허무주의의 한 표현이다. 이런 사회에서 프레데릭과 데로리에로 대표되는 청년 계층은 절망감에 빠져 야망의 뜻이 꺾일 수 밖에 없다. 쥘리앵의 당당한 죽음과 외젠의 파리에 대한 투생심은 이제 사라졌다. 남은 것은 학생 때 매음굴에 갔었던 일을 추억으로 포장해나가는 두 중년의 남자다.


 플로베르를 두고 비평가들은 사실주의 소설의 완성자, 카프카를 비롯한 모더니스트의 스승, 헨리 제임스와 제임스 조이스를 잇는 시적 산문의 계보의 첫 단추라고 평한다. 나는 <감정 교육>을 읽으며 내가 마치 파리의 거리를 구경하고 건물을 들어가 방을 바라보는 것처럼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감탄했고 그 당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과 속물적인 행위가 현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쿤데라는 소설이라는 것은 인간 실존(인간이 존재하는 형태)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했으며 오직 소설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라고 말했다. 나는 <감정 교육>이 소설이라는 장르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그의 글을 다시 읽음으로써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언제나 고통을 겪었던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