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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는 현실은 하나밖에 없고 미래가 여러 가지 변용을 품은 듯이 보였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현실이 다양해지는 반면 과거는 무수히 변용하여 왜곡돼 보인다. 그리고 과거의 변용 하나하나가 다양한 현실과 이어지는 듯 느껴지기에 꿈과의 경계가 한층 흐려진다. (13p)
시간이 흐를수록 숭고한 것은 조금씩 우스운 것으로 바뀌어간다. 어디가 좀먹는 것일까. 만약 외부부터 좀먹는다면, 원래 숭고함은 외부에 있고 우스운 부분은 안쪽의 알맹이를 이루었던 것일까. 아니면 숭고함만이 전부이고, 그저 외부에 우스운 먼지가 내려 쌓인 것뿐일까. (262p)
이 인버네스가 저란 말입니다. 무슨 눈속임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 인버네스가 아비라는 존재입니다. 어두운 겨울의 밤하늘이죠. 이것이 멀리까지 옷자락을 펼쳐서 아들이 돌아다니는 땅 위를 덮고 있는 겁니다. 아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빛을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죠. 이 검고 거대한 인버네스가 아들의 머리 위를 드넓게 덮어서, 밤이 이어지는 동안은 밤을 차갑게 인식시킵니다. 아침이 오면 인버네스는 땅에 떨어지고, 아들의 눈이 빛으로 가득 채워지게 합니다. 아비란 그런 존재예요. (387p)
눈앞에 있는 이누마의 무례한 말에 조금 울컥했어야 할 혼다가 평정을 지킬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밀담이니 들어오지 말라며 종업원을 내보낸 이 작은 방에서 이누마가 그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한 뒤 털 많은 손가락을 떨며 서둘러 술을 따르는 모습에서, 혼다는 이누마가 결코 말하지 않을 어떤 감정을, 아마도 그가 아들을 밀고한 가장 깊은 동기를, 즉 아들이 곧 실현하기 직전이었던 피의 영광과 장렬한 죽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질투를 읽었기 때문이다. (389p)
법률이란 인생을 한순간의 시로 바꾸고자 하는 욕구를 부단히 가로막는 무언가의 집적이다. (415p)
“저는 환상을 위해 살았고, 환상을 노리고 행동했으며, 환상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군요... 부디 환상이 아닌 것을 가지고 싶습니다.”
“어른이 되면 가지게 될 것이다.”
“어른이 되기보다... 그래, 여자로 다시 태어나면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여자라면 환상 같은 것을 좇지 않고 살아갈 수 있잖아요, 어머니.” (4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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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문장은 모르겠는데 신풍련사화랑 마지막이 이누마가 갈등하는 장면이 참 기억남는다
달리는 말은 아닌데, 봄눈에서 바다 묘사하는걸 보고 진짜 미친놈이구나 싶었음. 바다색이 점점 짙어지는 것부터 파도가 오면서 흩어지는 것까지.. 역본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문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파도의 흰 물결을 말로 비유하면서 처음에는 새하얀이라는 고풍스러운 단어였다가 작게 변했을때 흰이라는 간결하고 그냥 색감적이다 라고 느껴지는 단어를 쓴게 인상깊었다
그 백합 어쩌고 하는 장면 미시마는 어떤 순간을 멈추고 그 순간이 지닌 모든 것을 해부해 보이는 재주가 있는데 그 장면이 좋은 예시 같음
ㄹㅇ... 그러고보니 위화가 포크너에게 배웠다는 묘사법도 강조하고 싶은 하나의 순간을 잡아서 멈춘 상태에서 해부해라, 뭐 이런 거였는데 나름 대문호들의 특징일지도.
370p-이사오는 그곳에 그 입술이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거사 직전 마키코랑 있을 때 나온 문장.. 봄눈의 '그곳에만 여름이 있었다'에 필적하는 낭만이라고 생각함 ㅋㅋ
난 이사오가 주변에서 말리려 들때마다 그건 순수가 아니라구욧!! 외치는 장면마다 다 좋았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