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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교수인 존 앨런 파울로스가 우리와 같은 수포자들을 위해 쓴 책이다.


원제는 Innumeracy(수맹, 수알못 쯤 되는 뜻이다.)인데, 한국어판 제목인 "숫자에 약한 사람들을 위한 우아한 생존 매뉴얼"은 꽤 훌륭한 번안이라고 본다. 오늘날의 사회구조는 고도로 추상화되었고, 수학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겉으로 보면 숫자감각이 약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저자는 수많은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숫자에 약하다는 것은 그저 계산 실수해서 쑥스럽고 말 일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판단 오류를 일으키게 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우리의 삶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아무리 수포자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수학적 감각을 갖추는 것은 지적인 여유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책에서 알려 주는 것들이 "매뉴얼"이라고 할 정도로 기술적이고 구체적이지는 않다.)


수학기피증은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저자는 "숫자와 확률에 관련된 개념들을 익숙하게 다루는 능력의 부재"를 "수맹"이라는 말로 정의하고, 이것이 "숫자와 확률 외에는 꽤나 지적이고 잘 교육된 시민들 사이에 너무나도 널리 퍼져있다"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심지어 이러한 수맹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종종 은연중에 자랑스럽게 표현되곤 한다.'글쎄, 저는 숫자에 집착하는 타입은 아니라서요.'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만연한 수학기피와 높은 수맹률은 주식사기, 배우자의 선택, 언론 선동, 의학적 미신과 유행, 테러리즘의 리스크, 천문학, 스포츠 기록, 선거, 성차별, UFO, 보험 및 법률, 정신분석, 초심리학(parapsychology. 예를 들어서 최면, 텔레파시 등), 복권, 약물 실험, 유사과학에 대한 신봉 등등의 수많은 분야에서 치명적인 오류와 그로 인한 막대한 손실을 낳는다. 이러한 것들은 필요최소한의 기초적인 수학적 지식과 숫자, 확률에 대한 친숙함만 있다면 피할 수 있는 것들이다. (덧붙이자면, 숫자와 확률에 약한 사람은 대체로 논리에도 약하다.)


예를 들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 사례를 제시한다.


"이런 큰 숫자들 그리고 그런 큰 숫자에 상응하는 낮은 확률을 접할 때, 숫자에 약한 사람들은 필시-만일 안 되는 추론을 한 결과-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그래, 하지만 네가 당한다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말하고는 마치 자신이 핵심을 찌르는 통찰력으로 상대의 주장을 물리친 듯이 우쭐해서 고개를 끄덕인다. 곧 알게 되겠지만, 숫자에 약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특징은 이렇듯 문제를 개인화하려는 경향이다."

(본문 p20)


수맹 상태를 벗어나는 것은 문맹을 벗어나 글자를 읽게 되는 것과 비견될 수 있다. 수맹인 상태와 수맹을 벗어난 상태의 격차는 그만큼 극적이다. 수맹과 문맹의 차이점은 문맹은 쉽게 눈에 띄고 창피하다고 여겨지만, 수맹은 쉽게 눈에 띄지 않고 별로 창피하지 않다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다지 길지 않은 책이지만 이 책은 수학적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거의 모든 오류를 망라하고 그것을 극복할 기초적인 지식과 해결책을 어렵지 않게 설명해 준다. 중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서 보던 것보다 내용적으로는 더 쉽고, 왜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하고 어디에 어떻게 필요한지 뇌리에 쏙쏙 박히도록 알려 준다.

이것을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숫자와 확률에 대한 지식과 감각은 그 자체로 우리의 삶에서 실질적인 손해를 줄이고 이득을 늘려 주기도 하지만, 나아가서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온갖 사건들과 그에 대한 인식 및 경험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필연과 우연이란 무엇인지, 왜 나와 내가 아는 사람들만 이런 불행햔 일들을 겪는 것 같은지, 왜 항상 세상이 점점 흉흉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나아가서 '수십억분의 일의 확률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난 나라는 존재의 의미란 무엇인지 등등...


전체적으로 별로 흠집잡을 구석이 없는 책이다.(현실적인 수준의 기대에서 볼 때)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저자가 수포자들을 거의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귀가 약간 따가울 것이다.), 그건 그만큼 저자가 사람들의 숫자와 확률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일 것이다. 사실 저자는 수포자가 개개인의 능력이나 의지 뿐만이 아니라 결국 교육의 문제임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수학교육의 대안 역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당신이 책을 읽으면 뭔가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게 있어야 한다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