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과 그리스 문학을 대비하고
그리스 비극과 신곡을 대비해서
성서를 단테에 리얼리즘으로 연결하고
서양 정신의 근본을 기독교로 두고자 하는게 아우어바흐의 핵심적인 의도라고 보는데
물론 개별 작품들을 심도 있게 분석하면서 리얼리즘이란 화두를 끌어낸
통찰력과 분석력 모두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분석해서 그걸 연결하는 과정의 의도
상당 부분이 그리스 문학에 대한 의도적인 오해에서 출발한 헛소리라고 봄
그리스 문학과 정신은 이야기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가장 큰 특징임
말하자면
관점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이 호메로스 서사시의 핵심이고 그 통찰을 근본으로 두고 확장하는게 그리스의 정신임
이야기의 시작은
신탁에 근거해 트로이에 다가올 재앙의 근원인 파리스를 제거해야하는 입장의 선택에서 비롯됨
그렇지만 운명론에 의해 그 선택은 증발하고
파리스가 살아 돌아올땐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아비의 입장으로 바뀌어 있음
결국 그 바뀐 입장에서의 선택이 트로이에 예언된 몰락의 결과의 원인임
이건 트로이만 보면 그냥 맨 처음 주어진 신탁이 결정한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적인 비극일 뿐이지만
그 트로이라는 관점만 있는게 아니라는게 계속해서 반복되고 결국 그 관점 자체에 대한 인식이 주제가 되는게 호메로스의 작품들인 것임
이것은 좁게는 호메로스의 작품내에서 이뤄지고 다른 그리스 문학에서 확장됨 심지어 히포크라테스나 헤로도토스도 이 확장의 일환임
일단 호메로스만 보면
아킬레우스가 그리스 진영내에서 고립되는 과정에서의 입장 변화가 그리스/트로이 그리고 아킬레우스/프리아모스로 대비를 이룸
그리스 진영이 분열되는 과정이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자아에 의한 것으로 묘사하고
아킬레우스가 주체가 되어 선택하는 순간들에서 아킬레우스의 입장이 변화하는 것을 보여줌
그리고 그 대비가 각자의 파토스가 각자의 방향으로 극에 달한 순간까지 이어지다가 서로 만나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으로 맺어짐
자아와 유기성이 꼬리를 물고 입장을 쪼갰다 붙혔다하면서 결국은 모두의 입장을 관통하는 공감을 형성하는 것으로 끝난단 말임
그러면 운명론적이지만 파멸이란 결과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의 본질이고 그것은 인간의 선택의 합이고
그 선택은 비대해진 자아가 원인이고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필연적이다 이 말임 그리고 그 파멸 거기서도 끝과 끝 사이에서도 공감이라는 유기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인간의 언어(본질적으로 확장하는)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기도 함
유기성만 강조되면 언어는 정보전달에서 확장되지 않음
벌과 개미같은 초유기체 사회에서의 언어는 태초의 로고스의 실천만이 목적이고 확장되지 않지만
인간의 언어는 자아에 의해 유기성이 파괴되고 분열되지만 그런 파편이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또 유기성이라는 거지
그것이 가능하려면 관점의 분리와 통합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야하고 유기성과 자아가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긴장해야하는 것이
그리스 문학이 말하는 바임
호메로스에서 그 통찰이 멈추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그게 이어짐
헤시오도스는 메데이아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 통찰을 더 확장시킴
헤시오도스가 창조한 메데이아 즉 지혜로운 자는
(인도유럽어에서 파생한 med라는 어원은 라틴어에서는 측정하다 중간을 의미하고 그리스어에서는 지혜를 의미함)
인간/신 콜키스(야만)/그리스(문명) 마법/이성 사이의 중간자임
지혜의 상징이 그리스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의 딱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거임
그리고 그런 중간자적 입장에 의해 근본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처지로 묘사되고
차후에 에우리피데스에 의해서도 정확히 그 맥락을 이어받고
지혜가 이 자의 본질인데 용도 잡을 수 있는 능력으로 결국 동족살해도 하고 복수심에 불타고 발버둥치는 존재에 불과함
말하자면 상징화된 지혜도 모시고 섬겨야하는 고정된 우상이 아니라 발버둥이라는 거지
가운데를 인식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정확한 측정이 전제되는 것이고 균형이라는 상대적인 상태가 본질인 것임
오이디푸스에서도 호메로스의 주제의식을 더 심화해서 이어 받음
라이오스가 받은 신탁은 테베의 멸망이 아니라 자신의 멸망임
신탁에 의한 왕의 영아살해라는 명령은 같은데 그 명령의 주체의 관점이 다르다는 말이지
자세히 말하면 너무 길어지니까 생략하지만 그 뒤로 비밀을 안 뒤 달라진 입장의 오이디푸스라는 기준으로 이야기가
나뉘고
그 서사의 결과인 안티고네가 죽은 자 죽어가는 자라는 죽음에 대한 입장으로
허락받은 삶의 입장과 대칭을 이루고 있음
델포이의 신전도 마찬가지임
신전에 들어가겠다는 자에게 입구에서부터 너 자신을 알라고 포지션에 대한 인식을 이르고 있잖아
델포이 신전에 얽힌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 있고
히포크라테스의 나의 다짐이 의사라는 입장에서의 윤리정립이 되고
헤로도토스의 history가 그리스 밖 세계에 대한 탐구와 탐문의 확장이라는 개념이 다 그 맥락안에 있음
아우어바흐는 의도적으로 그리스문학을 오디세이에 국한해서 보고
그것 조차 편협하게 해석하고 구약의 특징을 복잡하고 다중적이라고 대조시키지만
자세히 보면 그건 정 반대임
다중적인 성격은 그리스 문학의 차별점임
애초에 그리스 도시국가연합이라는 정치적인 배경에 의해 다원적인 성격을 띄지만 그 속에서도 유기성을 끊임없이 발견하는 것 뿐임
아우어바흐가 예로 든 욥의 일화를 보면
결국 욥이라는 낮은자의 입장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심지어 내면묘사가 생략이 되어서 위대하다는 것인데
생략된 낮은자의 입장은 그리스 문학이 더 많고 낮은자가 주체가 되는 이야기도 더 많음
희곡뿐만이 아니고 헤시오도스는 신의 계보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그에 가장 대비되는
낮은 자(농민이자 신의 대리자에 의한 재판의 희생자로써 자신)가 주체가 되는 이야기도 썼었음
아우어바흐가 말하는 계급적 편애는 자기 눈에 씌인 콩깍지이자 확장에 방점을 찍는 시학의 몰이해지
암튼
태초에 파리스와 오이디푸스의 삶을 허락한 왕명을 어긴자들은 낮은자들인데
그들은 그들의 왕의 부속이라는 본질을 벗어나는 선택을 한 자들임 그 선택에 대한 묘사가 없을 뿐이지만
살해라는 왕명과 양심 사이의 갈등과 그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에 대한 공포에 대한 묘사가 생략되었다고 듣는 자의 입장에서 고려할 수 없는 것이 아님
뺏기는 것에 의문을 갖지말라는 게 욥에 대한 요구고 그걸 따르는 심정이 생략되는 것에서 오는 위대함 같은 것은 없음
그건 그리스 문학을 통해보는 인간의 언어적 성취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호메로스보다 이전의 아주 태초의 이야기로의 회귀이자
초유기체적인 로고스에 불과한 것임
자아와 유기성간의 긴장이 깨지고 오직 유기성만 남은 세계로의 회귀를 뜻한다고
그 회귀를 깨고 긴장을 다시 복원하고자 하는 입장이 단테의 신곡인 것임
그냥 간단하게 신곡을 정의하면 "지옥 갈끄니까~"임
지옥에 보내면 되니까 그 핑계로 개인의 실존을 파고 들 수 있었던 거지
형식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단테는 그리스 정신을 잇고 있는것이고
지옥이 기독교라는 로고스의 통제에서 발견한 실존 탐구를 공유할 수단이자 핑계가 되는 것임
그리스 문화가 낳은 로마가 제국을 이루면서
제국의 필요에 의해 그들의 근본을 주변화했지만 그것이 탐구와 확장을 완전히 막을 수 없는것이고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는 그 탐구와 확장을 발견하고도 무너지는 통제를 위한 입장으로 해석을 한 것임
신에게 복무하는 유대인의 입장이라고나 할까
편애받는 입장이라고 해야 할까
아우어바흐한테 dm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