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SF는 1940년대의 펄프 매거진에서 출발해 50년대경에는 과학적 고증에 리얼리즘을 도입하고 '하드 SF'라는 장르를 내세움으로써 보다 성인 독자층을 확보한다.
하지만50년대에 유행했던 하드 SF는 사소한 과학 묘사에 얽매여 지난날의 신선함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이에 영국의 작가인 JG 발라드는 위기감을 느끼고..
"외부우주에서 내부우주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새로운 SF의 길을 모색한다.
-외부우주란 물리적인 우주(스페이스 오페라의 무대같은)를 의미하고 내부우주란 인간의 정신세계를 말한다.
문학적 스타일과 실험 정신을 강조한 이 뉴웨이브SF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들.
1. 영국 뉴웨이브
영국의 SF 잡지 뉴 월드New Worlds를 중심으로 운동이 시작.
J. G. 발라드 (J. G. Ballard)
마이클 무어콕 (Michael Moorcock)
브라이언 올디스 (Brian Aldiss)
2. 미국 뉴웨이브
영국의 영향을 받아 미국에서도 독자적인 흐름이 나타났다.
특히 할란 엘리슨이 편집한 앤솔러지 위험한 비전Dangerous Visions이 구심점 역할
할란 엘리슨 (Harlan Ellison)
새뮤얼 딜레이니 (Samuel R. Delany)
어슐러 K. 르 귄 (Ursula K. Le Guin)
필립 K. 딕 (Philip K. Dick)
로저 젤라즈니 (Roger Zelazny)
옛날에 시공사가 SF시리즈들을 통해 진짜 주옥같은 뉴웨이브SF 많이 번역 출판했지. (아마도 지금은 다 절판됐을듯)
내부우주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 Which Way to Inner Space ?
원문은 영국 뉴월드New Worlds 1962 05
일본 S・F매거진의 1997년3월호((발라드 특집이였다)에 실린 일본어 번역문을 AI가 번역
미소 우주 경쟁의 슬퍼해야 할 부산물을 하나 꼽는다면 그것은 사이언스 픽션(SF)이 일반 대중의 마음속에서 벅 로저스의 로켓이나 광선총과 도매금으로 취급되는 풍조를 한층 더 강화해 버렸다는 점일 것이다. 사이언스 픽션이 이러한 동일시(현재의 악평 대부분은 여기서 비롯된다)를 벗어날 가망이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그 기회는 머지않아 사라지고 유인 우주선의 화려한 달 착륙이 이 심상을 싫든 좋든 고정해 버릴 것이 틀림없다. 우주복 차림의 영웅 등장을 진심으로 환영하기는커녕 대부분의 일반 독자는 로봇 두뇌나 하이퍼드라이브 같은 판에 박힌 소품이 나오지 않는다고 실망하게 될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영화 관객이 서부극 속에 최소 한 번은 화려한 총격전이 없으면 지루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총격전 없는 서부극도 몇 편 시도되었지만 모두 개와 미개척지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듯하다. 내가 독자로서 두려워하는 것은 가까운 미래에 사이언스 픽션이 아주 대담한 활력 회복을 이루어내지 않는 한 현재 간신히 이 매체를 정당화하고 있는 진지한 주변 소재들은 사라지고 그것은 괴담이나 탐정소설과 마찬가지로 빛바랜 문학 형식이 떨어져 가는 림보의 세계로 내쫓기게 되리라는 것이다.
우주 소설은 더 이상 SF 아이디어를 낳는 주요한 원천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믿는 근거는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그 대부분이 판에 박힌 데다 아동 취향이라는 것이지만 이것이 반드시 작가의 죄라고만은 할 수 없다. 모트 살(미국의 나이트클럽 코미디언. TV에 진출해 정치 풍자로 명성을 얻었다)이 케이프 커내버럴의 미사일 실험장을 '동부 디즈니랜드'라 불렀듯이 좋든 싫든 대부분 사람들의 사이언스 픽션관은 그런 수준이며 로켓이나 행성 여행 같은 배경이 강요하는 상상력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레이 브래드버리 같은 시인은 현재 잡지의 관례를 받아들이면서도 화성 같은 낡아빠진 소재마저 황홀한 자기만의 세계로 빚어낸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은 브래드버리급 작가가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는 희망에 매달려 존속을 낙관할 수는 없다. 로켓 & 행성 이야기가 본래 갖춘 재미의 정도는—신체적·심리적 깊이의 부재나 인간관계의 한계도 있어—너무나 가볍고 이것을 토대로 자립적인 소설 형식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무언가 좀 있다손 치더라도 잇따른 유인위성의 성공 이후에는 승무원의 한정된 심리적 체험이—총체적으로 SF 작가들의 예견은 의도와는 별개로 제법 정확했지만—SF에 등장하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의 모범이 되어버리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물론 시각적으로는 그 장대한 전망과 냉엄한 아름다움에 있어 우주 소설에 필적할 것은 없다. 이는 SF 영화나 SF 만화가 증명하는 바지만 문학 형식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더 복잡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법이다. 단언컨대 그것은 우주선에서는 얻을 수 없다. (신기하게도 최근 우주비행사의 근무표를 볼 때 옛 시절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유일하게 진짜였던 것은 그 어색하고 단조로운 대화뿐이다. 셰퍼드 중령의 "이봐 정말 멋진 비행이야(Boy what a ride)!"라는 외침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더라도 티토프 소령이 우주에서의 첫날 밤 꿈도 없이 숙면한 것은 이카로스의 추락 이래 최대의 흥깨기가 아니었을까.—얼마나 많은 SF 작가들이 그의 대본을 써주고 싶어 했을까!)
하지만 지금 내가 우주 소설이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에 가장 불만을 느끼는 것은 호소하는 독자층이 너무나도 좁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픽션이 그 입지를 지키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서부 소설처럼 광범위한 비전문 독자의 변덕스러운 시간 때우기용으로만 그 존속을 걸 수는 없다. 전문화된 매체가 대부분 그렇듯 사이언스 픽션에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충실한 독자이며 추상 회화나 12음 기법 음악의 감상자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즐거움을 기꺼이 좇는 사람들이다. 보수적인 스페이스 오페라 팬들은 현재 SF 독자의 안정적인 중심층일지는 모르나 이 매체를 계속 살려나갈 힘은 될 것 같지 않다. 순수주의자들이 으레 그렇듯 그들은 메뉴가 바뀌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여기서 사이언스 픽션이 진화하지 않는 한 머지않아 다른 매체가 끼어들어 그 최대의 장점 즉 미래의 쇼윈도가 될 권리를 가로채 갈 것이다.
최근 나는 지적 흥분을 맛보고 싶을 때 사이언스 픽션이 아닌 음악이나 회화에서 그것을 찾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당면한 최대의 문제점이다. 비판력 있는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사이언스 픽션은 지금의 내용과 접근법을 근본부터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1930년대에 태어난 잡지 SF는 당시의 유선형 흉내 내기 건축과 마찬가지로 보통 독자의 눈에도 낡아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단지 시간 여행 정신역학(사이오닉스) 텔레포테이션(모두 과학과는 아무 관계도 없지만 그것이 암시하는 가능성은 숨 막힐 정도라 제대로 다루려면 상당한 천재가 필요하다)에서 시대상이 드러난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보통 독자는 영리해서 이야기의 대부분이 그런 테마를 약간 각색한 것에 불과하며 신선한 상상력의 도약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종류의 장인 기술은 명백한 쇠퇴의 징조이며 SF가 수행해야 할 본래의 역할이 결국에는 마이너한 잡학적 오락에 그치고 전문지는 통속 과학의 유행을 기회주의적으로 뒤쫓는 신세가 될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을 물리치고 사이언스 픽션이 미래의 상상력 풍부한 통역사로서 앞으로도 역할을 넓혀갈 것이라 믿는다면 아이디어의 새로운 원천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우선 첫째로 SF는 우주에 등을 돌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항성 간 여행 외계 생물 은하 전쟁 혹은 그 변주 즉 잡지 SF 지면의 9할을 차지하는 그런 것들로부터 SF는 멀어져야 한다. 위대한 작가이긴 하지만 H. G. 웰스는 그 후의 SF 진로에 파멸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가 제공한 아이디어의 레퍼토리가 과거 50년에 걸쳐 이 매체를 점거하게 되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단순한 플롯 저널리즘적인 화법 상황이나 인물 설정의 표준적인 폭 등 문체나 형식의 관례를 확립해 버린 것이다. 자각이 있든 없든 지금 SF 독자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며 그것 자체가 문학의 다른 방면에서의 발달에 비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왜 SF에는 실험에 대한 열의가 별로 보이지 않는가. 과거 4 50년의 회화 음악 영화와 비교할 때 나는 종종 이상하게 생각한다. 최근 이것들이 통째로 사변적(speculative)이 되어 새로운 마음의 상태를 상상하는 데 몰두하고 효력을 잃은 낡은 것들을 대신해 신선한 상징과 언어를 구축하는 것을 볼 때 특히 그 느낌을 깊게 받는다. 같은 의미에서 나는 SF가 지금의 서사 형식이나 플롯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의 대부분은 성격 묘사나 주제의 형언할 수 없는 상호작용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노골적이다. 예를 들어 시간 여행이나 텔레파시 같은 장치는 확실히 시간과 공간의 상관관계를 완곡하게 설명해 주어 작가들에게는 편리하다. 하지만 기묘한 역설에 의해 그것들은 또한 작가의 상상력의 폭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며 장치가 만들어낸 좁은 경계 내에서 거의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
눈앞의 미래에서 가장 큰 발전이 일어나는 곳은 달도 화성도 아닌 바로 지구일 것이다. 탐구되어야만 하는 것은 외부 우주(아우터 스페이스)가 아니라 '내(內)부 우주(이너 스페이스)'이다. 유일하게 미지인 행성은 바로 지구인 것이다. 과거에 SF는 물질과학—로켓 공학 전자공학 사이버네틱스—을 편중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생물과학에 눈을 돌려야만 한다. 정확성 따위는 상상력 없는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이며 그런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학적 사실(사이언스 팩트)보다 더 많은 사이언스 픽션이며 과학 해설 같은 기획은 낡아빠진 벅 로저스 이야기에 고상한 척하는 옷을 입히려는 것에 불과하다.
더 엄밀히 말해 나는 SF가 더 추상적이고 '쿨'해져서 주제를 에둘러 그려내는 신선한 상황과 맥락을 발명해 주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시간을 빛나는 관광 도로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격의 퍼스펙티브 중 하나로서 또한 시간대(타임 존) 깊은 시간(딥 타임) 원시심리적 시간(아키사이킥 타임) 같은 개념을 정밀화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고 싶다. 심리문학적(사이코리터러리)인 아이디어 메타생물학이나 메타화학의 개념 사적인 시간 체계 모조 심리나 시공간 나아가 정신분열증 환자의 그림에서 보이는 듯한 머나먼 음울한 반(半)세계 이런 것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사변적 과학의 시정(詩情)이자 판타지다.
사이언스 픽션이야말로 내일의 문학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으며 아이디어와 상황의 적절한 어휘를 갖춘 유일한 매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대체로 SF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기준은 다른 전문적인 문예 장르의 그 어느 것보다도 높지만 이제부터 힘든 작업의 대부분을 짊어지는 것은 작가나 편집자가 아니라 독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완곡한 서술 문체 절제해서 제공되는 주제 사적인 상징과 어휘 그런 것들을 받아들일 의무를 지는 것은 독자인 것이다. 만약 아무도 쓰지 않는다면 내가 쓸 생각이지만 최초의 진정한 SF 소설이란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해변에 누워 녹슨 자전거 바퀴를 바라보며 자신과 그것과의 관계 속에 있는 절대적인 본질을 파악하려 하는 그런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엉뚱하고 추상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걸로 족하다. 사이언스 픽션에는 실험을 행할 여지가 아직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지루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지루함일 것이다.
마무리 화제로서 내가 떠올리는 것은 살바도르 달리가 몇 년 전 런던에서 강연했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잠수복이다. 잠수복 정비를 하러 온 기술자가 어느 정도 깊이까지 잠수할 생각이냐고 달리에게 물었다. 그러자 마에스트로는 손을 한번 휘젓고는 "무의식 속까지!"라고 외쳤다. 기술자는 분별 있다는 듯이 "저희는 그렇게까지 깊이는 안 들어갑니다만"이라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5분 후 말 그대로 달리는 헬멧 속에서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런 '내(內)우주복(이너스페이스 슈트)'이야말로 지금도 필요하며 그것을 만드는 것이 사이언스 픽션의 사명인 것이다!
뉴웨이브 이후에 SF의 커다란 운동은 80년대의 사이버펑크가 있고..
그 이후에는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 탄 난쟁이들로 분화되어 가는 슬픈 운명...
근데 뉴웨이브라는 이름 이거 최악 아닌가 나왔을 당시에나 뉴웨이브지 지금 와서 뉴웨이브라니
뭐 헤비메탈에서도 뉴웨이브 오브 브리티시 메탈(NWOBHM)이라는 간지나는 이름을 가진 흐름이 있었는데 이게 1980년대 ㅋㅋ
그나저나 이후 모든 SF평론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브라이언 올디스의 걸작 SF 평론집 <10억년의 연회>하고 <1조년의 연회>는 한국어로 번역 안되나
SF번역가들/평론가들 이거 직무 유기 아닙니까
볼때마다 밸러드는 브래드버리 참 좋아한다 말이지
sf 소재는 과학적 검증이 이루어지는 순간 광채를 잃는 거 같음. 금성에 열대우림이 우거지고 공룡 같은 거대 생물이 살 거라던 상상력이 어떻게 훼손됐는지를 보면... ㅋㅋㅋ 그래서 우주 소재는 차라리 검증이 불가능한 몇 백 광년 떨어진 곳을 배경으로 하는 게 나은 거 같음. 외부우주든 내부우주든, 과학적 상상력이고 과학적 검증이고 다 필요없고, 걍 철학이 동반된 신선한 상상력이 최고임. sense of wonder 는 필수라고 생각하고. 근데 그게 뭔데요? 해 버리는 sf가 더 많아서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