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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음악과 종교
작가- 한스 큉
출판사- 포노
이 책을 알게 된 건 음악입문서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를 찾다가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 책은 음악의 길이란 시리즈 중 한권이었으며, 이 시리즈엔 다양한 책이 있었는데 지금 소개하는 책은 그 중 5번쨰 시리즈다.
이
책은 한스 큉이란 사제이자 신학자가 쓴 책으로 모짜르트, 바그너, 브루크너 이 세 작곡가의 음악과 그 안에 있는 종교성에 대해
다루었다. 맨 처음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카톨릭 사제이면서도 교황의 무류성에 대해 비판했으며, 카톨릭이지만
교회일치와 개혁이란 단어를 내세웠으며, 탁월한 저술가로 누구에게나 기초가 될 수 있는 책들을 저술헀으며, 그의 세계윤리 원칙을
바탕으로 곡마저 만들어졌을 정도다.(베를린 필 디지털 콘서트홀에 있으며, 세계윤리란 제목이다.) 그런데 이런 저자가 음악에 대해
글을 썼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ㅗ짜르트, 바그너, 브루크너란 탁월한 작곡가들이다. 즉시 구매한 뒤 단숨에 읽어
나갔다.
이 책의 전체적인 평을 먼저 한다면, 기존의 한스큉의 저서와는 좀 다르다. 탁월한
논리적 전개, 허점을 찾을수 없으며 책에 자연스래 바져들게 하는 기존 저서를 생각하면 조금 손색이 있을 수 있다. 책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한스 큉은 이 책을 쓸 때 신학자가 아닌 그저 한명의 애호가로서 책을 썼다. 그러다보니 전개가 논리적보다는 열정이
먼저 앞서는 면이 있다. 그것 말고 다 좋은듯 하다.
작가는 책을 하나의 서곡과 교향곡이 결합된 형태로 썼다. 서곡은 음악과 종교의 관계성, 1악장은 모짜르트. 2악장은 바그너, 3악장은 브루크너, 4악장은 현재 예술의 위치 및 예수이란 무엇을 위해 있는가에 대해 얘기한다.
서곡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의 99%의 내용이 책에 있는 내용 그대로다. 그리고 글 안에 있는 신학적 내용은 전부 쳐냈다. 이유는 단
하나다. 개인적 역량의 부족으로 완전히 소화를 못 시켰으며, 결과적으로 글의 내용이 서평이 아닌 책의 내용의 나열이 됐을
따름이다. 그래서 글이 이리 길어졌다. 양해의 말씀을 먼저 구하고 시작하겠다.
서곡- 이
책의 독자층이 분명히 정해졌다. 음악을 듣는 신앙인들이다. 저자는 초기 종교와 음악이 굉장히 인접했으며, 음악은 종교와 거의
같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기악 음악이 다성 음악으로 발전함에 따라 기악 음악은 종교와 완전히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기악음악의 표현성이 무제한임을 제시하며 기악음악에서 절대성을 엿볼 수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 것은
청자에게 달려 있음을 한가지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바로 종소리다. 단순한 종소리지만 신앙인, 비신앙인 그리고 상황에 따라
종소리는 다르게 들릴 수 있단점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음악 감상이란 단순한 상황에도 절대자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1악장- 모짜르트
1주제- 신비를 찾아서: 내가 경험한 모짜르트 음악
저자는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하는 모짜르트를 작가인 힐데스하이머와 개신교 신학자인 카를 바르트의 글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다. 그렇게 총 7개의 주제를 썼다. 그중 3주제, 4주제에 대해서만 얘기하고자 한다.
3주제와 4주제는 모짜르트의 신성화와 인간적인 면에 대해 다루었다.
3주제 모짜르트는 신적 존재였는가?
저자는 몇몇 음악가들과 작가들이 모짜르트를 신적 존재로 일컬은 몇몇 예시를 제시하며 모짜르트는 신성성이란 단어가 쓰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신격화가 되어있다 얘기한다. 2명의 음악가가 모짜르트를 어떻게 표현하는 지 옮겨보자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 지상에 내려온 하나님
지휘자 요제프 크립스- 모짜르트가 그의 음악들과 천국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봤다고 함
작가는 신적인 모짜르트가 아닌 또 다른 모짜르트에 대해 얘기하려면 인간적인 모짜르트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냐며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4주제-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근래의
모짜르트 연구들의 공적은 신성적, 영웅적 모짜르트는 다 걷어내고 인건적인 모짜르트를 찾아 썼단 것이다. 이는 그의 유치하며
무례한 행동, 그리고 그 기괴한 편지들(그 유명한 항문성애와 배설물에 대한 표현)들과 아마데우스란 영화도 모짜르트의 신비를
걷어내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이는 너무 난잡해졌다. 미국의 급진적 비평가들은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17번에서 명백한 사회적
소외가 읽히며 밝은 피날레로 억압을 은폐할 뿐이란 논평을 헀다. 모짜르트란 현상은 신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읽힐수 있는
수수께끼다. 그런 불가사의를 풀진 못하도 전보단 자세히 설명할수 있지 않을까 라면서 불가사의란 챕터로 넘어갔다.
이 부분부턴 여러분들이 직접 읽고 판단해주셨음 한다.
2주제- 민중의 아편인가? 시대사적 지평에서 본 모짜르트의 대관식 미사
시작하기에 앞서, 편의상 책의 순서와 글의 순서를 바꿔서 쓴 부분이 있다. 양해를 바란다.
굉장히
도발적 제목이다. 마르크스의 이 말은 지금도 쓰여질 정도다. 하지만 이 제목은 어찌보면 적절하다. K317 대관식 미사는
1779년에 쓰여졌다. 잠시 교회양식에 대해서와 1770년대의 시대적 배경과 모짜르트 개인에 대해 말해보자
브루크너에서 자세하게 다루겠기에 이 말만 하고 넘어가겠다. 음악적으로 교회양시깅란 존재하지 않으며 교회음악과 세속음악의 구분은 비역사적이다.
1517년
종교혁명이 일어났고, 개혁주의적 성향을 띈 사제들은 전례개혁에도 앞장섰다.(간단히 말해 미사시간의 축소 및 기존 교회음악과 다른
음악의 확립이다.)곡의 길이도 짧아져야 했으며, 이탈리아의 기교위주, 연주회 음악처럼 바뀌어 가는 것도 막아야했다. 1770년대
잘츠부르크는 특이한 형태의 도시이자 국가였다 교회와 왕권이 하나가 된 대주교 군주국이었고, 당시엔 히에로니무스 콜로레도 백작이
대주교였다. 그는 개혁주의 성향을 띈 사제이기도 했다. 그는 모짜르트에게 새로운 미사곡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의 모짜르트에겐
거대한 도전이었으며 아예 다른 양식을 공부해야 했다. 1시간 가까이 되던 음악이 약 30분이내로 압축이 되야 했다. 거기다
모짜르트는 잘츠부르크에 싫증이 나 있었다.
그래서 파리를 가기 위해 대주교이자 봉건군주에게 사직을 요청했고
그의 아버지까지 쫒겨났다. 모짜르트는 대주교를 저주하며 파리로 왔고 모짜르트는 파리에 왔다. 그리고 2년간 모짜르트는 그곳에서
플루트 협주곡, 파리 교향곡 같은 아름다운 곡들을 만들었지만 그곳에서 또다른 목소리와 시대의 시작하는 전모를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파렴치를 타도하라' 그러기에 새로운 교회음악인 대관식 미사의 키리에 부분은 또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주님 자비를 배푸소서
대관식
미사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주장하는 카를 마르크스의 정의에 부합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유혹적인 음악에 담긴 종교는 '인민의
아편' 이라고 했으며 이제는 '높은 곳에서 호산나'가 아니라 혁명의 팡파르가 저 아래로부터 울려퍼져야 한다. 란 주장을 펼쳤다.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대관식 미사만큼 이 말에 어울리는 곡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있어 신앙고백(보통은 니케아,
사도신경을 일컫지만 미사도 소급시켜 애기하겠다.)을 드릴 때 생각해야 한다.
종교비판을 무시하며, 신은 허상이란 의혹에 맞서지 못하며, 종교비판의 도구를 우리에게 적요하지 못하면 신앙이 아니다. 신앙고백은 바뀔 수 없는 단어다. 하지만 모든 단어는 언제나 새롭게 이해되야 한다.
그리고
저자는 혁명도 인민의 아편일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근대의 이데올로기들이 유사종교로 변질됐고 다시 종교로 회귀했다는 말과 함께
인민의 아편과 관련된 주제를 끝내고 대관식 미사 안의 신학적인 면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부분은 따로 말하지 않겠다.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보자
2악장
바그너- 신학에 있어서 바그너는 미지의 영역이다. 카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파울 틸리히의 조직신학, 각 권이 800쪽에 총
36권인 신학백과사전에도 바그너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그만큼 미지의 영역이다. 2악장은 바그너와 종교의 난해한 관계를 말하고자
한다.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바그너에 대해 먼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듯 하다. 책에 있는 내용으로만 쓰도록 하곘다
1813년생인
바그너는 1830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7월 혁명을 계기로 혁명가들의 편에 섰으며 바쿠닌, 뢰벨과 친분을 가졌다. 그는 도덕적
사회질서 확립, 예술의 확립, 새로운 연주와 음악의 탄생을 말하며 혁명을 지지하였다. 1848-49년 드레스덴 봉기때는 출판물을
배포하며 열렬하게 혁명에 가담했지만 실패로 끝났으며 망명을 떠났다. 또한 그는 시간이 흘러 바이에른 왕인 루트비히 2세와 친분을
쌓고 혁명 이후의 실패 분위기에 편승했지만 그는 여전히 급진적이며 사회 비판적인 면을 고수했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자유연애
사상을 고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그는 열성적인 포이어바흐 지지자였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영향도
상당히 받은 면이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영향은 포이어바흐에게 받았다. 바그너는 포이어바흐에게 자신의 저서인 미래에의 예술작품을
헌정할 정도로 열성적인 포이어바흐 지지자였다. 여기서 포이어바흐에 대해 거론해보자. 포이어바흐는 19세기 계몽주의를 급진적으로
이끈 인물이며, 신의 개념은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것이며 신성은 초월세계로 투사한 인간성이란 주장을 했다. 그는 신앙의
자리에 불신앙, 성경의 자리에 이성을, 종교와 교회의 자리에 정치가, 천당 대신 지상이, 기도 대신 노동이, 지옥 대신 물질적
빈곤이, 기독교인 대신 인간이 드러설 것이라 하며 기독교의 종말을 예견했고, 바그너는 이런 포이어 바흐의 열성적 지지자였다.
바그너와 포이어바흐에 대해 거론했으니 본론으로 넘어가겠다.
1주제- 신들의 황혼뒤엔 무엇이 오는가? 시대사적인 지평에서 본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바그너의 반지에서 나타나는 것은 크게 3가지다. 신화 드라마, 탈신격화, 구원이다.
1848년
바그너는 지크프리트의 죽음이란 영웅오페라를 만들 예정이었다. 여기엔 영웅의 신격화, 신들의 영원한 권력이 보인다. 하지만 반지는
그렇지 않다. 탈신격화와 결과가 안보이는 구원이 있을 뿐이다. 탈신격화 관련해선 여러 말이 있지만 한스큉은 반지를 통해 바그너가
말하고자 한 것은 근대사회와 기존 사회의 대립이란 것이다.
근대 이전의 세계는 종교가
정당성이었다. 하지만 자주성을 열망하는 개인(근대적 혁명)에 의해 중세 사회도 끝이 나고 사회계약 즉 개인의 재산권, 헌법,
법률은 신과 왕이 있던 곳에 들어섰다. 하지만 바그너에게 있어서 근대적 혁명이 나아간 곳, 그리고 그 결과는 오히려 종말이다.
바그너의 반지에서 신성성을 띄고 있는 것은 시민사회의 세계다. 결코 문명 이전의 상태가 신성성을 띄지 않는다. 보탄이 계약을
맺은, 즉 사회적 계약을 맺은 곳은 신들의 사회다. 반지에서의 대립상황은 문명이전의 자연상태와 자연을 더럽히는 정치질서의 화해할 수
없는 대립에서 얻어진다. 그리고 신들의 황혼은 사회적 계약을 맺은 공동체 즉 시민사회의 종말을 의미한다. 니체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바그너는 근대성이 무엇인지 요약한 것이다.'
구원-
바그너는 작품의 곳곳에서 구원에 대해 얘기하였다. 특히 탄호이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구원에 대한 내용은 잘 드러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대체 반지에 나오는 누가 구원을 받았는가 지크프리트? 브륀힐데? 군터? 알베리히? 보탄? 구원의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구원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등장인물은 죽었으며, 신들의 세계도 불타 없어졌다. 권력을 추구했건, 개인의 자유를 추구했건, 사랑을 추구했건 전부 다 죽었다. 오직 남은건 탐욕만 있는 알베리히 뿐이다.
여기서
우린 포이어바흐적 결말도 아님을 알수있다.(반지의 구상과 첫 대본은 소펜하우어를 읽기 1년 전인 1853년에 끝마쳤고, 바그너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다.)포이어바흐는 사랑이 행복을 준다고 했기에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결말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면 신들의 황혼 뒤에는 대체 무엇인가
이는
1870년대에 포이어바흐와의 거리두기와 1880년에 쓴 종교와 예술이란 논문에서 알 수 있다. 바그너는 이 논문에서 인위적인
종교(기독교든 뭐든 모든 종교)를 반대하며 인간의 연민에 의해 결정되는 종교의식을 얘기한다. 또한 루트비히 2세에게 보낸 편지는
어떠한 작품이 신들의 황혼 뒤에 오는 것을 보여준다.
파르지팔이다.
구원의 필요성을 보여준 신들의 황혼 뒤에는 파르지팔이 오며, 파르지팔은 이상향적 미래와 마지막 구원을 보여준다.
구원을 향한 열망: 바그너의 파르지팔- 엄청 고민했다. 이 주제는 굉장히 형이상학적 주제를 가득 담고있다. 안그래도 책 내용을 거의 베끼는 수준인데 이 챕터는 거의 다 써야할 지경이다. 그러므로 이 한문단으로 마치겠다
파르지팔의 내용을 따른다면 구원은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곳, 고통당하는 인간과 동물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지혜와 참된 깨달음과 이세상에서의 새로운 섬김으로 이끄는 곳, 바로 지금 여기서 일어난다.
브루크너- 이 글도 편의상 책의 글 순서와 맞지 않게 글의 내용을 썼다, 또한 앞의 글과 다르게 필자의 의견도 조금 들어있다. 참고해서 보기 바란다.
먼저
이 글에서는 교회음악가 브루크너가 아닌 교향곡 작곡가 브루크너에 대해 적혀져 있다. 하지만 많은 작품에 O.A.M.D.G(모든
것을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로 서명한 브루크너를 얘기하기에 앞서 교회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모짜르트의 대관식 미사를 얘기할 때 언급했지만 교회음악과 대중음악을 나누는 것은 비역사적이다. 이는 그레고리오 성가조차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레고리오 성가는 19세기에 정립되어 보급되었으며, 실제로는 6세기의 그레고리우스 대교황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로마성가란 단어 조차도 9세기 카롤링거 왕조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다. 카롤링거 왕조는 왕국의 통일과 교황과의 화합을 위해
로마전례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며 로마성가란 단어를 만들었다. 19세기에 보급된 그레고리오 성가는 고대 로마가 아닌 중세
프랑크왕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레고리오 성가라 부르는 것은 19세기에 솔렘 베네딕토 수도원이 다시 정리한
성가들을 그레고리오 성가라 칭하는 것이다.
브루크너에 대해 말해보자, 브루크너는 종교적인
작곡가이다. 하지만 시대는 그의 종교음악을 원하지 않았다. 그 시대의 교회는 16세기의 팔레스티나와 그레고리오 성가를 제외한
종교음악을 원하지 않았기에 교회에서 그의 후기 교향악적 종교음악은 교회에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작곡은 언제나 그의 기독교적
믿음을 기반으로 하였다. 그에게 모든 음악은 종교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의 음악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종교적인 의미였다.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의 구분은 비역사적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을 이 말에 대입한다면 어느 범주에 속할까?
이 뒤는 현재의 음악에 대한 비판과 브루크너의 총체적 통찰이 현재의 음악적 위기를 해결할 발판이 될수 있단 내용이다. 현대음악을 비하하는 면이 보여 과김히 생략하겠다.
4악장
예술의 의미- 마지막 악장은 음악이 아니라 현재 현대예술의 상황과 현재의 위기상황을 어찌하면 타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작가
나름의 생각이 담긴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현재의 예술에 대해 공감했으며 그 조언도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좋은
악장이다. 하지만 개인적 역량이 딸려서 요약이 안된다. 직접 읽어주심 감사하겠다.
마무리하겠다
앞서 말했듯 책의 독자층은 클래식을 듣는 신자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신학적 내용들을 제외하면 신앙인이 아닌 일반 애호가분들도 재밌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른분들도 꼭 한번쯤 읽어 보셨음 좋겠다.
길고 난잡한 글을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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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클래식 하나도 몰라도 재밋을까요?
믿는 사람이면 재밌음 문제는 클래식도 안듣고 믿지도 않는 사람인데... 추천하기 애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