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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말을 비틀어 말하자면, 경제적 · 정치적 기반을 가지지 않은 코뮤니즘은 공허하고 도덕적 기반을 가지지 않은 코뮤니즘은 맹목이다."
『트랜스크리틱』은 위 문장으로 간단히 요약될 수도 있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를 위한 개론서이다. 이 개론서는 위 문장을 충실히 따르며 칸트를 통해 코뮤니즘의 도덕적 기반을 다지고, 마르크스를 '트랜스크리틱'하게 읽어 경제적 · 정치적 기반을 다진다. 그렇다면 이때 '트랜스크리틱'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안티노미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개의 모순되는 명제를 새로운 역학공간에 위치시켜, 그 명제들을 시간적/공간적으로 새로이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칸트의 경우 합리론 - 경험론의 안티노미를 해결하기 위해 초월론적 소행을 거쳐 도입되는 '형식'이 이 역학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가라타니는 마르크스를 이러한 방식으로 읽으며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면서 유통과정에서 발생하지 않는 잉여가치라는 문제를 '서로 다른 가치체계 사이의 유통과정'에 의해 잉여가치가 발생한다고 설명하며 해결한다. 이를 통해 '국민경제학 비판'과 더불어 세계 자본으로 시야를 넓히는 것은 덤이다. '상인자본이 공간적 가치체계의 차이를 바탕으로 잉여가치를 획득하고, 산업자본이 시간적 가치체계의 차이를 바탕으로 잉여가치를 획득한다'라고 말하는 가라타니의 문자가 갖는 매우 현재적인 문제의식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말들이 『자본론』에 그대로(!) 들어있다 하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나에게 하여금 마르크스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들게 만든다.
마르크스주의의 도덕성의 근저가 되는 칸트의 도덕론에 대한 접근도 매우 새로웠다. 가라타니는 칸트가 자유의지 유무에 안티노미를 다음과 같이 해결했다 말한다 : "칸트는 도덕성을 선악이 아니라 '자유'의 관점에서 보고자 했다. 우리가 자연적 · 사회적 인과성에 의해 움직이는 차원에서 선악은 있을 수 없다. 나아가 실제로는 자유(자기원인) 따위란 없다. 모든 행위는 원인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자유는 자신이 행한 일 전부를 자기가 원인'인 것처럼' 생각하는 곳에 있다. (p.190)". 하버마스식의 타자들과 합의에 근거한 '일반적' 도덕원리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며 '보편성' 말하며, 그 보편성이 "자유로워지라"고 하는 명령(의무)에서만 비롯되고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실천성을 강조할 수 있을까? 코스모폴리탄주의자인 칸트에게서 마르크스주의의 도덕적 근원을 찾은 것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가라타니 고진이 두 사상을 '실천'을 토대로 이렇게 연결시킨 방식은 매우 새로웠다.
실천의 문제로 넘어와, 이 부분은 가라타니 자신도 자부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그는 이곳에서 그가 주창하는 어소시에이션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 - 중요한 것을 꼽자면 불매 운동, 새로운 화폐, 랜덤한 대표자 뽑기 - 을 제시한다. 아직 실천에 대한 감각이 없기도 하고, 그가 제시한 방법이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귀결이지만 현실 정치-경제 속에서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 자신이 없어 그렇게까지 흥미롭지는 않았다. 다만 대표자를 랜덤하게 뽑아 대표자가 '있으면서도 없는' 것으로 만들자는 제안은 눈여겨 볼만 하다.
이러한 말들이 『자본론』에 그대로(!) 들어있다 하며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자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나에게 하여금 마르크스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들게 만든다. 요 부분 중간에 문장이 끊긴 것 같군
앗 감사용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면서 유통과정에서 발생하지 않는 잉여가치라는 문제"는 가라타니만의 독단적인 주장입니다. 그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잉여가치를 유통에서 찾고 있다고 주장하고 심지어는 '엥겔스와 다른 맑스주의자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라고 오만하게 주장하지만, 맑스는 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개요, 잉여가치 학설사 등의 주요한 경제학 저서들에서 일관되게 잉여가치는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하고, '유통과정'은 상품의 가치(c+v+m)의 화폐로의 실현임을 말합니다. 엥겔스와 맑스를 분리시키고, '칸트식 형식' 따위를 맑스에 도입하면서 헤겔의 변증법을 부정하는 가라타니는, 개인적으로 '맑스주의자로 불리고픈 부르주아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호오 그런가요. 전 아직 맑스를 제대로 접해보지 않아서 맑스 수용사도 잘 몰라요. 확실히 가리타니의 의견에도 비판적일 필요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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