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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 리뷰라 도입부는 따로 작성하지 않겠다.


이 책은 사실 2022년에 군대 있을 때 자기어쩌고로 지원 받아서 산 책 중에 하나인데...


무서운 사실은 이때 산 책들이 파운데이션 세트, 엔드 오브 타임,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 완전사회인데...


우못방, 완전사회, 파운데이션 1~4권을 빼면 아직도 다 안 읽었다는 것... 3년 만에 겨우겨우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를 읽은 셈이다.


생각보다 과학 비문학 서적을 많이 사뒀다는 걸 깨닫고 좀 더 열심히 읽어야지... 하고 반성하게 됨.


아무튼, 스티븐 호킹이 20세기에 쓰고 21세기에 약간의 개정을 거쳐서 써낸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는 시공간의 개념이 어디서부터 출발했고 어떻게 변화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기술한 일종의 과학사+교양과학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이런 건 본인이 가진 배경지식이 어느 수준이냐에 따라서 독해 난이도가 달라진다.


진짜 빛의 속도가 물리적인 속도의 상한선인 것만 알던 시절에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과 루프 양자중력 어쩌고를 이해하느라 머리가 빠개졌었던 나는 3년 뒤 시간의 역사를 보면서 "음~ 완벽히 이해했어(아님)"을 외칠 수 있게 됐다.


아무튼 내 기준 양자역학 파트까지는 그럭저럭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소립자 파트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직감했지만, 그땐 어쩔 수 없었음.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호킹이 수식을 정말 많이 배제한 채 개념만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나 같은 문과생도 허시간과 무경계 제안 같은 걸 어찌어찌 이해한 걸 보면 말이다.


무엇보다 '그림으로 보는'이란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정말 많은 그림과 사진이 첨부돼 있다. 근데 가독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글에서 인용하는 사진이 이전 페이지에 있거나 이후 페이지에 있는 경우가 은근히 많아서......


종이책이어서 그냥 펄럭펄럭 하면 됐지만, 전자책이었으면 좀 빡치지 않았을까 싶다. 애당초 전자책으로 나올 만한 판형도 구성도 아니긴 하다만.(누르면 각주가 나오는 시스템으로 사진을 삽입하면 될 것 같긴 하다)


여기서 알고 배우고 학습한 내용 일일이 적는 건 좀 무리수 같고(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읽으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졌던 건 스티븐 호킹이 관철하는 자세였다.


물리학이 대통일 이론, 궁극의 이론, 모든 이론의 통합을 지향하고 추구하면서 매번 '신'의 존재와 맞닥뜨리게 되는 점이 되게 흥미로웠다. 물론 '신'의 존재와 자리는 물리학에서 점점 비좁아지고 있음에도 이론의 한계 지점에서 신은 수시로 모습을 드러낸다.


(정확히 따지자면 물리학, 나아가 과학에서 다루는 '신'과 신학적으로 접근하는 '신'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기도 하다. 본문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짧지만 한 번은 짚고 넘어간다)


스티븐 호킹은 궁극의 이론에 닿을 수 있다, 혹은 거기에 닿고자 하는 연속이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실제로 중력의 한계 때문에 영원한 이론의 추구는 없으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가 주장한 이론이 틀렸음을 알게 되거나 다른 누군가에 의해 반박될 때, 자기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논리를 끌어오지 않고(호킹의 표현에 따르면 묘기를 부린다고 한다), 오히려 면밀히 검토한 이후 자기 주장을 철회하거나 실수를 인정한다.


자기 주장에 대한 소신을 굽힘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는 자기 믿음을 더욱 관철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이나 삶의 형태를 실현할 방법과 수단에 매몰될 수 있는 우리 자신에게 좋은 자세로 읽혔다.


뭐, 그래서 스티븐 호킹이 주장하는 허시간이나 무경계 이론이나 호킹이 소개한 끈 이론이나 양자중력 이론 같은 걸 곧이곧대로 믿느냐고 하면 그냥 판단 유보...에 가까운 입장이긴 하다만. 어쨌든 이런 주장이 있고 이런 개념들이다~ 라는 것 정도는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다.


아마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또 비슷하게 다른 표현으로 설명되는 걸 접하면서 더 정밀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까지는 그래도 직관의 범주 내에 이해하고 응용될 수 있는 문제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직관의 범주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림의 보조가 없다면 텍스트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정말 많다. 수식이 들어갔다면 아마 이 책이 그렇게 유쾌하게 팔리진 않았을 듯...(이 책이 엄청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호킹도 이런 부분을 지적하면서 극소수만 알고 있는 최첨단 과학 이론과 대중(과학교육) 사이의 무지막지한 괴리를 얘기하는데, 호킹은 대통일 이론이나 궁극의 이론이 완성된다면 그 개념이 대중에게 널리 퍼지고 교육되리라고 희망하고 있다.


그 희망 역시 난 판단을 유보하겠다. 어쨌든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뭐라 말하긴 좀 그렇다.


그리고 다중우주에 대해서 다중우주가 그냥 있다고 가정한 게 아니라 '신'의 존재를 지워나가는 과정에서(더 합리적이고 더 적확한 '설명'을 찾는 과정에서) 임의성이 자주 나오고 강조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개념인 것도 소소하게 풀린 오해라면 오해였다.


근데 약한 인류원리, 우주 검열관, 시간 검역관 같은 걸 보면 여전히 해결 못한 신의 자리는 여전한 걸지도 모르겠고.


덤으로 책에서 종종 이론과 관측이 발전함에 따라 SF소설가들을 좌절시켰다는 언급도 나오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SF란 결국 궁극의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정확히는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알려지고 학습되기 전까지) 유효한 시한부 장르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것과 별개로 스티븐 호킹의 농담이나 그가 가진 감성을 보면 굳이 카를로 로베리가 특별하게 감성적이기보다는 과학자들 자체가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난이도가 높아서 그렇지 K-SF 읽는 것보단 훨씬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그러니 역시 SF문학상 심사위원에 과학자가 끼어야 한다는 내 생각은 한층 더 강화되었다.


다음엔 다시 카를로 로베리로 돌아와서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을 읽을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