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고 그 글을 평하려고 할 때, 말문이 턱 하고 막히는 경험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글 속에서 헤엄칠 때는 편안하고 즐거웠지만, 막상 글 밖으로 빠져나와 그 글을 마주하노라면, 그 글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깨닫게 되고는 한다. 이런 감상, 저런 감상, 모두 다 한 편의 감상이지만, 여러 감상문을 읽어 보면 내 감상문은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알게 된다. <비평이론의 모든 것>은 그런 피상적인 감상문을 벗어나 어떤식으로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면 더 깊은 혹은 숨어있는 의미를 파헤칠 수 있는지 알려준다.

<비평이론의 모든 것>은 비평이론이라는 렌즈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혹은 편광판이라고 해야할까? 우리는 복잡한 텍스트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새로운 의미가 떠오른다든가 ─ 혹은 부여할 수 있다든가 ─ 텍스트조차 미처 몰랐던 숨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바라보았을 때 미국식 소비문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던 <위대한 개츠비>가 마지막에 가서 어떻게 그 소비문화에 결국 잡아먹히게 되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게 드러난 의미가 늘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어떤 남성이 <위대한 개츠비>에서 신여성들이 어떻게 봉변을 당하는지 알게 되고 반면 비슷한 성향의 남성들은 낭만화 되거나 처벌을 비껴간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글을 읽게 되면, 퍽 당황스러울 것이다. 혹은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이 미국 문학의 금자탑이 어떻게 자기 민족의 문화를 교묘하게 지웠는지 알게된다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선행지식이 읽을 때 전혀 필요하지 않고도 여러 비평이론을 접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지만 아쉬운 점이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내가 특정 이론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글쎄 그런 이론들이 주장하는 내 특권적 위치가 전혀 특권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혹은 비평이론이라는 것들이 본질적으로 좌익적이어서 그런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