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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고 든 생각을 쓴 거지 책 얘기는 아닐 수 있다.

 

 평소처럼 일어나서 책 챙기고, 킥보드 타고 도서관으로 갔다. 아파트를 나와서 아침 하늘을 봤는데 너무 예뻤다. 오늘은 달과 6펜스 읽었다. 100페이지 쯤 읽는데 졸려서 도서관 옥상으로 갔다. 항상 졸려서 올라가면 한 시쯤이다. 우리집은 공항 근처라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매일 보는데 오늘은 착륙하는 것 밖에 못봤다. 덕분에 도서관앞으로 비행기 그림자가 지나가는 게 잘 보였다. 처음 비행기 그림자를 봤을 때처럼 가슴이 뛰진 않지만, 좋았다. 졸음을 내쫓으면서 스트릭랜드라는 등장인물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게 이사람은 땅에서 죽기 싫어서 하늘을 방황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단지 그림이라는, 창작욕구에 몸을 던지고 싶어 스스로 방황을 선택했다. 이 방황은 모험으로 보일 수 있지만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모험은 길은 모르더라도 확실한 목표가 있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목적도 없고, 방향도 모르고, 이끌려 던져졌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중간에 쉴 겸해서 같이 가져온 팩트풀리스도 조금 읽었는데 이분법과 간극이 없다는 부분까지 읽었다. 하늘을 보니 조금 망가졌지만 아직 예뻤다. 우리 집에선 북한산이 보인다(몰랐는데 아빠가 북한산이래). 시야 끝에 흐릿해진 북한산과 하늘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었다. 읽은 것과는 상관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발 아래 하늘이 더 많을까, 땅이 더 많을까?' 답이 필요없는 질문이다. 그런 걸 원하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도 생각났다. 내가 쓸데없는 질문을 하면 옆자리에 앉은 전교일등은 짜증을 냈다. 반 애들이 써서 낸 꿈은 전부 장래희망이었다. 이과 물리화학반이라 그런지 단어에서 기름때가 진동했다.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부인과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자신의 몸조차 재대로 돌보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현실의, 최소한 내 주변의 누구도 달을 보지 않는다. 하늘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저녁에 할머니와 저녁을 먹으면서 창밖을 봤다. 내가 말했다. '아침엔 하늘이 참 예뻤는데, 한나절만에 우중충해졌네요.' 할머니는 장마가 온다고 해놓고 안온다는 말만 했다. 산책을 하던 중에 비행기 그림자가 나를 지나갔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비행기가 지나갈 때 좋아하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모두 시끄럽다며 싫어했다.


 왜 아무도 낭만을 입에 담지 않을까. 왜 모두가 비슷한 걸 목표로 정하고 그걸 꿈이라고 부를까. 스트릭랜드의 색채는 참으로 특이했다고 한다. 모두가 그의 그림을 보고 욕하더라도 그 그림은 그만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만의 그림. 누가 뭐라하던 상관 없는 단지 그리는 것이 목적인 그의 그림. 주위를 둘러보아도 꿈을 그자체로 갖고 있는 사람이 없다. 타인과 비교할 수 있는 타인이 부러워할 만한 그런 걸 꿈이라고 부른다. 


 일곱살때 유치원에서 우주 그림을 그렸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그림은 고등학교 2학년부터 내 책상 앞에 뒀다. 그림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의 난우주에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왜 스스로에게 이런 대답이 필요없는 질문을 하는 걸까. 아무래도 모르는 사이에 우주를 그리던 꼬마애가 돌아올 것 같다.


 이걸 쓰면서도 벌써 비행기가 3대나 착륙했다. 밤이라 그림자는 보이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처음 본 비행기 그림자의 두근거림은 줄 수 없겠지. 하지만 그때를 떠올려볼 순 있게 한다. 잠깐 컴퓨터 전원 끄고, 핸드폰 화면 끄고 하늘 어디에 달이 떠있는지 찾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