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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향내는 마법과도 같았다>
제목: 물망초
저자: 요시야 노부코 / 정수윤 옮김
출판사: 을유문화사
서문에서 『물망초』 소설은 이리 말한다.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이 세상의 여자아이가 한 번은 지났을 법한, 그런 날도 있었지—— 하고 미소 지을 법한, 혹은 멀리 떠나온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쓸 법한 것들. 아아, 보랏빛 한 송이 물망초를 그대 두 손에 드립니다.
사춘기 소녀의 감성은 예민하다. 어떨 때는 남을 해칠 정도로 날카롭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가녀릴 정도로 연약하다. 이런 민감한 소녀들은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변화할 수 있는 마법을 꿈꿀 때도 있다.
향수를 짙게 뿌려 보자. 아주 지독할 정도로. 방 안을 채운 향내는 방 안의 사람을 어지럽게 만든다. 옆의 사람이 콜록-콜록거려도 개의치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향이기 때문이다.
아이바 요코는 그런 소녀였다. 남이 뭐라 해도 향수를 더 뿌릴 소녀. 그녀는 부유한 사장님의 딸이었고, 이에 걸맞게 행동했다. 마치 전형적인 클리셰의 ‘부자 영애’처럼. 프라이드도 강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
이와 반대로 소설 속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게 마키코는 병약한 어머니와 내성적인 남동생, 그리고 엄중한 아버지를 가지고 있다. 마키코의 가족은 늘 아버지의 뜻에 따라야 했다.
요코와 마키코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관계였다. 자신에게 없던 특성 때문인지, 서로가 끌린 것일지도 모른다. 요코는 자신의 반짝임에 휘어 잡히지 않은 마키코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요코는 마키코에게 마법같은 세계로 끌어 당긴다.
“있지, 오늘 밤부터 나랑 사이좋은 친구가 되어 주겠니?”
요코는 달콤하고 상냥하게 속삭였다.
마키코는 아까부터 꿈을 꾸는 것만 같아서――, 평소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
마키코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둑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흑장미를 닮은 마키코를 가만히 바라보던 요코는 작은 면 레이스 손수건을 꺼내 마키코의 뺨 부근을 닦아 주었다.
“미안해, 아까부터 내 맘대로 끌고 다녀서. 약간 땀이 났지?”
그때――, 마키코는 상냥하게 땀을 닦아 주는 요코의 손수건에서 풍기는 짙은 향수 냄새를 느꼈다.
“물망초 향수야, 마음에 드니? 이 향기…….”
마키코는 말이 없었다. 이럴 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평소에 연습해 본 적이 없어서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네가 이 냄새를 좋아한다면, 나는 언제든 이 향수만 쓸 거야.”
물망초 향내는 현실을 잊을 정도로 지독하다. 마키코는 물망초 향내에 지독하게 빠져들었다. 보살펴야 하는 남동생, 엄중한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는 마법과 같은 시간. 마키코는 요코의 손을 계속 잡게 되었다.
요코에게 향하는 마음이 동경인지 사랑인지 혼란인지, 정확히 규정할 수는 없지만… 독자인 우리는 이를 사랑이라고 단순히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나 벌써 각오했어. 엄마가 돌아가신 대도, 아빠가 돌아가신 대도, 소녀 소설 속에 나오는 애들처럼 울거나 우울해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담담해질 거야. 근대에는 여자애들의 심리도 옛날과 다르게 진보해야 해――.
요코는 당당하게 선언한다. 마치 어른처럼,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당당한 여성이 되겠다고. 마키코는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이 선언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 선언에 따라 마키코도 요코를 따라가고 싶었고, 말 그대로 진보(성장)를 하게 되었다.
후반부는 편의주의적 전개라고 많이 비판받는다. 엄중했던 아버지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마키코와 그 동생에게 상냥한 아버지가 되도록 결심한다. 갈등 해소가 마치 동화와 같이 메데타시 메데타시~ (めでたしめでたし。)
하지만 후반부의 동화식 전개는 소녀의 마지막 마법이 만든 힘이라고 난 믿는다. 요코의 선언으로부터 용기를 얻어, 마키코가 아버지와 처음으로 반박하게 되었다. 다시 어린 소녀가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서, 성장하는 이 과정에서의 마지막 마법. 그렇기에 마지막 마법의 결과물처럼 동화식 해피 엔딩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그렇게 마키코는 현실을 마주한다. 한 명의 성인 여성으로서, 요코로부터, 마법이 존재하던 소녀 시절로부터 작별 인사를 한다. 차분하게 혼란스럽기도, 뜨거웠기도, 행복했기도 했던 오묘한 감정을 고이 접어서 편지로 정리한다. 그렇게 성장소설임에도 씁쓸한 맛이 난다.
책장을 덮고 은은한 물망초 향내가 느껴졌다. 마키코와 요코가 진득히 놀 때의 지독한 물망초 향기가 아니었다. 두 소녀가 조용히 손을 잡고, 침묵하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향일 것이다. 이 두 소녀의 후일담을 보고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요코도 마키코도 마음뿐만 아니라 온전한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법과 같았던 뜨거운 사랑은 소녀 시절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마치 서문의 “그런 날도 있었지—— 하고 미소 지을 법한” 이야기로.
이 책이 일본의 엄청난 인기작이라 들었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요코와 마키코의 외전의 요청이 많았을 꺼라고 나는 상상해 본다. 그럼 왜 요코와 마키코의 후일담이 나오지 않았을까?
작가는 이 둘의 후일담을 독자의 상상에 맡긴 것이라고 나는 추측해 본다. 상상은 구체화해도 결국엔 휘발된다. 그 자리에는 상상했던 무언가의 인상만 남는다.
바람에 흩날려 옅어진 물망초 향내처럼.
손을 잡았을 때 잔존하던 두 소녀의 사랑처럼.
나 역시『물망초』의 섬세한 필치를 따라하며, 저 둘의 마지막을 상상했다가, 이만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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