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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그리스도교』는 생 시몽 백작(이하 생 시몽)이 말년에 남긴 철학적 대화편이다. 모든 대화는 '보수주의자'와 '개혁가'의 두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어떤 대화에서든, 두 인물은 모두 그리스도교인이다.
서문 이외에는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새로운 그리스도교 질서의 필요성, 2장은 당대 가톨릭주의의 문제, 3장은 당대 프로테스탄트주의의 문제를 담고 있다. 1장은 매우 짧으며, 본편에서는 유일하게 대화편이 아니다. 여기에도 독특한 지점이 하나 있다. 1장은 대화가 아닌 반면, 역으로 서문은 대화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은 서문은 저자의 말, 1장부터가 대화편인 경우가 많을텐데 말이다.
이 책을 저술한 생 시몽은 유명한 혁명가이기도 하다. 그는 유명한 라파예트 후작(그는 프랑스 인권 선언을 작성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또 다른 한 명은 엠마누엘 조제프 시에예스이다.)과 함께 미국 독립 전쟁에도 주역으로서 참여한 전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혁명 당시에는 누구보다 그 이상에 동감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다만 우리도 알다시피 혁명의 결과는 당초 의도했던 것과는 상당히 괴리되어 있었다. 혁명 직후에는 로베스피에르의 과두정치가 있었고,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로는 나폴레옹의 제정이 등장하는 등 시대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런 관계로 그 역시 다른 방향의 전회를 꾀하게 된다. 그의 이름을 따 '생 시몽주의'라고 불리는 사상의 탄생에는 이러한 배경이 작용하고 있던 것이다.
역자에 따르면 그가 역사를 계급투쟁의 장으로 인식한 최초의 사상가였다고 한다. 많이들 이러한 갈등론적 역사관에서는 카를 마르크스를 떠올리고는 하는데, 시기상으로는 생 시몽 쪽이 먼저였던 셈이다(사실은 마르크스 이전에 이미 프루동과 같은 사상가들도 그 점에서는 유사한 견해를 개진한 바가 있다. 마르크스 자신도 이 점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공산당 선언』에서 분명히 생 시몽의 사상을 언급—비록 '공상적 사회주의'의 일종으로서 다소 불완전 했다는 지적을 남기긴 하지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마르크스와 동시대인이었던 밀도 『사회주의론』에서 공상적 사회주의를 중점적으로 다뤘지만, 생 시몽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았다. 그는 오언과 푸리에의 견해를 주로 검토했다. 참고로 밀과 오언은 접점이 꽤나 있다. 밀의 부친인 제임스 밀이 오언과 더불어 벤담의 제자였으며,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저작을 통해서 '진정한 그리스도교 정신'을 되살리고, 이를 자본가와 노동자, 더 나아가서 계급 갈등 전반의 대안으로 대두시키고자 했다(추가적인 정보를 첨언하자면, 그는 급진적 혁명의 재림에는 반대하였다. 그는 사실상 역사가 계급투쟁이었다고는 인정했어도,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계급이 종식되기 전까지 인류 역사는 항상 계급투쟁일 수 밖에 없으며, 그것으로 자본주의 역시 무너질 것이라고 한 마르크스와의 주된 차이점이다. 생 시몽은 마르크스와는 반대로 계급 간의 연대를 주장했다. 그 연대의 원천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적인 내재적 규범에 호소했다. 이러한 행태는 그가 마르크스의 후계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비판 받는 계기가 되었다—정작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생 시몽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여러 번 남겼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평가를 덧붙이자면, 이러한 행태를 두고 생 시몽을 옹호하기는 어려워보인다. 비판자들의 말마따나, 소위 '도덕률'과 같은 실질적 영향력이 제한적인 가치 때문에 권력자가 사회적 약자를 위하게 될 수 있다는 바람은 실현되기 어렵다. 그보다는 어떠한 실정적인 기제가 마련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음이 자명해보인다.
다만 그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계급론은 실은 마르크스나 엥겔스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마르크스 본인이 『공산당 선언』에서 이야기한 대로, 양자의 시대의 기조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 시몽의 시대에는 아직 귀족, 성직자, 왕족과 같은 유한자들의 권력이 살아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생 시몽은 유한자들과 근로자—이는 마르크스적인 의미의 '노동자'와는 다르다. 유한자가 아닌 모든 일하는 계급을 포함한다. 학자, 부르주아, 도시 노동자, 자영농 등을 전부 포괄하는 개념이다.—들 간의 대립을 세웠다. 그의 눈에는 부르주아와 노동자가 같은 계급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연히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내재적 규범이라는 기제를 통해 그들 모두가 유한자들을 배제하는 협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어떤가? 그들의 시대에는 이미 봉건적 권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있었다. 그들은 명백히 자신들의 시대를 부르주아 혁명이 도래한 것으로 보았다. 그들의 현실에서는 이미 부르주아와 노동자는 서로 다른 계급이었다. 부르주아가 봉권적 권력이 떠난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더이상 생 시몽과 유사한 대안을 내놓을 이유가 없었다.)
비록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성공한 대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 읽어볼 여지가 있다고 믿는다. 제라드 윈스턴리와 토마스 뮌처를 포함하여, 이런 부류의 인물들은 상당히 흥미로운 대답을 내놓기 때문이다('이런 부류'란 비주류적인 사상가들을 통칭하는 것이긴 하나, 여기서는 그리스도교 사회주의라고 봐도 무방하다. 셋 중에는 뮌처가 가장 선구적이며, 윈스턴리가 가장 구체적이다. 생 시몽은 상술한 대로 프랑스 혁명기의 인물이다. 윈스턴리는 잉글랜드 내전 시기의 인물이다. 뮌처는 종교 개혁 시기의 인물이다. 세 인물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모두 성경에 의존하여 그리스도교의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역설하며, 이를 통해 사회주의에 가까운 사상을 끌어낸다는 데에 있다.)
그들의 대답에 꼭 동감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독특한 의견을 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의 책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같은 후대의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실증주의로 유명한 콩트와 그 후예 뒤르켐 등에게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니 그의 사상을 접하는 데에는 역사적인 의미도 상당히 클 것이다. 사상 자체의 특성은 차치하고, 실은 사상사적인 측면만 봐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함께 생 시몽이 그리는 '새로운 그리스도교'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본 감상문은 그의 저술을 각 부분 별로 나눠서 살펴보고, 이에 대해 논평을 더하는 방식으로 쓰일 것이다. 각 부분의 제목은 생 시몽이 붙인 그대로 적는다.

1. 서문
그는 서문에서 이 저작을 쓴 목적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제목은 『새로운 그리스도교』이고, 주된 내용도 그리스도교이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종교에게 통용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다시 말해 이 저작은 어떠한 신적인 존재에 기반하여 세운 윤리를 되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세력들에게 비판을 날리는 이유도 모두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가 생각하기에 양대 그리스도교 세력들은 모두 그러한 목적에 충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설명 내에는 편협하다고 보일 수 있는 지점도 하나 있다. 바로 볼테르를 두고 회의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사람이라고 비하하는 부분이다. 그는 뒤에서 그러한 회의주의자들의 문제는 '그리스도교적 원칙이 지닌 초인적인 탁월성'(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에 대한 의심을 확산한다는 데에 있다고 덧붙인다(아마도 그의 체계에서 이 탁월성은 절대적인 것이며, 의심될 수 없는 가치인 듯하다. 우리는 이것을 앞으로의 전개에서도 일종의 전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볼테르는 그리스도교인은 아니다. 그는 이신론 계열에 속하는 인물로, 『철학사전』에서 인격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것은 차치하고, 볼테르가 그리스도교적 내재적 규범에 대해 회의적인 인물이었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의 『관용론』을 떠올려보자. 해당 저작에서 볼테르는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확립 해나가는가? 그는 철저하게 성경에 기반한 논거들을 통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관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상기한 대로 인격신은 부정했지만, 『신약성경』의 계율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긍정적이었다. 『관용론』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는 성경에 적힌 대로 행동하지 않는 당대의 그리스도교들을 비판한 것일 뿐이다. 자신이 그리스도교도가 아니라는 점만 제외하면, 사실상 지금 생 시몽이 하려는 것과 유사한 작업을 한 셈이다.
이후로는 두 인물의 대화가 시작된다. 보수주의자는 그리스도교의 기원이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그리스도교를 완전하게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아마도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하기에, 인간과 그들의 피조물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는 견해인 듯하다. 이러한 논변에 대한 자세한 신학적 근거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얼핏 들어본 적은 있다. "신은 완전하다—완전함이란 모든 긍정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구별되지 않는 것은 동일하다—완전한 피조물은 신과 구별되지 않는다—그러므로 두 대상은 동일하다—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존재 자체가 부재한 상태에서 어떠한 행위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신도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예컨대 '모든 남자는 여자다'와 같은 일을 실현시키기]은 행할 수 없다—그러므로 신은 완전한 피조물은 창조할 수 없다[전술한 대로 완전한 피조물은 신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피조물인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와 유사한 논변인 것일까? 위 부분은 라이프니츠가 '신 이외에는 아무도 전지전능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제시했다는 논변을 적은 것임을 알린다. 나는 이것을 한 지인에게서 들었는데, 그는 이 분야에 무지한 나에게 쉽게 설명하고자 일부러 단순화 했을 것이다. 라이프니츠 원전을 읽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다만 분명히 본래 논증은 전제까지 철저히 제시된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 논증은 그것을 극히 단순화 하고 생략을 가한 것이라 구멍이 많아보이는 것이다. 나로서는 극중의 보수주의자가 이러한 신학적 배경에 의거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위해 이 논증을 언급한 것이다. 따라서 논증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더 진행시키지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스도교를 완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설파하고 다녔느냐고 개혁가에게 질문한다. 보수주의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견해와 믿음이 대립하므로, 모순적인 행보임에도 말이다.
이에 대해 개혁가는 대답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직자의 자의적인 설교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그는 전자는 우리가 하나님보다 덜 완전하므로 개선할 수 없지만, 후자는 다른 인문 과학들처럼 완전하게 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신학도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쇄신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이 부분도 아무 이야기 없이 넘어가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 않다. 분명히 보수주의자와 개혁가가 생각하는 '완전함'은 의미가 다른 듯하다. 상술한 대로 보수주의자의 경우 신학적인 의미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개혁가의 경우는 추측하기가 난해하다. 우리는 보통 과학을 '완전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의 본질은 언제든 반증이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모두 포괄한다. 다시 말해 과학적 방법론의 측면에서 그의 말이 의아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일단락 되고, 다시 보수주의자는 질문한다. 그렇다면 개혁가가 생각하는 그리스도교의 신적인 부분은 어디에 있는지 말이다.
개혁가가 대답하기를, "서로 형제처럼 대하라"라는 대원칙이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적인 특성을 압축한다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전능하기 때문에 단 하나의 원칙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구축해냈다고 주장한다. 그에 더해 그러한 궁극적인 원칙에서 '인간은 가장 많은 사람에게 이로운 사회를 구성하고, 가장 인원수가 많은 계층들의 도덕적•물질적 상황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당위를 도출해낼 수 있다고 본다(이 대목은 아마도 생 시몽이 종래까지 주장해온 노동자 중심의 통치를 염두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을 듣고 보수주의자 역시 신이 하나의 원칙에 기반하여 인간에게 체계적인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만 그는 다시 질문을 잇는다. 그렇다면 교회의 권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이다.
다시 개혁가가 답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그의 의지로 교회를 세웠다는 점을 인정하고, 초기 교부들의 행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초기 교부들의 교리는 간단하기 그지없었는데, 신적 윤리에 따르는 이는 선한 이, 따르지 않는 이는 악한 이라는 구분만 존재했다는 것이다.
또 교부들은 신적인 목표를 도모하기 위한 역량이 있었지만, 오늘날의 성직자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고 덧붙인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에도 훌륭한 그리스도교인들은 많지만, 그들 대다수가 평신도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성직자들은 그들의 자의적인 견해와 신을 결부 시키려는 이단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까지 지적한다.
이후 자신은 이러한 이단적 그리스도교에 맞서, 새로운 그리스도교를 제시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는 새로운 그리스도교는 정치 원리와 완벽하게 규합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일반적인 도덕률로써 유일한 윤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유일한 윤리는 교권은 물론이고 세속권까지도 전부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이는 사실상 전세계를 다시 한 번 신정일치 정체로 되돌린다는 것인데, 지금은 물론이고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가 궁금해진다. 생 시몽이 살아가던 후기 근대는 한창 신정의 분리에 목을 매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계몽주의자들이 쓴 저서들을 읽어보면 신정분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경우를 아주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신정일치 정체에 대해서는 고전적인 반박—알렉시 드 토크빌의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서 제시된 반박이 대표적이다—이 참 많지만, 굳이 제시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하다. 공연히 소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아도, 글을 읽는 사람들은 왜 그러한 정체에서 탈피해야 했는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렇듯 완벽한 교리를 제시하기 위해, 지금부터 유럽에서 아메리카까지의 모든 영적인 기관들을 분석해보이겠다고 밝힌다.

2. 제1장:여러 종교에 관하여
전술한 대로 제1장은 대화 형식이 아니다. 이 부분은 차라리 개혁가가 홀로 펼치는 연설에 가깝다.
그 내용은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대략적인 형태이다. 아마도 서문에서 언급한 분석이란, 2장과 3장에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각 종파들을 논한 것을 일컫는 듯하다. 나는 그가 분석 끝에 종합으로서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먼저 개괄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보충하는 방식으로 이어가는 듯하다.
그에 따르면 새로운 그리스도교 역시 기존의 이단적 그리스도교(그의 표현이다)와 조직이나 기구의 구성은 유사하다. 여기에도 동일하게 성직자, 종교 의식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목적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생 시몽은 새로운 그리스도교는 모든 이단 사설이 제거되어 정화된 모습을 띨 것이며, 모든 종교 의식과 교리는 신적인 내재적 규범을 위한 목적만을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당연히 전술한 대로 그 모든 규범의 원천은 "인간은 서로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라는 원칙에서 도출된다. 그는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면 다음의 원칙이 새롭게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종교는 극빈층의 처지를 가능한 조속히 개선한다는 위대한 목표로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그에 의하면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목적은 이러한 목표의 실현이기에, 교회의 지도층과 성직자들 역시 극빈층의 복지 증대에 천착해야 한다.
위 부분까지가 그의 새로운 그리스도교 개괄이다. 그는 이제부터 기존의 그리스도교들이 모두 이단일 뿐임을 밝혀내고,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우위를 증명하겠다고 천명한다.

3. 제2장:가톨릭에 관하여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가톨릭에 대해 논하기 시작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대의 가톨릭 상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의 행적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상당한 정통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신자의 수도 세계에서 가장 많아 영향력 역시 제일인 종교이다(참고로 현대 기준으로는 약 19억명인 이슬람이 가장 신자 수가 많다.)
그들은 테오도시우스 황제 이후로 언제나 세계를 지배하는 도시를 지켜왔다. 그 수단에는 군사력도, 신적 윤리를 대표하는 국교로서의 절대 권력도 있었다. 당대의 가톨릭 성직자들은 이전 세대의 부와 명예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들의 세는 교황 레오 10세 이후로 크게 약화(종교 개혁은 레오 10세 제위에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본격화 되었다)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건재한 상태이다. 오늘날 그들은 이어받은 권력을 이용하여 물질적이고, 계략에 의존하는 통치를 일삼고 있다.
개혁가는 이들이 이단이라고 단언하는데, 그 이유로는 네 가지를 든다.
첫번째는 성직자들이 영성체 때 강론하는 내용이 그리스도교의 궁극적인 목표에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상기한 대로 개혁가는 줄곧 그리스도교의 지상에서의 목표가 '빈곤층의 도덕적, 물질적 생활 개선의 조속한 시행'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성직자들은 평신도들이 이러한 사실에 귀를 기울이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실제로 공식적으로 집필된 가톨릭 교리에 대한 저작과 기도문 기록들을 훑어보니, 어디에도 그러한 목표가 나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내용은 (개혁가의 기준에서) 쓸데없는 신비주의적 개념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그러한 개념들은 결코 신자들을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원리로 이끌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가톨릭 성직자들은 체계적인 논증을 통해 신자들을 하나의 목표로 이끌었다며 반박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그들이 가진 목표란 이단적인 것이었다. 개혁가는 그들이 평신도들을 성직자의 권위에 종속되도록 의도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작금의 가톨릭 예배 의식 역시 동일한 역할을 위한 의식일 뿐이라며 지적하고 있다.
두번째는 성직자들에게 신자들을 구|원으로 이끌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학생들을 오도하고, 더 나아가 그러한 잘못된 지식을 습득한 이들을 성직자로 등용하는 과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학문을 우리는 신학이라고 부른다. 신학이란 무엇인가? 교리나 예배 의식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논증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개혁가에 따르면 신학은 이단적 성직자들에게나 중요한 학문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그리스도교(를 자칭하는)인 새로운 그리스도교에는 신학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소한 논증의 문제에 천착하여, 빈곤층의 도덕적, 물질적 개선에서 눈을 돌리게 만들기 때문이다(줄곧 이야기 해온 대로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교의 성경과 교리에 대해 소상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신학이 단순히 '본질에서 눈을 돌리게 하기 위한' 허위적 학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간 신학자들이 논증을 통해 해온 노력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시적으로는 신의 존재와 그리스도교의 정당함을 증명하기 위한, 미시적으로는 그것의 운행을 설명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그러한 노력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야훼와 그리스도교의 존재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이 존속되는 것이 가능했던 것 아닌가? 아무도 그리스도교의 성경과 교리에서 비롯되는 모순들이나 문제점들을 해명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교를 진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수 있었을까?
나는 신학자들도 직접 전도와 봉사를 도맡은 활동가들만큼이나, 그리스도교의 확산과 유지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따라서 그것이 무의미한 활동이라고 보기에는 기여도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개혁가가 가장 칭송하는 그리스도교의 원칙이 그때까지 전승되어 왔던 데에 말이다.)
세번째는 정작 가톨릭 성직자들의 통치가 누구보다 반그리스도적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빈곤층의 생활 개선이라는 기준에서 봤을 때, 교황과 추기경은 오스만제국 황제만도 못하다.
그는 특히 빵의 법정 가격을 정한 법률에 대해 교황이 빵집들을 소유한 추기경들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제정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법 때문에 법정 가격보다 빵을 싸게 판매한 빵장수가 처벌을 받게 되었는데, 개혁가는 이 사태를 놓고 조소하고 있다(하지만 해당 법률 자체에 대한 비판과 판결에 대한 비판은 분리될 필요가 있다. 개혁가는 이를 분리하지 못 한다. 교황과 성직자들이 어떤 의도에서 해당 법률을 제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어쩌면 개혁가가 말한 이유가 아니라, 빵의 공급량 문제 때문에 제정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판관은 해당 법률에 의거하여 마땅히 내려야 할 판결을 낸 것 뿐이다. 그는 법관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했을 뿐, 개혁가의 말처럼 '불공정한' 판결을 내린 것이 아니다.)
또한 성직자들은 유한자들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성직은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산업 분야 곳곳이 마비되어 빈자들은 아사할 형편에 처해있다. 그들은 전적으로 교회 기관의 자선에 의존하는데, 개혁가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이것은 그들에게 불행을 안겨준다. 이들도 성직자들처럼 무위도식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무위는 강도질과 같기에, 모든 해악의 어미가 된다고 주장한다(유한자들의 행태가 강도질이라고 본 것은 후대의 프루동, 베블런 등과 공명한다. 단지 상기한 대로 생 시몽의 시대에는 부르주아는 유한자가 아니었던 것 뿐이다.
또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건너 뛰었는데, 그가 교황 및 성직자들이 같은 유한자들인 오스만제국 황제보다도 악하다고 평가한 이유는 무위도식자들을 재생산 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네번째는 그리스도 정신과 상반되는 종교 재판소 및 예수회에 대해 줄곧 보호해왔다는 것이다. 개혁가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온유와 선, 자비, 충성이며, 그리스도교의 무기는 설득과 논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종교 재판은 폭력과 공포를 그 무기로 사용하며, 예수회의 정신은 이기주의이므로 그것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게다가 예수회는 교회는 물론이고 세속 권력까지 탐하였으므로 최악의 기관이라고 그는 평한다. 또한 종교 재판은 반그리스도적인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일찍이 교회에 폭력을 금지하였는데, 종교 재판은 대놓고 폭력을 그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들은 왜 묵인 되었는가? 개혁가는 언제나 가톨릭 성직자들이 절대 권력을 가지기 위한 의도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말한다(놀랍게도 이 마지막 이유는 생 시몽이 비판했던 볼테르의 저서들을 상기시킨다. 볼테르는 종교 재판과 예수회의 활동에 대해 줄곧 반감을 표명했는데, 그 이유는 생 시몽이 극중의 개혁가로서 제시한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는 상기한 이유로 오늘날 가톨릭 성직자들은 적그리스도들이나 다름 없다는 공격과 함께 글을 마친다.

4. 제3장:개신교에 관하여
이 장을 시작할 때, 개혁가는 갑자기 세속인들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지난 15세기부터 유럽의 정신을 발전시킨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다빈치, 그리고 베네치아의 메디치 가문 등은 모두 세속인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이것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성직자들이 세속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적 우위를 잃었다는 지적이었다. 르네상스에 대해서는(인물이나 시기로 보았을 때 생 시몽이 언급한 것은 이 움직임이 맞는 듯하다) 여전히 갑론을박이 있지만, 중세의 종언을 알|리는 흐름이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합의가 되어있다. 근대가 오면서 교권보다는 세속권의 우위가 대두 되었다는 것 역시 그러하다. 개혁가는 그러한 세태를 언급한 것이다.
그런 세태에서 그리스도교는 세속 권력의 수하로 들어가며 점점 더 부패하게 되었다. 이윽고 레오 10세의 시대가 되었을 때, 교회 권력은 세속 권력과 같았으며 교황은 세속 군주나 다름 없었다. 이전과 같은 교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위의 이야기까지가 개혁가가 간략히 요약한 종교 개혁 시대의 배경이다. 당연하게도 이 다음으로는 종교 개혁의 주역인 마르틴 루터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루터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당대 교황청의 행태에 대해 대대적인 비판을 늘어놓고, 이를 통해 여론을 바꾸는 것이었다. 루터는 이 시도에서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개혁가는 루터의 교황청 비판이 문명에 커다란 유익을 주었다고 조명한다.
두번째는 가톨릭과는 다른 종교를 세우는 것이었는데, 개혁가는 이 부분에서는 루터가 미흡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루터가 세우려고 했던 새로운 교회는 교리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이단적이었다. 따라서 그는 루터주의자들 역시 이단이라고 단정한다.
그는 이어서 루터가 빈곤층의 생활 개선이라는 대원칙을 위해서 한 일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살피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먼저 4가지 사실들을 밝히고 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첫번째는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극빈층을 위해 인류를 재조직 하라는 임무를 맡겼을 시점의 인류 문명은 아직 초창기였다는 것이다. 당대에는 아직 한 가지 원칙에서 비롯되는 윤리학 체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당시 사회에서는 아직 애국심이 중요한 감정이 아니었으며, 지구의 규모를 알지 못하여 토지 소유 개선을 위한 일반적 계획을 구상할 수 없었다고 덧붙인다(당연한 이야기지만, 위에서 개혁가가 한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예수가 살던 시기는 로마 제정 시대인데, 당연히 단일 체계를 갖춘 윤리학도 이미 한참 전부터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 시절에 주창된 스토아 철학이나 에피쿠로스주의 등도 전부 한 가지 원칙에서 비롯되어, 그것을 확장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애국심이 중요해지기 이전이라는 말도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제정의 경우 대부분의 시기가 혼란했지만, 공화정 시대 로마에서는 시민의 애국심이 무엇보다 강조되었다. 토지 계획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로마에서는 굉장히 일찍부터 토지 계획이 시작되었다. 로마의 역사를 보면 공화정 시절의 그라쿠스 사건 등도 평민들을 위한 농지법 개정 문제가 화근이었다.)
두번째는 루터가 개혁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이러한 조건이 상당히 완화 돼있었다는 것이다. 노예제는 거의 폐지되었으며, 세속 귀족들의 권력도 약화 되어가고 있었다. 또한 종교 체계와 윤리 체계가 합일된 상태에 있었고, 그리스도교가 기초적인 가치가 되어 더이상 약육강식의 논리가 정당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기반인 박애의 정신이 널리퍼져 인간은 모두 같은 주의 자녀로 여겨야 한다는 점이 인정 받았다(이 부분도 개혁가가 너무 단순화를 심하게 한 듯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적 내재적 규범이 그 정도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말 할 수 없을 듯하다. 교권이 더 강했던 중세시대에만 해도, 교황이 보낸 십자군이 같은 그리스도교 국가인 동로마제국의 수도를 유린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은 명백히 그리스도교적 정체성보다 해상 무역의 경쟁자였던 동로마제국을 처단하는 일을 중시했다. 종교보다 국가이성이 더 앞섰던 것이다. 당시 교황이었던 인노첸시오 3세는 이 소식을 듣고 공식적으로 규탄 성명을 냈으나, 결국 실질적으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세번째로 개혁가는 루터가 개혁을 완성했다면 선포했을 교의에 대해 그려내보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 앞 부분에서 말한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구상 내용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그리스도교가 전세계를 호령하는 단일한 종교 및 윤리 체계로서 자리잡아야 하고, 이를 통해 세속권까지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목적도 상술한 '가장 수가 많은 계층의 도덕적, 물질적 생활 개선'이다. 이러한 생활 개선은 학자와 예술가, 산업가들과 적극 협력해 가장 생산적인 중앙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는 갈등의 해결 방법으로 설득과 논증만을 남겼으니 전쟁을 전면 금해야 하며, 만약 벌어진다면 각국의 성직자들을 동원해서 억지력을 구사해야 한다.
상기 내용까지가 루터의 입을 빌린 개혁가(의 입을 빌려서 생 시몽이)가 주장한 개혁된 그리스도교의 교의이다.
네번째는 루터에 대한 평가의 연장선이다. 그에 따르면 루터는 당대 가톨릭 행태 비판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저명했다. 그러나 개혁 교회를 세우는 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가 근본적으로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신정분리 추구 때문이다. 상기한 대로 개혁가는 줄곧 신정일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상과는 다르게 루터와 종교 개혁자들이 그리스도교적 내재적 규범을 사회와 정치 전반에 확대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그는 프로테스탄트들도 역시 이단이라고 단정한다(초반에도 다뤘듯이, 근대 정치에서 신정분리 흐름은 의도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차치하고, 사실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이 신정분리를 지지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루터와 함께 종교 개혁의 대표로 뽑히는 칼뱅의 경우, 그 자신이 제네바에서 신정일치 정체를 조직한 바가 있다.)
이어서 개혁가는 예배 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얼마 전에 읽었던 매튜 아널드와 견해가 유사하다. 청중을 고양시키기 위해 모든 예술적, 기술적 장치를 적극 도입해서 웅대함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배는 그 자체로 위대한 권위가 있는 것처럼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사실 프로테스탄트들이 이런 의식을 거부한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개혁가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들은 자신의 주장을 듣고 그런 예배 의식을 사용하는 가톨릭들의 설교가 공익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해올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이에 대해 자신은 지금 어느 쪽이 더 이단인지 가리려는 것이 아니며, 결국 둘 다 진정한 그리스도교가 아니라고 답한다(개인적으로 이 말은 상당히 궤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왜 가톨릭식의 예배를 되돌리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가톨릭도 프로테스탄트도 모두 이단이 아닌가? 나는 진정한 그리스도교를 세우려고 할 따름이다."인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이후로 자신이 세우려는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거론한다. 새로운 그리스도교에서는 보편적 윤리 원칙과 사익 추구 사이에서 전자가 승리할 것이며, 모든 민중을 영구적 평화의 상태에 있게 할 것이라고 천명한다. 또한 가톨릭이 불경한 세속 지식으로 간주한 경험 과학과 산업을 신학 위에 놓을 것이며, 이웃의 생활 조건 향상을 위해 일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교리로 가르치는 모든 신학을 금하겠다고 밝힌다.
드디어 개혁가의 매우 긴 연설이 끝났다. 이후로는 다시 보수주의자와의 문답이 벌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은 논하지 않겠다. 그는 사실상 문답에서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를 재서술 하고 있으며, 그것도 더 완고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 부분만 인용하겠다.
"(...)이 교리의 지지자들은 신적 윤리의 원칙에 기대는 데 반해 반대자들은 예수회의 이기주의적 신조가 옹호하는 무지와 야만의 시대에 체결된 관습 외에 다른 공격 수단이 없습니다."
반대자들에 대해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표현을 남기고 있는데, 도대체 여기에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도 더 언급할 것이 있다면, 초반부에서 이야기한 초기 교회의 교부들의 행보를 본받기 위한 수단으로 비폭력적인 방식을 조명한다는 것이 있다.
마지막으로 후반부에서의 설명을 논하고 끝내려고 한다. 여기서 생 시몽은 물리학이나 수학과 다르게, 윤리학에서는 여태까지 아무도 예수의 것보다 보편성이나 정확성에서 우월한 원칙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이 원칙이 우리의 행동 일반의 지침이 되지 못하면 다시금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사회로 이어질 것이라고 염려한다.
이어서 그는 상기한 예수의 윤리가 가진 보편성과 정확성을 아무도 능가하지 못했기에, 그것은 초인적인 지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계시의 증거라는 이행을 벌이고 있다(일단은 예수의 원칙이 가장 보편적이고 정확한지 자체가 논란에 있다. 단순히 그리스도교 신자가 가장 많으니 그럴 것이라는 예상은 제대로 된 근거가 되지 못한다. 또한 가장 보편적이고 정확한 윤리학을 일찍이 제시한 사람은 초인적일 것이니, 그것이 곧 계시 종교의 정합성이라는 것은 매우 허술한 인과 추론이다.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애초에 윤리학에서 '가장 정확한' 같은 수식어가 통용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알다시피 규범 윤리학에는 가치판단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가치판단이 없는, 아니 실제로는 없는 척할 뿐인 체계들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다. 가치판단은 없는데 무언가 당위가 도출되는 것처럼 보인다면, 사실이라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실만 있고 가치판단은 없으면 거기에서는 당위가 도출될 수 없다. 그것이 당위의 형태를 하고 있다면, 은연중에 가치판단이 숨어있을 뿐이다.—사실을 가릴 때는 정확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을지 몰라도, 가치판단이나 그것과 사실이 결합—사실의 경우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되어 도출되는 당위에 대해서는 그런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
가장 많은 시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가치판단은, 그것이 어느 정도 보편성을 담보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가장 정확하다는 것은 말해줄 수 없다. 가치판단은 사실판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위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 어떠한 당위가 정확한지 아닌지는 그것을 도출하는 윤리 체계 내에서 판단될 문제이다. 다른 윤리 체계의 당위들과 비교하면 더이상 사실 문제를 가릴 수 없게 된다. 생 시몽이 말한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당위적 명령이 그 자신의 체계 내에서는 가장 정확할 수도 있다. 다만 다른 윤리학들과 비교할 때는 더이상 정확과 부정확의 문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후 그는 새로운 그리스도교가 여타의 모든 철학적 학설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이 주제를 두번째 대화편에서 논하겠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이 저작이 발표된 직후 작고하여 우리로서는 읽을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