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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안 올리는 게 낫나 했는데 뭐 갤에서 추천받은 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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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의 프랑스 철학가를 논할 때 간혹 듣는 이야기. 이들이 미국에서 얼마나 활발하게 논의되든, 정작 프랑스 본토에서는 한참 전에 잊혀진 신세일 뿐인 삼류 철학가일 뿐이다. 그 말이 정말인가 해서 찾아보면 실제로 이들에 대한 언급은 70년대부터 빠르게 줄어들다가 80년대에는 단지 비판의 대상으로만 논해질 뿐인데다가, 절대적 언급량 자체도 매우 적다. 하지만 프랑스 밖으로 보면, 이들의 철학적 입지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언급량을 주변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미묘한 불일치를 보고 있자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잘못 되었거나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 프랑스 철학이 주로 언급되는 곳이 문학 이론 같은 철학 바깥의 공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미국에서의 수용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80년대에 이미 이들이 다 잊혀진 프랑스에서 그럼 다른 좋은 게 새로 나왔는가, 하고 찾아보자면 그것도 딱히 그렇지 않아 프랑스의 보수성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실제 과정은 이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다. <루이비통이 된 푸코?>는 이 소위 "프랑스 이론"이 어떻게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수입되고 수용되었는지를 전체적인 사회적 맥락과 함께 분석하는 책으로, 전후 프랑스에서 독일 철학-특히 헤겔-이 기존과는 다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새롭게 전유되었듯 비슷한 수입 및 전유 과정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도 한 차례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대륙의 여러 지식인이 미국으로 피난을 오며 원래는 지적으로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미국에 강렬한 외래 학문 교접이 발생한 것도 한몫 하지만, 미국에서 이를 수용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몇몇 학구적인 이들이 사르트르 같은 프랑스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받은 영향은 어디까지나 국소적인 학술장에서의 영향에 가까워 브로델의 아날 학파가 미국 역사학에 영향을 끼치는 일도 거의 없었고, 이들의 이름을 보도하는 <뉴욕 타임스> 같은 신문 기사에서 이름을 들어본 이들 중 이들의 '이론'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당시 미국에서 프랑스 이론이 융성한 미국으로 옮겨 오려면 다른 또렷한 다리 두 개, 대학과 문학을 건너야 했다.
지금 듣자면 참 이상한 말이지만, 원래 미국에서 대학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많은 대학은 풀과 나무가 우거진 자연 속에 입지를 두고, 학생이 어릴 때부터 늘 살고 있던 집과도, 회사 같은 이후 경제 생활과도 동떨어져 사회에 진입하기 전 일종의 성인식을 거치는 장소로 존재했으며, 교양 교육으로서 그리스어, 고전 문학 같은 인문학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되 그 학습 강도가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후 미국의 산업화 과정 중 대학의 기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으며, 대학이 학생에게 쓸모없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보다 좀 더 이후 삶에 도움이 될 과학과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강해졌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굳이 대학까지 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았고, 대학이 돈을 내고 갈 만한 곳이 되는 동시에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수익성을 갖춰야 한다는 이중의 요구가 미국 대학을 압박했다. 가장 공격당한 것은 문학이었는데, 이는 단지 문학이 채산성이 없는 과목이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문학이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중요하게 취급받았던 역사 탓이었다.
독일에서 철학이 그러하듯, 미국에서 문학은-아마 영국의 영향을 받아-국가를 대표하는 학문이었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문학 자체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논하는 나라였고, 수많은 문학 이론 중 신비평이 으뜸을 차지할 때까지 문학을 설명하는 틀 자체도 다양했다. 문학에서 알아야 할 것은 대부분 그 텍스트 자체에 들어 있으며, 저자의 주관이나 저술 당시의 사회적 맥락 같은 외적인 요소를 전부 배제한 채 문학을 분석하는 신비평은 그래서 고되고 진지한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대학의 혁신 과정에서 문학의 비중은 점점 더 낮아졌고, 어디까지나 크게 중요하지 않은 주변부 학과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문학이 이 곤경을 벗어나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는데, 단지 글을 읽고 그 내용을 파악하는 수준 이상으로 문학이 유용하다는 근거가 필요했으며, 그 과정이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어렵고 고될 필요가 있었다. 그 실마리는 영문학보다도 훨씬 더 주변화된 불문학에서 살짝 나왔고, 영문학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1)
바르트, 푸코, 데리다 같은 철학가가 본격적으로 미국에 소개된 것이 문학장이라는 것은 그래서 여러 의미가 있다. 문학이 이들의 이국적이고 난해한 새 이론으로 무장해 다시 중요한 분과 학문이 되었다는 점과, 그 소개가 본질적으로 철학적, 정치적, 사회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으로 탈맥락화된 상태에 가까웠다는 점.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에서 보여준 기표 분석은 특히 신비평과 꽤나 맞닿아 있었으며, 사상가 본인은 여러 예시 중 하나로만 생각했던 문학 분석이 사상가의 전체 사상을 대표하는 핵심으로 소개되듯 이들의 사회비판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인 면모가 가려진 번역 발췌문이 소개되었다. "텍스트-의-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리다의 인용구를 앞세워, 문학 비평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가 단순히 시, 소설 등을 넘어서 철학 이론, 법률 조항 등의 문자로 쓴 모든 글이나 심지어 사회 현상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공격적인 경계 확장은 일종의 "텍스트중심주의"를 불렀다. 이는 대학 내에서 꼭 전문 학자가 아니더라도 여러 학생이 소규모로 제작하는 출판물 등을 통해서 퍼졌으며, 그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많은 해설을 앞뒤로 붙여준 대학 출판부 서적들과 더불어 대학에 프랑스 이론이 융성하게 됐다.
이는 소위 반문화라고 묶이는 6070 사회, 예술 운동과 친연성이 높았으며, 개중 많은 이론이 '정치적'이었다. (2세대) 페1미니즘, 탈식민주의, 젠더 이론이 프랑스 이론에서 나왔으며 여성, 비-백인,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현실을 비판해 맞서 싸우고자 했다. 하지만 자연히, 이 이론은 대학 바깥의 정치 운동과는 점점 멀어졌다. 탈주체화를 위해 모든 응집점을 비판하고자 하는 과정은 정치 운동이 대규모로 결집되는 것을 방해하기도 했거니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외부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이 괴리는 이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 대학이 외부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원래도 너무나 미약했으며, 60년대 학생 운동이 맹렬하게 진압된 이후 70년대 학생 운동이 취할 수 있는 정치적 자세가 그리 많지도 않았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영향을 주기는 힘들어 진지한 대응을 부르지는 않을 만한 선에서, 패션으로서의 저항을 하고자 했으며 프랑스 이론은 이에 딱 좋은 공간을 제공했다. 현실의 많은 부분은 참으로 비판할 만한 것이었으며, 이를 대학 내에서 아무리 크게 소리치더라도 그 소리는 외부의 경찰에게도, 사회운동가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허나 그것만은 아니다. 프랑스 이론, 곧 온갖 개체의 차이를 강조하며 탈주체화를 강조하는 이 이념은 실제로 미국의 현실-특히 미국 대학의 현실-과 너무나 맞닿아 있었다. 한때 유럽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이념이 미국에는 이미 늘 현실로 구현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듯, 세계 곳곳에서 밀려온 다양한 이민자로 가득한, 화폐와 상품이 활발하게 교환되는 산업/탈산업 사회는 그 어느 보수적인 집단에서도 쉬이 납득하거나 수용하지 않을 만한 차이의 세계를 구현했고, 큰 틀에서는 같다고 할 만한 이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정말로 실제로 거대해, 사회운동을 앞세우기 이전에 애초에 '누구'를 위한 사회운동을 해야 하는가를 정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는 학생들 본인이 프랑스 이론 속에서 자신의 차이를 과장적으로 부풀리는 탓이기도 했으며, 남들에게 공유되기 어려운 이념적, 종교적, 경제적 요인이 조용히 서로 간의 거리를 떨어뜨려 놓은 탓이기도 했다. 프랑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남에게 이해받기 어려운 단독적인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에 가까웠으며, 그래서 더더욱 프랑스 이론은 엄격한 단어 규정에서 벗어나 아무런 의미로나 사용되는 대중적 잡탕으로 나아갔다.
이 대학 속의 혼란은 80년대에 대학이 신자유주의적 압박을 받으며 다시금 수익과 경쟁을 강조하며 극심해졌는데, 각 대학이 자랑할 만한 스타 교수가 중요해졌으며, 이들이 대학 바깥에서 얼마나 미미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든 최소한 학생과 대학 경쟁력 차원에서 그 수요를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프랑스 이론에 영향을 받은 여러 스타 교수가 "문화 연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학제간 비판으로 매번 스스로를 일신하며 비판 대상을 넓혀가는 과정과, 그 이론의 바깥에서 이를 바라보던 사람들 사이의 간극이 슬슬 가시화될 때쯤,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가 대표하는 문화 전쟁, 과학 전쟁이 발발했다. 어디까지나 쇼비즈니스에 가까운 선동적인 공격이 양측에서 이뤄지며 대중적인 프랑스 이론이 규탄을 받았으며, 학생들은 반대로 이 공격에 대응하거나 최소한 제대로 된 공격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끔 전쟁 한복판에 놓인 프랑스 이론 텍스트를 진지하게 읽어봐야 했다. 자연에서 진화압이 작용하는 방향처럼, 프랑스 이론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대학 내부에만 존재하던 이론의 영향력을 외부로 확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프랑스 이론을 비판하고자 이들을 한데 묶은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를 저술한 것이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뚜렷한 형태를 제시했듯 말이다. 프랑스 이론은 전세계로 뻗어나갔고, 안토니오 네그리나 조르조 아감벤 등 미국 외에서도 중요한 학자를 양성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프랑스 이론의 주요 영향 범위는 어디까지나 문학과 예술 영역에 국한될 만하다. 라캉, 데리다, 보드리야르 '등'-이 '등'으로 이들을 묶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프랑스 이론의 이름을 빌리는 것이다-의 이론은 글과 언어를 분석하되 이것이 더 넓은 범위로 무한정 확대될 수 있다고 상정하지 않았고, 푸코, 들뢰즈의 이론이 현재 미국을 비롯한 각지 이론에서 보여주는 만큼의 윤리적 함의를 갖고 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푸코의 분석은 프랭크 노리스의 <문어The Octopus: A Story of Cal1ifornia>처럼 사실상 억압에 대항해 맞서 싸울 상대를 없애 버리는 자연주의 문학에 가까우며 들뢰즈가 90년대 경영철학에 차용된 것이 꼭 이상한 전유는 아닐 테다-21세기는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의미에서 확실히 들뢰즈의 세기니까) 라캉의 정신분석이 문학과 예술에서 강렬한 모티브를 주는 것과 별개로, 현실을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것도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폴 드 만의 문학 비평은 읽어보고 싶어도,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이론은 여전히 읽어볼 마음이 안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마 스피박 같은 탈식민주의나 생명정치 계열의 정치철학 위주로 좀 더 읽어보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는 역시 사변소설 아닐까. 프랑스 이론의 강점은-CCRU가 하이퍼스티션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했듯-선동적으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현실을 점차 그 선동2)에 가까운 상태로 이끌어나가는 추동력일 것이며, 예술이야말로 이에 적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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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유물론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어디까지나 문학 비평, 철학 이론의 관점에서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분파. 이것이 흥미로운 기획인 것과는 별개로 그 재료로 문학 텍스트가 나오는 것을 볼 때면 이 기획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 들곤 한다. 릭 돌피언의 <지구와 물질의 철학>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레비 R. 브라이언트의 <객체들의 민주주의>를 읽을 때면 또 그럴듯하기도 해서, 이것을 문학의 또 다른 돌파구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흥미로운 기획인 건지 아직은 결정을 못 내리겠다.
2) 괜히 마르쿠제와 그람시가 문화 전쟁의 핵심으로 언급되는 게 아니고, 현재 극우라고 분류되는 이들이 오히려 정치적 좌1파에 가깝다는 분석이 있는 게 아니다. 구좌2파, 곧 마르크스주의 좌3파는 신좌4파 때부터 늘 프랑스 이론 및 그와 연관된 좌5파를 공격했으며, <지적 사기>의 배후에도 세상을 좀 더 직관적인 방향에서 비판하며 뜯어고쳐야 한다는 계급 중심적 비판이 있다. 물론 반대편에서도 마르크스주의의 무능과 관련해 할 이야기는 매우 많고, 사실 마르크스주의 철학 및 사회운동의 역사 역시 거의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도 이 갈등의 아이러니함이다.
재밌네 읽어봐야겠다
확실히 대학 바깥에 있는 애들은 신기하게 읽는구나.
데리다가 활동 거점을 미국으로 옮긴 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