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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필연성과 개인의 자유의지
전쟁과 평화 - 레프 톨스토이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에서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해 '인내심을 시험하거나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펼쳤다가도 반쯤 읽고 던져버리거나, 아니면 책장에 장식용으로 꽂아 놓고 절대 손대지 않는 책들 중 하나' 라고 쓰여 있다. 톨스토이의 대표작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읽어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갑자기 불타듯이 치솟는 욕구에 책을 집어들다가도 두손으로도 들기 벅차는 두께와 생소하기 그지없는 러시아 인명들의 범람을 접하노라면 급수가 뿌려진 마냥 활활 타오르던 독서욕구도 어느새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남아있는 젊음의 패기와 지금까지의 독서로 다져진 인내라는 두 무기와 함께 전쟁과 평화에 도전했다. 톨스토이가 산이라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산맥이라고 앙드레 지드가 말하지 않았던가. 난 이미 도스토예프스키라는 험난한 산맥을 역시 위에 말한 패기와 인내라는 두 무기와 함꼐 헤쳐왔으니, 까짓것 톨스토이라는 산도 정복해보기로 마음먹고 읽어나갔다.
<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톨스토이 자신은 이 작품이 장편소설도, 서사시도, 역사적 연대기하고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고 말하며 자신의 작품은 소설을 넘어선 '초소설'이라고 명명한다. 소설의 초반부 1,2권은 1805년에서 1812년 사이 나폴레옹의 오스트리아 원정을 다루며 일반적인 근대적 장편소설의 구조를 따르지만,후반부 3,4권에서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다루면서 때때로 소설의 흐름에서 벗어나 기존의 나폴레옹 전쟁을 다루는 역사적 관점을 비판하고 새로운 견해를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에필로그 2부는 아예 톨스토이 본인이 발견한 인류의 역사법칙을 논하기 시작한다. 그가 발견한 역사법칙이 무엇이길래 소설의 흐름을 깨면서까지 장황하게 그것을 논한 것일까?
톨스토이의 주장을 들어보자. 고대의 역사가들은 신의 의지와 그 의지를 따르는 신의 대리인들이 역사를 이끌어 온 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근대로 들어와 신의 죽음과 함께 역사가들은 역사를 추동하는 힘을 밝혀내기 보다 소수의 군주,장군, 학자들의 영웅적 행위에만 원인을 돌림으로써 역사학으로서 민족과 인류의 역사법칙을 밝혀내야 하는 의무를 저버렸다. 톨스토이는 아무리 영웅적인 인물이더라도 역사의 흐름은 필연적인 것이며 그 속에서 개인은 그가 아무리 특별하고 영웅적인 행위로 하여도 역사적인 흐름의 아주 사소하고 그럴듯한 원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더 나아가 오랫동안 역사학은 물론 다른 학문들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인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해 논하며 개인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어떠한 제약도 개인의 자유의지를 억누를 수 없다지만, 역사의 흐름과 개인의 자유의지는 서로 비례하며 개인의 자유의지란 아직 밝혀지지 않는 역사법칙의 일부분에서만 그 의지를 실행할 수 있으며, 역사학의 임무는 바로 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법칙을 밝혀내는 거라고 주장한다.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으로 천체학에서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듯이 역사학 또한 소수의 영웅들의 행동에서만 원인을 구하는 낡은 역사학은 곧 민족과 인류의 역사법칙을 밝혀내는 새로운 역사학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부정당하는 건 아니다. 인간은 자유를 느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비록 역사의 법칙이란 힘에 비해 인간의 자유의지는 미미한 힘이더라도 인간의 삶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결코 내쳐버릴 순 없는 것이다. 인류가 설령 역사법칙의 의해 미리 운명지어지고 거기에 좌우된다해도 우리는 여전히 자유를 느껴야만 한다.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볼콘스키가와 로스토프가를 중심으로 무려 599명이나 되는 등장인물들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저마다의 의지와 욕구를 위해 역사의 흐름에 저항하고, 좌절하고, 순응하며 이 거대한 흐름에 동참한다. 삶의 활기를 잃어버린 안드레이와 피에르, 사랑으로 고통받으면서 결국에는 사랑르로 구원받는 나타샤, 젊음의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니콜라이,언제나 자신을 희생하며 남들에게 희생한는 마리야와 소냐, 탐욕스럽고 잔혹한 아나톨과 돌로호프 등등, 이밖에도 무수하게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역사의 흐름 하에서도 각각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나아간다. 어느것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이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버려도, 결국 이 법칙에 순응하고 자신의 삶을 끝까지 이어나가야만 한다고 깨닫고 있었다.

난 이 소설이 정말 좋았던게 소설의 시작과 끝이 하나의 이야기로 딱 정해지는게 아니라 특정 시간대만 잘라서 그 연속성이 유지되는게 좋았음. 인간의 존재성이 잘 드러난다 해야하나.
잘썼네, 직접 쓰신거? 잘봤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