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들으면 부르주아적 취향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글의 최고 목표를 "격조와 기품"에 둔다. 예를 들면 정확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격조와 기품이 있는 글을 나는 존중한다. 현대 작가에 대해서도, 나는 나 자신의 고집스러운 취향에 따라 세상의 평가와는 완전히 다른 평가를 내린다. 일본어가 점점 잡다해지고 뒤죽박죽되면서 현대의 풍조에 따라 불량배의 말과 신사의 말이 뒤섞이고, 창녀의 말이 양갓집 여인의 말과 서로 섞이는 이런 시대에 기품과 격조 있는 문장을 추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문장상의 기품이나 격조라는 것은 어둠에 눈이 익숙해짐에 따라 사물이 분명히 보이기 시작하듯이, 반드시 후세 사람들의 눈에 드러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장의 격조와 기품은 어디까지나 고전적 교양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고전시대의 미의 단순함과 간결함은 시대가 달라져도 마음을 감동시키므로 현대의 복잡성을 표현한 복잡하기 그지없는 문장조차, 조잡한 현대의 현상을 극복하고 있을 것이다. 문체를 통한 현상의 극복이 문장의 최종적 이상인 한, 결국 문체의 최종적 이상은 기품과 격조일 것이다."
— <문장독본>, 미시마 유키오



그렇게 실험적이라는 율리시스조차 몇천년 전 작품을 다시 쓴 행위인데, 요즘 젊은 작가들이 썼다고 하는 소설들은 어휘랑 말로만 요즘 단어들을 반영하면서 소수 문학 어쩌구 떠들지만, 결국 고전의 품격을 잃어버린 글들은 미래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