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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작권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1) 소리바다, 당나귀, 프루나, 토렌트 따위의 프로그램이 쓰레기 같은 음악을 덤핑하지 못하도록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꿔놨다고 생각하며, 00년대에 쏟아지던 저작권 의식 진작 프로젝트나 DVD 앞의 저작권 침해 경고 문구가 협박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SciHub를 만든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이 여러 연구1원에게 감사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카피레프트는 그나마 나은 타협이었고, 창작에 대한 대가가 추후 돈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은 창작에 도움이 될리도 없다고 본다. (좋은 추가 소득이 될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나쁜 창작에 대한 추가 소득만 될 테다) 소위 불법 다운로드 및 공유가 길거리에 떨어진 천원 지폐를 줍는 것보다 하등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영화도둑일기> 감상에서 썼듯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자료를 쌓아두는 호더에게 생기는 문제 외에 다른 것은 딱히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어쩌다 특허를 취득한 기술도 몇 가지 있지만 여기서 오는 이득은 없고 이게 딱히 발명을 촉진한다거나 다른 무언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아마 나중에 내가 속한 기업이나 다른 법인이 이를 토대로 소송을 하는 데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생각한다. 



<이 문장은> 첫 장을 여는 이야기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저작권'을 막대한 금액으로 사들이는 것인 이유가 있다. 한때 토렌트로 소설 텍스트 및 PDF 파일을 대량 유포한 다음 이를 다운로드받은 사람들을 전부 고소하는 사업이 있었던 게 딱히 틈새시장 개척이나 사기는 아니다. 규모와 범위만 다를 뿐, 저작권의 행사는 대체로 그런 식으로 권리를 사들인 전문 기업의 대규모 고소로 이뤄지고 있다. 저작권은 대체로 저작자, 발명가, 예술가, 그 외의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 기여한 사람에게 대가를 주거나 이러한 사람들이 나오도록 돕는 역할보다는 비슷한 것을 대량으로 제작해 유포하거나 권리를 사들여 다른 곳과 싸움을 벌이는 기업의 도구에 가깝다. (전자를 위한 대가는 그 전의 판매 계약에서 나오고, 사실 거기에서만 나올 때가 훨씬 많다) 권리의 취득과 행사는 완전히 별개의 일이고, 개인은 권리를 대체로 행사하지 못하며 권리의 높은 가치에서 나오는 세금을 이기지 못하고 헐값에 팔아치워야 한다. 대부분의 법이 그런 것처럼 사실 그렇게만 생각하고 말면 그만이겠지만, 저작권의 문제는 이 제도가 마치 일반적인 절도 범죄처럼 여겨지도록 급속도로 퍼졌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저작권이 실제로 대부분의 창작에 방해 효과를 뚜렷하게 내는 반면, 저작권이 없는 영역에서 "인센티브 효과"가 전혀 없이 생산적인 창조가 일어나는 일이 많다는 것 역시 의도적으로 무시된다.



물론 <이 문장은>은 그보다는 더 진지한 책이다. "지식 재산 전문 변호사"와 "비교문학 교수" 두 사람이 "저작권과 문화의 관계를 연구"하며 쓴 이 책은 (저작권이 생기기도 한참 전부터 늘 있던) 표절이라는 도덕적 개념과 달리 어디까지나 금전 목적으로 생겨난 저작권이 서서히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엮이며 공유 지대의 많은 것이 사유화되는 것을 옹호하다가, 현재처럼 온갖 것을 인용하거나 사용하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내야 하는 수준이 되었는지의 역사적 궤적을 추적한다. 아무리 저작권을 긍정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라도 미키 마우스를 언급하는 일의 파괴적인 효과는 알고 있으며, 그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온갖 활용을 막는 제도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무엇'의 '어떤' 활용을 막느냐 역시 중요한 문제였는데, 글의 인쇄 자체가 아니라 글의 '대량 인쇄 및 판매'가 인쇄업자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한 핵심이었던 것처럼 저작권은 그 적용 대상과 범위에 있어서 늘 논란 속에 있었다. 더군다나 무엇이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않는 단순한 발상의 영역인지, 독창적이라고 할 만해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표현의 영역인지로 들어가면 더욱 민감해진다.



저작권 논란에서 특히 무시할 수 없는 점은 창작의 특수성이다. 예나 지금이나 창작은 과거의 것으로부터 베끼는 것이었으며, 표절 수준의 절도와 기존과 완전히 다른 듯한 천재성 사이에는 뚜렷하지는 않아도 분명한 경계선이 존재했다. 이것을 존중하는 문화는 저작권의 역사와 완전히 별개다. 서구권에서 그 역사는 창작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존재, "천재"를 숭배하는 낭만주의로 사실상 끝났다. 저작권의 역사는 그보다는 인클로저의 역사에 가깝다. 창작의 또 다른 특수성, 공개성이 그 원인인데, 다른 물건과 달리 창작물은 발표 이후 대체로 자신의 손에서 떠나간 공공의 것이 되곤 한다. 악보가 철저한 저작권의 대상이 되어 <생일 축하합니다>로 상당한 돈을 벌어들이기 한참 전부터 레퍼토리는 늘 공유되고 있었고, 애초에 바로 그 공유된다는 점에 힘입어 인기를 누리곤 했다. 이 공유지는 반드시 사유화되어야 했고, 그 권리는 대체로 저작자보다는 배포자에게 있었다. 혹은 그 권리를 이양 받은 재단에게. 작품의 후손들이 만든 재단이 저작권을 행사하며 기존 창작물을 변형하는 온갖 활용을 막는 건 흔한 일이다.



흥미롭다면 흥미로울 예시 중 하나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각색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및 영화 <카르멘 존스>가 있다. 이 영화는 수많은 나라에 상영되었지만 비제의 출신국인 프랑스에서는 1981년까지 상영되지 못했는데, "비제의 음악에 대한 '동일성 유지권'을 갖고 있던 권리자들은 몇몇 아리아의 편곡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그 뒤에 숨은 진짜 이유는 지면을 통해 밝혀진 적은 없지만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델 사르트 가문은 스크리늬 흑인 배우들을 보기 싫었던 것이다. 그들은 인종적 편견을 강요하기 위해 법적 조치를 취할 필요도 없었다. 영화 상영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프랑스 국민이 그 영화를 볼 수 없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비슷하게 초상권과 프라이버시권 같은 인격권은 사실상 명예훼손에 대한 소송을 대신하곤 한다. 물론 대체로 개인의 몫은 아니다. 이러한 권리의 행사는 온갖 원천으로부터 돈을 끌어오고자 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돈 버는 기계"의 몫이다. (미국의 경우) 가능한 모든 활용으로부터 저작권을 인정하는 모호하게 광범위한 1976년 저작권법 이래 그 영역은 누구든 빨리 들어가서 울타리를 치는 사람이 돈을 버는 공유지2)가 되었다.



그게 나쁠 건 없지만, 좋을 것도 없다. 저작권에는 도덕이 없다. 예전에 비해 과거의 창작물로부터 무언가를 참고하지 않도록 최대한 그 흔적을 걷어내야 하고, 학습 목적으로 무언가를 활용할 때조차 예상치 못한 고소를 당할 수 있다는 데에 신경 써야 하며, 막연하게 들어본 듯한 선율과 유사한 노래를 쓰거나 전혀 다른 원천으로부터 기존에 이미 비슷하게 존재하는 이름에 도달했을 때 남의 사유지에 들어왔다는 경고를 받게 되더라도 뭐 어떻겠는가. 이렇게 보장받는 권리로부터 더 나은 생산물이 나올 게 아니겠는가. GNU를 비롯한 자유 소프트웨어가 윈도우, Mac 같은 다소 폐쇄적인 상업용 소프트웨어보다 형편없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반어법이다. 저작권의 문제는 개인의 자유나 도덕보다는, 어느 집단에 속해 이곳에서 후원받으며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느냐의 문제에 달려 있다. 단턴의 <검열관들>은 과거 어떻게 판매업자와 검열관이 실질적으로 동일했는지를 보여주고 레비의 <해커스>에서 보여주는, 국가 군산 프로젝트 소속 프로그래머들의 좌익 이상주의 사이의 기묘한 공존은 <이 문장은>에서 조명하는 저작권의 지역적, 조합적 특성에 부합한다. 그러니 그 영역 바깥에서 어디 소속되는 일 없이 개인적으로 창작하는 이들의 다툼에는 도덕의 잣대를 치우고, 내부에서의 다툼에서는 말을 아끼고 화폐를 장전해오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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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작권이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말은 저작자에게 돈을 별로 쳐주지 않는 대부분의 계약을 가려두는, 팁 같은 의도적으로 왜곡된 제도에 가깝다고 본다. 저작자가 상업적 성공에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불공정 계약이 원인인데다 저작권을 회피하는 공유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저작권이 창작욕과 생산성을 자극하는 인센티브 역할을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근거가 불분명하다. 국제적 저작권 보호 협약, 베른 협약이 체결되기 전에 세계에서 거두지 못한 판매 수익이 실제로 높은 인세를 보장받은 상태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출판 시장만 보더라도 번역 계약을 위해 지불하는 금액보다 실제 판매고가 턱없이 미치지 못해 더 이상 역서를 내지 않는 책이 수두룩하다. 아마 실제 저작권의 기회비용은 저작권 철폐주의자와 저작권 도덕주의자 사이 어딘가에 있겠지만, 나는 전자 쪽에 더 기울어 있다.



2) 인터넷에서는 울타리가 아직 굳어지지 않은 수많은 영역을 볼 수 있다. PDF를 JPEG로 바꾸는 인코딩이나 여러 사소하게 유용한 도구를 제공하는 무료 사이트가 많은데, 대체로 초창기에 만들어져 빠르게 검색 순위권을 차지한 곳들이 소박하게나마 서버비 이상의 광고비를 거두고 있다. 이런 사이트 중 일부는 본격적으로 부분 유료화를 시도하기도 했다가 몰락해서 다른 사이트로 대체되었지만, 웹 광고로 소박한 이득을 거두는 데에 만족한 사이트는 여전히 상당한 이득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이트의 순위권이 굳이 바뀔 이유도, 억지로 바꿀 이유도 없다보니 이 초창기 툴 메이커들은 웹 환경이 또 급변하거나 툴 자체가 완전히 낡아버리기 전까지는 꾸준한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여기까지가 웹 환경에서 긍정적으로 포용할 수 있을 만한 지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