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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헤드'는 특수설정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본격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한 도구적 사고의 화신인 기사야마는 자신의 살인 방법만이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비현실적 사고는 이런 부분을 더욱 강화하는데, 이 비현실적 인물은 철저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을 통해서만 문제 해결이 가능한 세계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결국 이 글은 이 특수설정에 기반한 트릭이 설득력과 재미를 가져다줄 수 있느냐에 달렸을텐데, 간단히 말하자면 그랬다. 작중에 등장하는 시스마라는 약물은 개인의 세계와 의식을 분열시키는 동시에(창작물에서의 양자역학적 접근을 생각하면 되겠다.) 과거로 일정시간 돌아가는 효과가 있는 약물인데, 그들은 잠에 들면 일종의 뇌내회의를 서로 가질 수 있으며 한 세계선에서 죽은 인물은 모든 세계선에서 같은 방식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같은 방식으로의 죽음은 상당히 중요한 힌트가 되는데, 한 사람이 죽은 본 세계선이 아닌 다른세계선에서는 물적 증거는 없는 상태로 같은 방식으로 죽게된단 점에 기초해 가족을 살해한 범인이 어느 세계선의 자신인지를 찾는 것이 주된 이야기가 된다.

나름 작가가 고심해서 썼음을 느끼는 부분이 등장하는 트릭 방식의 다양성인데, 이 특수설정에 기반한 트릭을 3종류 이상 짜내고 실현시켰다는 점에선 특수설정이 오직 단 한번의 반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단 점에서는 활용도 있게 쓰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그 어떤 메세지도 없는 장르적 재미를 위한 글이라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글에서 느껴지는 잔학성과 발상은 다소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물론 이 비현실적인 인물인 기사야마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트릭을 실행한다는 발상을 할 수 없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정도의 트릭을 실행할 정도의 인물로 만들어야 했기에 이런 과장된 비현실성이 추가로 덕지덕지 붙은 것이 아닐지.

이러한 부분에서 윤리성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물론 당혹감은 존재한다.) 적어도 우리가 100만명의 반대자를 제거한 독재자와 100만명을 쾌락살인을 한 범죄자 중 전자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는 발상에 가깝겠다. 특히 마지막 트릭의 경우 그 발상의 놀라움과는 별개로 이 범죄가 저질러진 이후 두더지의 행동이 예측이 된단 점에서, 이 범죄가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트릭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된다.

정리하자면, '엘리펀트 헤드'는 특수설정을 상당히 잘 활용한 본격 미스터리로, 이런 퍼즐적인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나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전에 읽은 같은 작가의 '명탐정의 제물'보다는 훨씬 나은 완성도라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이 작가의 책을 추천 부탁한다면 주저 없이 '명탐정의 제물'을 추천할 듯 하다.

이 책이 19세 미만 판매불가로 취급되었단 점은 그다지 놀랍지 않지만, 일본에서 상당히 고평가 받았단 점은 약간의 애매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미스터리 독자들은 이제 이런 자극까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