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좋은 책들이지만, 굳이 말 한두마디를 끼얹을 만큼 뇌리 속에 남은 책은 <언어와 죽음>
<언어와 죽음>은 전작 <유아기와 역사>가 유물론적 지평에서, 다소간 산만하게 전개한 문제의식을 관념의 경로를 따라 정제함
아감벤은 하이데거와 헤겔을 경유해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갔다가 중세 신학, 낭만주의 시학을 거쳐 비트겐슈타인과 벵베니스트로 되돌아오며
'언어'와 '부정성'이 어떻게 서구 형이상학에서 변주되어왔는지를 탐색함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건 헤겔의 절대정신, 하이데거의 Ereignis(솔직히 이건 번역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생각함..)를 논하는 부분
여기서 아감벤은 양자 사이를 비교 분석하는데서 그치는 대신 고대 그리스 문헌들과 비트겐슈타인을 소환하여
어째서 논리학과 윤리학이 형이상학에게 기원의 문제를 떠넘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추적하며 언어와 부정성 '자체'가 형이상학임을 폭로함
(막간으로 삽입된 코제브와 바타유의 서신은 이 휘몰아치는 문헌학적 사슬들의 난투 속 틈새를 엿보게 해주는 열쇠구멍 같다는 인상)
말미에 아감벤이 틈틈이 삽입하는 두가지 처방─전-언어적 욕망과 고고학/인류학적 프락시스는 그간 벌여놓은 판을 생각하면 후속작 떡밥 수준이라 아쉽긴 했지만...
후자는 그 유명한 호모 사케르 연작으로 이어진다는걸 생각하면 200p 남짓한 텍스트에서 전부 털어내기엔 어쩔 수 없었겠거니 싶었음
전반적으로 푸코, 벤야민, 슈미트 이전의 아감벤, 하이데거리언 아감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독서였음
큰 이변이 없는 한, 개인적인 올해의 책 다섯 손가락 안에 넉넉히 들듯
프리모 레비의 말 어떰?
그냥 그럼 레비 자서전을 위한 밑작업이었는데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도 전에 레비가 세상을 떠버려서 겉핥기 수준에 그침
good - dc App
순간 이태리어로 본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