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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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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면이 상승해 물에 잠긴 망해가는 도시는 상당히 익숙한 소재다. J. G. 밸러드의 <물에 잠긴 세계>는 도시를 가득 채운 물로 격변한 생태계에서 사람들이 보다 원시적인 문명을 받아들이며,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은 물로 둘러싸인 집 안에서 고립된 개인의 심리에 파고들고, 만화, 영화나 게임으로 가면 이 목록은 걷잡을 수 없게 길어진다. (<미래소년 코난>, <워터 월드> 등등......) 사실 이 소재의 매력은 꼭 도시가 망해가야 생기는 것은 아닌 듯한데, 만화 <ARIA>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비슷한 소재를 음산한 멸망의 분위기 없이 낭만적인 범주에서 그려내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매체에서 물에 잠긴 세상은 보다 현실 친화적이고, 불편하되 심각함은 전혀 엿보이지 않는 정기적인 재앙과 함께 살아가는, 약간은 지루하면서도 또 그럭저럭 버텨낼 만한 척박한 환경 적응을 보여준다.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가 어떤 느낌인가 하면, 애매하다. 이 소설집 속 한반도는 해수면이 상승하고 폭우가 이어지며 온갖 땅을 좀먹는 물을 막기 위해 제방처럼 벽을 쌓아 도시를 보호한 나라이며, 그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격변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거대한 수생식물을 길러 그 위에서 살거나 하는 식으로 삶을 크게 바꿔나가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예전 한국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되, 이따금 폭우나 물혹 등 위와 아래에서 쏟아지며 땅을 잠식하는 물에서 최대한 시선을 피하며 일상을 영위한다. 그 안에서 불법 쓰레기 매설로 인해 생겨난, 사람을 매혹하는 검은 모래로 가득한 블랙펄의 이야기가 평행선을 달리며 <서던리치>스러운 생태주의 노선을 따르기도 하는 등, 격변과 적응, 멸망과 낭만 사이의 선을 오간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이 선타기는 SF와 판타지 사이에서도 이뤄지는데,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라는 이름의 이백만원짜리 물고기를 죽은 물고리를 먹는 부유한 거미게에게 배달한다거나, 관에 들어 있는 아이가 특별한 이유 없이 썩지 않는다거나, 더위로 반쯤 미쳐서 해류를 믿고 관 위에 몸을 실어 아무 채비도 없이 일주일 동안 바다 위를 방랑하며 다른 집에 도착한다거나, SF적인 공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인-판타지보다는,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에 가까운 모양새의-공상에 가까운 것들이 튀어나오며 블랙펄에 대한 묘사는 전체적으로 이토 준지의 만화스럽다. 그러다 또 다시 공상의 영역에서 현실에 가까운, 폭우를 알1리는 알림e나 해외여행홀짝제니, MBTI에서 NCT-A형 같은 요상한 성격 유형이 나오느니 하며 어디까지나 현대 한국에서의 연장선상에 있는 미래가 펼쳐진다. 



바꿔 말하면, 소박한 미래로서의 SF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이 미래에서 주로 고난을 겪는 이들은 가난한 배달 아르바이트생, 도시 밖으로 밀려난 가족, 레드오션에서 허우적대는 외국인 노동자 및 한국 예술가 등이고 이들이 고통받는 방식에 크게 극적인 구석은 없다. 폭우에 갇혀 위태로운 배달을 하는 것이나, 점차 말라가는 지방 인프라 속에서 동정받는 것이나 2025년 현재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다소 맥빠지는 느낌이 있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녹아내린 오염물이 가득한 물의 범람이 블랙펄이라는 매혹적인 군집형 생명체-모래의 출현으로 이어질 만한 이유가 딱히 강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서 더 아쉬운 부분인데, 어쨌든 블랙펄은 이 소설집 절반에서 주요한 설정으로 등장하며 그렇기에 지금보다는 좀 더 매력적이고 해수면 상승과 밀접한 방식으로 풀어졌어야 했으리라 싶다.



이를테면, 블랙펄의 출현을 추측하는 과학자의 가설 중 무단 매립된 쓰레기 속에서 이를 섭취해 소화시키기 위한 생물의 탄생이 있다. [생물학적 동등성]에서 블랙펄 속에 석유가 있다는 젊은이들 사이의 소문이 슬쩍 연결시키듯, 이 가설과 블랙펄에 대한 묘사는 <사이클로노피디아>에서 석유를 다루는 방식을 연상시킨다. 토마스 골드가 제안한, 고대 세균이 지저에서 만들어내 사람들을 매혹시켜 온 세상에 자신의 일부를 퍼뜨리고자 하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생기론적인 석유. 이 미묘한 도시괴담이 마지막 장 [생물학적 동등성] 2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종말이>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으스스하다기보다는 너무 몽환적이고 낙관적이다. 물혹의 폭발로 갑작스럽게 집 주위가 완전히 물로 둘러싸인 집을 홀로 지키는 집안의 이야기를 다루는 [애로 역설 속에서...]가 자신의 집을 자연의 거대게에게 주고 물러나는 낙천적인 3대의 일기로 끝나는 것처럼. <종말이>는 기후 변화, 외계 생명체, 고대의 악몽 같은 재앙적인 요소를 들고 와 풀뿌리 연대주의, 자연과 공생하는 생태계 속의 인간을 강조하는 듯하며, 그게 읽기에 썩 좋지는 않았다. 읽는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