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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붕괴하고 약 35년이 지나가는 오늘날, 소련의 후계국가인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을 개시했다. 이러한 오늘날의 국제 정세 속에, 우리들은 러시아와 동유럽의 전쟁 수행에서 무슨 의의를 얻을 수 있을까.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에 이론화된 소련의 주요 군사독트린인 ‘종심작전’과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론인 ‘작전술’에 관해 사색하고 연구하는 것이 어느정도의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고전적인 군사독트린을 그대로 현대전쟁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있다. 프리드리히 대왕 시대의 전쟁과 나폴레옹 시대의 전쟁 방식이 다르고, 또 나폴레옹 시대의 전쟁 방식과 세계대전의 전쟁 방식이 극명하게 다르듯, 소련 시대의 전쟁 방식과 현대전의 전쟁 방식은 다른 종류의 문제의식과 상황에 의거하여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전술’, ‘종심작전’이란 이론 및 방법론을 그대로 버려야 한다는 결론은 되지 못한다. ‘작전술’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이론화된 군사독트린이며 이미 2차대전에서 그 타당성과 위력을 입증하였다. 그리고 소련군은 2차대전 이후 냉전 시대에도 실제로 이 ‘작전술’을 끊임없이 개량해 온 것이다. 소련이 무너지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후계국가인 러시아는 다시끔 전시상황에 들어와 있다. 그렇다면 이 소련-러시아가 사용한 ‘작전술’이 오늘날 어떻게 적용되어 있고, 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관해 고찰하는 것은 나름대로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책의구성위 책은 미국의 소련군사학 권위자인 David M. Glantz의 <Soviet Military Operational Art : In Pursuit of Deep Battle>이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번역이 없는 걸로 안다. 책의 파트는
1장 소련의 전쟁 연구
2장 작전술의 특징
3장 작전술의 구조
4장~7장 작전술의 역사(1917년~1990년)
8장 장래에 관한 전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가 쓰려는 내용은 주로 1장 및 2장이며 3장에서 8장까지의 내용은 매우 전문적이기도 하면서 1장 및 2장으로도 작전술이 무엇인지 그 역사의 변천은 어떠한지 충분히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생략하였다. 아무쪼록 양해바란다.
1.소련의 전쟁 연구1.1.역사와 전쟁소련은 마르크스-레닌 주의를 이데올로기로 하는 나라이며 그렇기에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의 영향을 사회 및 학문 곳곳에 미치고 있다. 소련은 역사라는 학문을 이렇게 정의한다. “역사란, 인류사회의 발전의 매개체로서 모든 (역사발전의) 과정에 큰 다양성과 모순을 항상 품고 있는, 일련의 상호작용이다.”
이 상호작용은 종종 전쟁을 유발시킨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 대한 소련의 설명은 이러하다. “전쟁은 폭력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 및 정치 상의 자연 현상이다. 따라서, 경제, 외교, 이데올로기 및 그 외의 투쟁수단과 동일하게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하며 결정적인 수단으로서 군사력을 이용한다.” 이 설명은 명백하게 클라우제비츠의 전쟁관을 수용한 것으로서,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전쟁의 정치성 및 사회성을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레닌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열심히 읽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련은 군사학이라는 구조로서 전쟁을 연구했다. 즉, 인간 활동을 모두 범위로 한 문맥 안에서 전쟁을 연구한 것이다. 소련은 군사학을 이용하는 것으로 전쟁을 이해하기 위한 실용적이며 포괄적인 분석적 프로세스를 손에 넣었다.
소련은 군사독트린의 범위를 군사-기술(技術)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 측면도 포함한 인간 활동의 폭 넓은 범위까지 넓혀, 그 기능을 ‘군사학의 근거 있는 견해’로서 공산당의 공식적인 의견과 일치시켰다. 이렇게 군사 분석의 객관적 결과를 사회주의의 객관적인 정치상의 진실로 통합시킨, 전형적인 소비에트식 당군체제의 사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2.작전(Operation) 및 작전술(Operational Art)상술한 소련의 전쟁 연구의 정의 및 방법을 뒤로 하고 슬슬 ‘작전술’ 혹은 ‘작전’이 무엇인지 탐구해보도록 하자.
작전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전쟁이 고도화 및 거대화됨에 따른 직접적인 산물로서 발전해 왔다. 전략과 전술이란 개념만으로는 소련이 경험한 수백킬로미터나 되는 광활한 전선에서의 군사 활동을 통합시켜주는, 군사전략적 개념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전략과 전술을 잇는 가교 역할로서의 개념의 필요성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작전’(Operation)이다. 작전은 여러 전술적 성과를 종합하여 상위의 전략을 성공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며, 이 작전의 성공만이 전략상의 성공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전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인 ‘작전술’(Operational Art)은 어떠한 것인가. 작전술은 이론과 실천에 모두 관여하는 폭 넓은 개념이다. 작전술은 일반 혹은 예속 단위 부대로는 행하지 못할 공동작전을 가능케 하는 대단위 부대(large unit)인 정면군(집단군)및 군에 의해서 행해진다. 작전술은 ‘전략상의 요구에 의거하여 전략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전의 준비와 실시 방법을 결정하는 전략과 전술의 중간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작전술의 의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너무나도 복잡하고 비대해진 전쟁에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소련 나름의 해결책으로서 집단군과 그 예하 단위 부대로 이루어진 제(諸)병과연합의 연속적 군사 행동으로 1차대전의 ‘악몽’을 타파하는데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전의 성공을 뒷받침해주는 군사적 카테고리로서 전술의 의의는 당연히 남겨두었다.
2.작전술의 특징과 변천2.1.작전술의 기원전쟁이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빌리자면 전국민을 관여시키고 그로 인해 점점 더 파괴적으로 변하면서 전략과 전술 간의 관계성 및 재정의의 필요성이 생겨났다. 더 이상 전쟁은 18세기의 왕조 간 전쟁처럼 단일 전투로서는 종결되지 않게 되었고 여러 전투를 고려해서 전략을 입안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특히 1차대전의 소모전의 경험은 소련의 군사이론가에게 작전술의 확립을 촉진시키는 길이 되었다.
러시아 내전과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은 1차대전의 소모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 전쟁에선 기병군단과 같은 충격력과 기동성이 높은 편제의 이용이 활발히 이루어져 종심이 얕은 적 전술 방어 진지에 대한 돌파 및 전과 확대가 가능해졌다. 1919년 가을의 데니킨에 대한 작전과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의 전황이 그러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1차대전의 소모전을 타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소련의 군사이론가의 관심을 끈 것은 당연했다.
러시아 내전 종결 후 젊은 군 지휘관을 중심으로 군사학을 토론하기 위한 협회가 결성되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것이 1920년 10월에 결성된 노농적군 참모본부대학 군사학학회였다. 이 학회의 초기저작에는 카메네프와 투하쳅스키의 논문이 있었다. 그들의 논문은 단일 전투의 중요성에 의문을 표하고 그 대신 연속 작전을 시행해야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 연속 작전이 훗날 1936년 소련군 야외교령의 중추 군사독트린으로 채택된 ‘종심작전’의 핵심 컨셉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연속 작전이 가지는 성격이란 무엇일까. 1926년에 출판된 투하쳅스키의 여러 저작에서 연속 작전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이렇게 썼다. “현대 전술은 여러 병과의 합동을 전제로 한 전투의 조직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중략) 현대 작전에서는 결정적 공격을 가하기 위해 충분한 병력을 집중시켜 이 병력으로 종심(縱深)지역의 곳곳에 존재하는 적에게 끊임 없는 타격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 전쟁의 특성상 하루뿐만 이루어지는 전투에서 적의 전 병력을 격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926년에 프룬제 군사대학과 노농적군 참모본부대학의 교수였던 스베친은 작전술을 전략과 전술상의 문맥과 결부시켰다. “전략이 작전술의 목적을 지시하면 작전술도 그와 같이 전술에 영향을 준다.” 스베친과 다른 군사이론가들의 이론적 연구로 인해 군사 이론의 새 카테고리로서 작전술이 부상하게 된 것이다.
2.2.종심작전의 출현과 발전소련군은 우수한 군대와 대항하여 적 종심 깊숙한 지역까지 돌파하는 연속 작전을 실시하기 위해선 군의 기계화 및 차량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인식했다. 1929년의 소련군 야외교령은 적의 방어에 대해 전술상의 종심 전체에 걸쳐 성공을 거두기 위해 포병과 항공지원을 수반하는 보병지원전차, 장거리 공격전차 및 보병의 동시 사용에 의한 종심전투(Deep Battle)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또한 이 교령은 소련의 공업화를 전제로 하고 있었으며 소련의 강제집단화와 공업화는 이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창출해냈다.
투하쳅스키와 예고로프의 감독 하에 작성된 1936년 소련군 야외교령은 종심작전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항공기와 화포에 의한 적 방어종심를 향한 동시 공격, 전차 부대의 광범위한 사용에 의한 적 전술방어 구역에 대한 돌파 및 포위섬멸을 목적으로서 전술 상의 성공을 작전 상의 성공으로 진전시키는 것. 주요 역할은 보병이 다하고 보병을 위해 각종 부대는 상호 지원을 조직화한다.”
이렇듯 종심작전에 대한 명확한 정의로 인해 소련군의 작전술은 소련의 군사학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1936년 이후 이 작전술은 명확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극적인 퇴보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1937년부터 시작되는 스탈린의 정적 및 군부에 대한 ‘대숙청’이 원인이었다. 투하쳅스키, 예고로프, 카메네프, 스베친과 같은 젊고 야심적인 군 지휘관은 모두 일소되었고 숙청으로부터 살아남은 군 지휘관들은 보수적으로 변해 숙청된 선배들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1960년대의 소련군 참모총장 자하로프의 말을 빌리자면, 종심작전이론은 ‘인민의 적’들이 쌓아 올린 악마의 이론이며, 적 종심 깊숙이 진격한다는 독트린은 사보타주 행위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소련군은 다시끔 유동성을 잃은 전투 형태로 회귀한 것이다.
1940년 5월의 프랑스 침공에서 보인 나치 독일의 전격전의 성과는 소련군에게 작전술의 부활 및 수정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군 지휘부의 인사쇄신, 기동부대의 전면적인 재구축은 장교단의 경험부족과 보수주의의 만연으로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소련은 할힌골 전투와 핀란드와의 겨울전쟁에서 얻은 성과 및 교훈을 일반화시키는데 애를 먹었다. 1941년 6월, 작전술을 무시한 것으로 소련은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전쟁의 경과는 정면군과 군의 작전 입안 및 행동에 관한 초기 이론의 정당성을 인식시켰다. 이렇듯 국가의 존망이 위협받자 스탈린은 종심작전의 재입안 및 실천을 시작했다. 주코프 및 티모셴코와 같은 유능한 지휘관에 힘 입어 제1제단 및 제2제단, 제병과연합의 연속적이고 동시적인 작전술의 실행은 독일군을 파멸에 이끌었다. 작전술은 이렇듯 부활을 알1리고 다시끔 르네상스기에 돌입했지만 중요한 것은 스탈린이 종전 후에도 이러한 기조를 이어갈 것이냐였다.
2.3.군사상의 혁명과 작전종심전투이론에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전후의 소련의 군사논문에 적힌 전체적인 공세에 관한 컨셉은 1936년과 1944년의 야외교령과 거의 동일했다. 그곳에는 “공세 전투는 모든 병기의 강력한 화력과 방어의 전 종심을 향한 일격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연속된 전투명령에 의해 결정적인 공세를 수행한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핵무기의 출현에 의한 군사상의 혁명은 작전술의 정의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그러나 통상전의 작전상의 기법에 대한 관심은 옅어지고 그 대신 핵전략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이러한 사실은 제2차세계대전의 작전상의 기법을 분석한 ‘소련 군사 저널’에서의 논문 수의 상대적인 감소를 보면 확연하였다. 또한 1930년대의 종심작전이라는 낡은 컨셉이 이젠 고물이 되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전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어느정도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세메노프는 “핵무기의 사용은 공세 작전의 수행에 있어서 화포의 필요성을 꽤 감소시키지만 이 새로운 무기는 작전의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화포와 항공기를 완전히 폐지하거나 치환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신무기가 등장한 때에는 항상 작전술을 신중히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흐루쇼프의 집권 기간 핵무기의 등장에 의한 ‘군사상의 혁명’에 관해 소련의 군사이론가들은 더욱 극단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그들은 핵무기를 위시한 전략의 상대적 중요성을 높이고 작전술의 중요성은 낮추었다. 소콜로프스키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핵 로켓 공격은 적 지상 부대 집단의 괴멸, 로켓, 항공기 및 핵무기의 파괴를 주로 달성한다. 그것은 높은 수준의 기동 기계화부대에 의한 조력을 얻어 광범위한 기동 공세 작전을 수행할 커다란 가능성을 만든다.” 지상군은 핵공격의 효과를 이용해 적군을 격파해 영토를 정복, 점령한다. 이러한 핵환경에선 전략 로켓군의 부차적 역할을 지상군이 맡게 된다. 이렇게 전략은 작전술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2.4.작전술의 재등장과 종심작전의 재생1960년대 중반 이후 소련은 핵전쟁과 전략의 중요성에 집착했고 그 결과 작전술의 중요성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론가들은 군사학의 연구를 명확한 핵무기의 문맥 안에서 수행했다고는 하나 작전술에 집중되는 주목의 양은 급증했다. 여러 군인과 이론가들에 의한 저작을 통해 제2차세계대전에서의 소련군의 작전상의 경험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의 파도가 밀려들어왔다. <소련의 군사 연구에서의 전략과 작전술의 문제>라는 제목의 저작은, 숙청된 투하쳅스키 등의 군인들의 복권을 가리키는 동시에 종심작전을 향한 관심을 새로이 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작전상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헤 소련이 군대를 재편한 것과 병행하여 작전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작전술이란 분야의 중요성은 1960년대 초반의 상대적으로 경시당한 입장에서 주목을 모으는 분야로 변화했다. “특히 재래형 무기를 사용한 전투 시, 각군의 단위 부대, 전문 부대에 의한 작전을 성공시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라는 의견도 등장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소련의 군사이론가들은 핵무기와 공존하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는 재래형 무기 및 병종의 중요성에 대한 이론화를 시작했다. 소련의 이론가들은 1970년에 자하로프 참모총장이 쓴 “종심작전이론은 오늘날에서도 중요성을 잃지 않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다방면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 지휘근간요원에 의한 창조적인 연구의 기초로서 도움될 것이다.”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3.오늘날과 작전술의 전망3.1.러시아 연방군으로의 계승과 체첸 분쟁의 교훈1991년의 소련 붕괴는 소련의 계승 국가인 러시아 연방과 그 군대에게 심각한 동요를 일으켰다. 러시아군은 소련군의 장비 체계, 군사독트린을 형식적으로는 계승했다. 그러나 심각한 경제적 혼란과 그에 동반한 군사 예산의 대대적인 삭감, 그리고 군 내부의 사기와 질적 저하로 인해 예전과 같은 대규모 종심작전을 수행할 능력은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쳐 러시아군이 직면한 주요 군사 분쟁은 주로 정규국가와의 대규모 기갑전이 아닌 체첸 공화국의 분리독립파 세력에 대한 진압 작전이었다. 체첸 분쟁은 명확한 전선이 없는 비대칭전쟁이었고 시가지 진압과 게릴라 부대를 향한 대처가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분쟁은 소련 시절 이어져 온 대규모 기동전을 전제로 하는 작전술의 적용이 불가능한 종류의 것이었다. 결과로서 러시아의 군사독트린은 지역 분쟁과 국내의 테러, 분리독립운동을 향한 대처까지도 포함하는 좀 더 현실적인 과제로의 발전을 요구했다.
3.2.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에서의 종심 작전의 시도와 실패2022년 2월 24일에 개시된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특히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향한 벨라루시 국경으로부터의 공세는 작전 구상에 있어서 냉전기의 작전술 구상을 방불케 하는 고전적인 종심작전의 양상을 띄고 있었다. 작전 초기단계에서의 공수부대의 호스토멜 공항을 향한 전격적인 기습과 그것에 호응한 우크라이나 북방을 남하하는 기다란 기갑 부대의 종대는 적의 정치적 중심을 신속하게 제압하여 우크라이나의 항전의지를 수일 내에 분쇄시키려는 전형적인 작전술의 기동전 계획이였다.
하지만 이 작전은 세계의 여러 군사전문가의 예측을 깨고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그것은 종심작전이론의 수행을 위한 전제조건을 모두 잃고 러시아군에게는 형식적 결함만이 존재한다는 것에 기인했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고 볼 수 있다.
1)병참의 완전한 붕괴. 3일 내에 키이우를 점령한다는 매우 낙관적인 전망에 의거한 작전은 부대 배치 및 보급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키이우 북방에 형성된 무려 60km의 러시아 전차의 행렬이 그 대표적인 모습이다.
2)제병과연합의 기능 상실. 러시아군의 전통적 군사독트린인 보병, 전차, 포병, 항공지원의 연계를 전제로 하는 제병과연합은, 전략적 목표의 분산으로 인해 그 형태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 키이우, 하르키우, 헤르손 등 너무나도 광범위한 전략 목표의 설정으로 전력이 분산되어 버렸다. 고립된 기갑부대는 재블린 미사일 등의 표적이 되어 전선 돌파 및 전과 확대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3)서방국가의 지원 및 정보전의 패배. 러시아는 당초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의지를 과소평과해 단기결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자 서방국가의 무기 및 재정지원으로 인해 러시아의 공세는 둔화되었다. 또한 부대간의 통신이 암호화되지 않은 민수품으로 이루어져 우크라이나 측에 작전 계획이 누출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나토가 지원하는 실시간 위성정보와 전자정찰은 우크라이나 군 전선에 투명성을 제공하여 러시아 군이 전황을 파악하기 곤란하게 하였다.
이 초기 공세의 실패는 러시아군이 소련의 작전술의 형식만을 모방해도 작전술의 성공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직접적인 요소를 결여하면 결국에는 참담한 전략적 패배를 가져온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작전술이 실패하여 결국에는 전력의 단순한 축차투입이라는 소련군 군사독트린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회귀해 전쟁에 장기화와 소모전을 가져다 주었다.
3.3.현대전에서의 타당성과 전망작전술의 이론적 근간은 결정적인 지점과 시간에 압도적인 전력을 집중시킨다는 ‘병력 집중의 원칙’에 있다. 2차대전에서는 이 원칙이 기갑 부대에 의한 돌파를 가능케 한 열쇠였다. 하지만 21세기 전장의 환경은 이 원칙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현대 전장은 정찰 위성, 무인정찰기, 전자첩보와 같은 다양한 ISR 자산으로 인해 과거에 없던 전장의 투명화를 가능케 했다. 이로 인해 대규모 병력의 이동은 작전 개시 전부터 탐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또한 정밀유도무기와 싼 가격에 생산 가능한 무인드론은 전쟁의 역학법칙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무인드론과 고성능의 대전차미사일은 훨씬 고가의 전차를 파괴하는 매우 가성비가 좋은 무기가 되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작전술의 전제조건인 집중된 대규모 부대에 취약성을 가져다 주었다. 집중된 대규모 부대는 적의 정밀공격의 표적이 되어 작전 개시 전부터 괴멸될 리스크를 안는다. 이러한 사실 안에서 고전적인 종심돌파이론은 그 유효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과 미래에 있어서 작전술의 개념은 육해공이라는 전통적인 영역을 넘어 우주, 사이버, 그리고 AI라는 여러 영역을 포함하는 다영역작전(Multi-Domain Operations)의 문맥 안에서 재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의 종심작전이론은 위에 열거한 전 영역에 걸친 능력을 통합하여 적 시스템 전체의 취약성에 대해 물리적, 비물리적 수단을 연계시켜 동시에 사용되어야 할 매우 복잡하고 지적인 행위가 될 것이다. 그 때 투하쳅스키와 같은 장군들이 실현하려 했던 이론은 구체적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면서도 적의 전쟁수행방식을 시스템으로서 파악해 그 전체를 동시에 파괴한다는, 작전술의 근본사상을 가지고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우리 세대에 계속 제공해줌에 틀림없을 것이다.
맺음말필자는 <Soviet Military Operational Art : In Pursuit of Deep Battle>의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갤러리의 여러 사용자에게 소련군의 ‘작전술’의 개념과 역사, 그리고 오늘날과 미래에 있어서의 의의를 소개하고 싶어서 게시글을 올린다. 책이 아무래도 1991년에 쓰여진 것이기에 책의 뒤의 파트는 2025년의 관점으로 쓰는게 맞다고 보아서 생략했다. 또한 3.오늘날의 작전술의 전망 파트는 아무래도 현대-근미래적 그리고 시사적인 관점이기에 사람에 따라선 크게 상반된 견해를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견해도 미래에 대해선 타당한 견해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위의 내용들은 현재 2025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황은 최대한 배제하여 작성했다. 그러므로 부적절하거나 부정확한 정보가 있을 수 있다. 그 점은 양해 부탁한다.
그러면 장문의 글을 읽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번역이 없는 걸로 안다." 국역은 없을 거임
@ㅇㅇ 6.25 전쟁에선 꽤 비슷하게 따라함. 전차 및 포병 화력을 기동전의 축으로 활용하여 서울, 대전 이런 요충지를 단기간에 제압은 했음. 근데 문제는 역시 북한군 자체의 규모랑 항공우세가 안따라줌. 현대 북한국 전술은 잘 몰겠음 그거 알고 있으면 국정원 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