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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기계를 뜯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해봤을 일. 뻑뻑하기 짝이 없는 나사를 돌리고 빼내면 안 될 것처럼 딱딱한 덮개를 벗기고 온갖 부품을 분해해서 하나씩 잘 늘어놓다가, 대충 일을 마치고 슬슬 원상복귀를 시켜볼까 하다가 눈앞에 가득한 부품을 보며 숨이 턱 막힌다. 이 모든 게 원래 대체 어떻게 하나였던 거지? 전체를 부분으로 모두 분해해 버리면 그 동작 원리를 전부 이해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의 꿈은 이곳에서 막힌다. 유전자에 들어 있는 코돈을 전부 분석해낸다고 해도 정작 이 코돈에서 만들어지는 아미노산이 어떻게 변형되어 결합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여전히 너무 많은 것을 모르는 상태로 남는다.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느냐, 그 연결망에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던 중요한 비밀이 너무 많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챈 채. <링크>는 바로 그 네트워크의 비밀을 파헤치는 네트워크 과학에 대한 흥미로운 소개서다.



<링크>는 먼저 그래프 이론의 짧은 역사를 짚어나간다. 주어진 도형이 한붓그리기가 가능한지 묻는 질문 같은 원시적인 그래프 이론에서, 각 정점이 무작위적으로 서로와 연결된 에르되시-레니 모델 같은 비교적 현대적인 모델까지. 에르되시-레니 모델은 거대한 그래프를 추정하기 좋은 이론으로, 그래프의 모든 정점이 직접적으로 간선으로 연결될 확률이 모두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이를 무작위적으로 연결해 만들어지는 그래프다. 에르되시 본인이 삶의 무작위성을 사랑했기에 나온 이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에르되시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이들과 합동 연구를 해온 방랑하는 천재 수학자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합동 연구를 했다. 이것만으로도 많은 영역에 적용되어 사용될 수 있지만, 정보가 쌓이고 쌓이며 세상의 여러 거대한 네트워크를 점차 파악하다보니 문제가 생긴다. 에르되시-레니 모델이 여러 네트워크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기묘하게도 그런 에르되시의 삶 자체가 모델의 한계를 드러냈다.



에르되시가 직접 만나 합동 연구를 한 수많은 수학자가 있다. 이 사람들을 에르되시 수 1로 세고, 개중 한 명 A와 합동 연구를 한 사람 B가 있다. 그럼 B는 이 에르되시 수 1인 A를 경유해서 에르되시에 도달할 수 있으니 에르되시 수 2로 센다. 이 에르되시 수를 기반으로 한 수학자 연결망을 따져봤을 때, 각 수학자들은 꼭 에르되시가 아니더라도 놀라울 정도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중간에 몇 사람을 거치지도 않고도 다른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다. 케빈 베이컨 게임이라도고 알려진 작은 세상 효과Small World Effect는 에르되시-레니 모델에서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주로 인근 정점들끼리만 연결된 정규 그래프에서 정반대편에 있는 정점까지 가려면 사실상 그래프를 반바퀴 돌아야 하고, 중간중간에 무작위적으로 연결된 간선을 통한 도약이 있어야만 저 멀리까지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게다가 에르되시-레니 모델에서와는 달리 정점에 연결된 간선의 수, 곧 차수의 분포가 푸아송 분포처럼 잘 퍼져 있지도 않다. 에르되시처럼 일부 수학자는 다른 수학자와 어마어마하게 많이 연결되어 있으며, 대다수는 거의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런 기묘한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척도 없는scale free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했는데, 이 네트워크에서 차수의 분포는 멱법칙을 따라 극히 일부가 엄청나게 높은 차수를 지니고, 그 외의 대부분은 매우 낮은 차수를 가진다. 그리고 이런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에르되시-레니 모델과 다른 보다 더 현실적인 가정이 필요하다. 각 정점은 매번 새롭게 추가되며 네트워크를 불려나가고, 이 정점이 다른 정점들과 잘 연결될 수 있도록 이미 다른 정점과 잔뜩 연결된 정점과 우선적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실제 네트워크에서 각 정점이 다른 정점에 비해 갖는 우위-이를테면, 인터넷에서 다른 사이트보다 구글을 먼저 쓰게 되는 것처럼-를 반영하여 그래프를 생성시키면, 새롭게 알게 된 많은 네트워크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학자의 네트워크는 물론이고, 인터넷, 전력망, 바이러스 전파, 체내 단백질 작용 등등 세상의 다양한 네트워크가 그리 다르지 않은 원리로 작동하는데, 그 결과는 일부가 파괴되어도 계속 연결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연결망이다.



바로 이 견고함이야말로 생물체와 생태계에서 사람이 본받고자 했던 것이며, 인터넷 자체도 본디 이런 안정성을 위해 제안되었다. (물론 실제 개발은 그보다 한참 뒤, 전혀 다른 발상에서 출발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네트워크에도 여전히 큰 약점이 있었다. 수많은 정점과 연결된 차수 높은 정점, 허브다. 그래프의 주변부에서 맴도는 정점을 수천 개를 떼어내도 네트워크는 여전히 탄탄하게 유지될 수 있지만, 그 핵심인 허브가 하나 제거되는 순간 많은 연결이 끊어진다. 애초에 새 정점이 추가될 때마다 그 정점에게 있어 주변과 가장 잘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이 허브와 연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분명한데, 허브에만 가면 다른 어디로든 갈 수 있었던 여러 정점이 허브가 없어진 순간 그 어느 정점과도 동떨어진 섬이 되곤 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효율성을 입증하듯 소수 허브를 중심으로 잘 뭉쳐져 있던 네트워크는, 여전히 그 약점만 파악한다면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에 가깝다. 실제로 체내 단백질 중 핵심 허브 단백질을 파괴하는 병원체는 너무나 효과적으로 신체를 제압할 수 있고, 전력망의 핵심 허브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 다른 사소한 곳에서의 문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재앙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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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거대 네트워크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고립된 정점이다. 방향이 없이 서로가 연결된 그래프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인터넷처럼 링크가 한 사이트에서 다른 사이트를 연결해주지 그 반대는 해주지 못하는 유향 그래프에서는 어느 정점에서 다른 정점으로 확실히 이동할 수 있다는 보장이 매우 부족하다.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는 웹 크롤러 봇으로 그려낸 인터넷의 대략적인 지도에는 네 개의 "대륙"이 있는데, IN 대륙에서는 핵심부와 OUT 대륙으로 갈 수 있지만 반대로 핵심부에서는 IN 대륙에 갈 수 없고, OUT 대륙에서는 IN 대륙도 핵심부도 갈 수 없다. 심지어 그 어떤 방식으로도 특정 경계 너머의 인터넷과 연결될 수 없는 외딴 섬들도 가득하다. 한때 구글, 알타비스타 등의 포탈 사이트가 인터넷의 극히 일부만을 검색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딥 웹이라는 이름으로-약간 도시괴담이 강하게 섞인 채-일상적인 지식의 일부가 되었다. (사실, 애초에 포탈이 모든 사이트를 대조해서 검색할 필요도, 시간도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연결된 네트워크만으로도 그 속을 맴돌며 다른 컴퓨터의 연산을 도둑질해 일을 시키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광대하고도 위력적인 것이 인터넷이다. 인터넷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체가 되기는 힘들겠지만, 그 안에서 행위를 할 수 있는 일종의 초지능 같은 것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수 있다는 SF적 몽상이 그리 머지않으리라.



상당히 재밌는 책이라 동 저자의 <버스트>와 <네트워크 사이언스>를 추가로 읽어보려 빌려왔는데,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네트워크 내에서 늘 맴돌고 있는 기이한 폭발의 주기에 관심이 있는데, 한 정점에서의 문제가 발견되지 않고 연결망을 헤매다가 허브에서 모이며 폭발하는 순간이나,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는 듯한 네트워크에서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한 요소에 자원이 집중되며 분출되는 순간. 만델브로트가 <The Misbehavior of Markets>에서 분석한 바 있는 기이한 기근과 풍요의 역학 같은 것이 비슷한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걸 보면 왜 사람들이 복잡계 네트워크의 보편적인 신비에 열광했는지 늦게나마 공감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이런 현상을 굳이 눈여겨보지 않아도 늘 느낄 수 있다보니 더욱 그런데, 유튜브에서 가끔 특정 동영상이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추천되며 일반적으로 올리는 영상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인지도를 갑작스럽게 얻게 되는 걸 잠시 추적하고 있으면 과연 업로더가 소위 '엘사게이트' 영상처럼 이 알고리즘의 비밀을 직접적으로 뚫고 들어간 건지, 그냥 얻어걸려서 영문 모를 인기를 끌게 된 건지 궁금할 때가 종종 있다. (가끔 조회수 0 동영상이 내게 추천될 때 이걸 내가 누르지 않은-더 정직하게 말하면, 멈추지 않고 끝까지 봐야 하겠지만-것으로 내가 A/B 테스트를 위한 소수 타겟 시청자로 선정되어 이 영상이 인기를 끌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날려버렸구나 싶을 때도 있다)



특히 인터넷. 인터넷 자체가 하나의 인공지능이 될 수 있다면, 그 가장 강력한 후보는 현재까진 아마 구글 검색 엔진일 테다. 인터넷 아카이브에 꾸준히 쌓여가는 옛 글뿐 아니라 수많은 접근 가능한 웹사이트를 조용히 무시하고 가장 유용할 것으로 판단되는 글을 순위 매겨 보여주는 검색 엔진이 특정 웹사이트를 보여주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높은 확률로 그 웹사이트는 구글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이트에서도 관심 밖으로 버려진 채 외딴 섬으로 남게 될 테다. 대신, 검색 엔진이 검색한 수많은 웹사이트-특히 여러 날짜의 웹사이트-를 종합해보니 그 내용이 전체적으로 비슷하면서도 각기 미묘한 구석이 달라 그 모두를 종합한 가공의 웹페이지를 더 나은 대안으로 제시하는 서비스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매우 처참한 성능으로나마!-요약 글은 제공하고 있는 시대인데다, 봇에게 본문과 댓글을 작성하도록 허용하는 웹사이트가 가득해진 시대이니 더더욱)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구체적인 웹사이트에 관심이 없어지는 시대에 검색 엔진은 사람의 손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하게 분산된 저 거대한 글 뭉치 위에 홀로그램 표면을 띄우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태를 정말로 알기 위해선 특수한 암호화 프로토콜과 구체적인 암호화된 도메인을 알아야 할지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가 <Whole Earth Catalogue>를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자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구글의 전신처럼 언급하던 때 인터넷과 닷컴의 꿈은 실제로 그렇게나 희망차고도 총체적인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나는 역시 그 안에서 온갖 구멍과 단선이 가득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 보이다가 갑작스럽게 가스로 인해 안에서부터 부풀어 올라 피를 쏟아내거나 펑, 하고 터져버리는 거대한 고래 시체 같은 현대의 인터넷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