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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랑시에르는 80년대 프랑스 교육 논쟁, 즉 다 같이 평등하게, 뒤처지는 애 없게 눈높이 낮추자 라는 하향 평준화하자는 쪽, 엘리트주의로 가자는 쪽 둘 다 비판함 표면적으로는 싸우는 척하지만 둘 다 대중은 원래 멍청하다는 전제를 깔고 대학교수들이나 정치인들의 지배논리와 권위만 정당화하는 구조라서 똑같다는 거임 무지한 스승은 이 꼰대 프레임 자체를 부수고 교육 논쟁이란 게 사실 대중을 무지 상태로 묶어두는 지배계급 쇼라는 걸 드러낸 책임. 번역을 하도 좆같이 해놔서 저자를 평준화 교육 찬양한 사람으로 오해하는데, 정반대로 평준화 교육 존나 까고, 엘리트교육도 존나 깐 사람임
랑시에르는 기존의 민주주의자나 평등주의자들이 대중을 위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지적 우월감을 유지하고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간악한 사기꾼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함. 독자들에게 지배 이념을 해부하기 위한 태도를 심어주려는 데 책의 의의가 있음. 랑시에르가 기존 용어의 정의를 뒤집고 자신만의 정의를 쓰는 이유는 기존의 단어와 논리로는 이 사기극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임. 무지한 스승이라는 책은 그런 그 지배 이념의 작동 방식을 해부하고 그걸 파괴할 수 있는 태도를 심어주려는 안내서라고 할 수 있음.
무지한 스승 챕터 1장부터.
1장
무지한 스승이라는 책은 조제프 자코토라는 19세기의 교수가 겪은 이야기에서 시작함. 자코토는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벨기에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함. 막막한 상태로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본 소설책 한 권을 던져주고 알아서 배우라고 했다고 함. 기존의 교육 시스템에 따르면 똑똑한 스승이 무지한 학생에게 체계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학습은 불가능한 수준임. 그런데 학생들은 스승의 설명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익혔다고 함. 언어는 단기간에 익히기 어려운 거라서 굉장히 의아한 부분인데 암튼 그러함. 이 사건을 통해 자코토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 게 됨. '스승의 설명'이라는 행위는 지식 전달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임. 오히려 기존 교육시스템은 "너는 내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다"라는 메시지를 학생에게 주입해서 학생을 영원히 스승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지적 열등화' 과정이었던 것임. 학교란 바로 이 열등감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공장이라고 함.
2장
자코토의 발견 이후, 책은 이 '지적 열등화'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야기함. 기존의 스승(지배 계급)은 지식을 잘게 쪼개서 아주 조금씩, 단계별로 가르침. "오늘은 알파벳, 내일은 단어" 이런 식임. 이를 통해 스승들은 언제나 학생보다 앞서 나가며 지식의 전체 그림을 보여주지 않음. 학생은 영원히 스승을 따라잡을 수 없고 평생 스승에게 의존하게 함. 오늘날 병신같은 공교육의 영어교육이 그러한데 극도로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입시용으로만 쓸모있는 교과목으로 아직 자리잡은 현실을 보면 답이 나옴. 이런 병신같은 교육제도를 아직도 유지시키고 있는 먹이사슬 꼭대기에는 대학교수들이 있고 사교육업자들은 굉장히 이 비효율적인 외국어 교육시스템에 기생해서 이득 얻고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효율적인 외국어 학습은 가르쳐주지도 않고 병신같은 입시용 문법 외우기만 가르치는 꼴은 몇 년이 지나도 전혀 안 바뀜. 암튼 무지한 스승으로 다시 돌아가서 스승은 끊임없이 학생에게 "이해했니?"라고 물음. 이 질문은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임. 학생의 목표는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설명을 '이해'하고 스승의 마음에 드는 답을 하는 것이 됨. 학생은 스승의 지성에 종속되는 훈련을 받는 것임. 랑시에르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조차 교묘한 '지적 열등화'라고 비판함.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통해 노예가 스스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원하는 답으로 노예를 교묘하게 '유도'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임. 노예는 소크라테스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만 다시 확인하게 됨. 이것이 바로 지배 이념이 사회 전체에서 작동하는 방식임. 민주주의 숭배하는 정치인, 전문가, 언론은 대중에게 "사회는 복잡하니 우리가 설명해주겠다"고 말하면서 대중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는 존재라고 믿게 만드는 것임.
3장
이 지배 시스템을 어떻게 깰 수 있는가? 랑시에르는 단 하나의 파괴적인 원리가 있다고 말함. "모든 인간의 (잠재적인) 지성은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 없는 전투의 공리(Axiom)로서 일단 선언하고 시작하는 것임. 이는 평준화 교육 하자는 게 아님. 랑시에르는 그 차이가 지능의 '등급' 차이가 아니라 개인이 발휘하는 '의지'와 '주의력'의 차이일 뿐이라고 함. 모든 인간은 동일한 지적 잠재력(CPU)을 가졌지만 그걸 극한까지 사용하려는 의지와 집중력이 다를 뿐이라는 것임
'무지한 스승'의 역할은 지식을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이미 가진 그 평등한 지성을 스스로 사용하도록 의지를 강제하고, 그 투쟁의 과정을 검증하는 것뿐이라고 함. 랑시에르의 사상이 평준화 교육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이유임. 평준화 교육은 학생들은 저마다 능력이 다르니(불평등하니), 뒤처지는 아이들을 위해 기준을 낮춰 결과를 비슷하게 만들자고 함. 이는 불평등을 전제하고 그걸을 '관리'하려는 간악한 시도에 불과함. 반면 랑시에르는 모든 학생의 잠재력은 평등하니 각자가 자신의 의지만으로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경쟁하고 증명하라고 함.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잠재력의 평등을 전제로 한 결과의 불평등을 완전히 해방시키려는 의도임
4장
이 장에서는 학교의 원리가 사회 전체로 확장됨. 사회는 이성적인 개인들의 합리적인 집합이 아님. 사회는 그저 '불평등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개인들의 거대한 덩어리일 뿐이라고 함. 사람들은 평등이 주는 무한한 가능성과 책임을 감당하기 두려워서 차라리 "나는 저놈보다 우월하고, 저놈은 나보다 열등하다"는 식의 위계질서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려고 함. 이 불평등에 대한 열정이 제도화된 것이 바로 '경찰 질서'임. 경찰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아니라 랑시에르 본인이 개념의 의미를 뒤집어 재정의해서 쓰는 용어인데 이 경찰 질서는 각자에게 사회적 위치(노동자, 전문가, 여성 등)를 부여하고, 그 위치에 맞는 역할과 목소리만 내도록 통제하는 시스템임. 다른 책에서 랑시에르는 기존의 민주주의, 헌법, 대의제, 선거도 경찰 질서라며 그 경찰 질서에 기생하는 지식인들을 비판하고 해부함. 이 질서 속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 정치의 현실은 이성적인 토론이 아니라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수사학적 전쟁에 불과함. 민주주의, 선거, 헌법 역시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기존의 불평등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강제력일 뿐임. 이성적인 개인은 이 거대한 비이성적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음. 이 시스템의 작동 원리가 '지성의 불평등'이라는 거짓말에 기반하고 있는 것임.
5장
랑시에르는 기존의 진보주의자나 개혁가들이야말로 최악의 사기꾼이라고 봄. "대중은 무지하고 불쌍하니, 우리가 새로운 교육 방법으로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주고 계몽시켜주겠다"고 말함. 그들은 '체험 학습' 등 자코토의 방법과 유사한 것들을 도입함. 그러나 그들은 가장 중요한 핵심, 즉 "모든 지성은 평등하다"는 원리를 거부함.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우월한 지도자'이고 대중은 '열등한 계몽 대상'이라고 믿음. 결국 그들의 모든 개혁은 기존의 '설명' 시스템을 더욱 교묘하고 세련되게 만들 뿐, 근본적인 위계질서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음. 나중에 랑시에르는 다른 책에서 민주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책에서 이 논지를 더욱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겉으론 내세우면서도 속내는 반민주적인 마인드를 가진 지식인들을 통렬하게 비판함.
오히려 대중에게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너희가 발전이 없는 걸 보니, 너희는 정말 구제 불능의 바보구나"라는 메시지만 강화할 뿐임. 이들이 바로 해방을 흉내 내는 원숭이, 즉 해방자의 원숭이임. 무지한 스승은 결론적으로 누군가가 당신을 평등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접근하면, 그놈이 바로 당신을 지배하려는 사기꾼이니 경계하라고 말함. 진정한 해방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님. 당신이 스스로 나의 지성은 누구와도 평등하다고 선언하고, 그 선언을 바탕으로 스스로 배우고, 생각하고, 발언하는 내면의 혁명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는 마인드 키우라는 거고 그 내적 혁명을 위한 태도를 기르라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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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암기 교육은 랑시에르가 비판하는 '설명하는 스승'의 논리가 극단적으로 구현된 최악의 사례임. 랑시에르의 관점으로 한국의 교육을 보자.
이 시스템의 중심에는 '정답'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음. 이 정답은 오직 교사, 교과서, 입시 제도를 만든 대학교수들만이 소유하고 있음. 학생의 역할은 이 정답을 탐구하거나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설명해준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임. 학생의 독창적인 생각이나 질문은 '오답'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시간 낭비로 취급됨. 그런 시스템 속에서 인간들은 가증스런 민주주의자들에게 놀아남.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사실상 지적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12년간 이 기존 스승들의 '설명 체계'에 얼마나 충실하게 복종했는지를 검증하는 거대한 의식에 가깝다는 것임. 누가 더 많은 '설명'을 암기하고, 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을 복제해내는지를 겨뤄야됨.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지성을 신뢰하는 법을 잊고 오직 외부의 권위(교사, 시험 출제자)가 제시하는 정답만을 갈망하게 됨.
암기 교육을 통해 길러진 인간은 스스로 무언가를 배우고 판단하는 능력을 거세당함. 그들은 평생 "어떤 전문가가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림. 이는 지식을 많이 소유한 '똑똑한 바보'를 양산할 뿐 자신의 지적 능력을 믿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해방된 인간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임. 암기 교육의 숨겨진 목표는 지식 전달이 아니라 "너는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다"는 열등감의 체계적 주입인 동시에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만 양산하는 것임.
한국의 민주주의 교육은 랑시에르가 가장 경멸하는 '진보주의자들의 위선'이 집약된 형태이고 다른 책에서 통렬하게 이를 해부함.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평등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의 전복적인 힘을 제거하고 국가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활동하는 '안전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임.
학교에서 민주주의는 헌법 조항, 선거 절차, 정부 구조 등 암기해야 할 '지식'으로 전락함. 랑시에르에게 민주주의란 본래 "너와 나의 지성은 동등하다"는 선언을 통해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는 급진적 '사건'임. 그러나 교육 시스템은 이 살아있는 사건을 죽은 지식으로 박제하여 학생들에게 '설명'함. 랑시에르는 다른 책에서 민주주의란 대의제, 선거, 언론자유 이런 것만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며 기존의 민주주의의 의미조차 새롭게 재정의함.
랑시에르에게 민주주의 교육의 목표란 해방된 주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찰 질서'에 순응하는 '올바른 시민'을 만드는 것임. 학생들은 토론 규칙을 배우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투표하며 법과 제도의 중요성을 학습함. 이는 기존의 사회적 합의와 질서를 존중하도록 길들이는 과정임. "너는 말할 자격이 없다"고 취급받던 사람이 갑자기 등장하여 판을 뒤엎는 '랑시에르적인 민주주의'는 '사회 혼란'으로 규정되고 금기시됨.
공교육은 학생들에게 "너희는 아직 미성숙하니 우리가 가르치는 민주주의를 잘 배우면 나중에 '올바른'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말함. 이는 평등을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할 '출발점'이 아니라, 미래에 도달해야 할 '목표'로 만들어 버림. 계속 주의할 것은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주주의나 평등은 기존의 평등과 의미가 다른 철학적 정의에 가까움.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자신의 평등한 지성을 선언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국가라는 거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기다리는 영원한 학생의 자리에 머물게 됨.
한국의 암기 교육과 민주주의 교육은 서로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그 근본적인 목표는 동일함. 바로 "지성은 불평등하며 우월한 자(국가, 교사, 전문가)가 열등한 자(학생, 대중)를 이끌어야 한다"는 지배 이념을 학생들의 뼛속까지 각인시키는 것임. 그런 점에서 랑시에르는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팔이하는 사기꾼들이 만든 과두제적 법치국가에 살 뿐이라고 말함. 두 교육 모두 학생이 스스로 "나의 지성은 당신과 동등하다"고 선언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함. 하나는 '정답'이라는 권위로, 다른 하나는 '올바른 절차'라는 권위로 개인의 자율적인 지성 활동을 억압함. 따라서 랑시에르의 관점에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지식 공장이 아니라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재생산하기 위해 대중의 지적 자신감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거대한 '열등화' 장치에 불과하며 민주주의자들의 위선을 까발리는 정치철학자임. 기존의 번역서 역자들을 보니 정치색이 뚜렷한 분들이시던데 이런 사상이 불편했는지 엄청나게 랑시에르의 원래 사상을 순화하거나 엉터리로 번역해서 독자들이 일부로 이해 못하도록 어려운 난해한 글로 만들고 거세시킨 수준으로 번역한 느낌이 많이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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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에게 선거, 의회, 정당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경찰 질서'의 가장 세련된 형태임. 이는 국민의 주권을 실현하는 장치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동의를 얻어내는 절차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위계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과두제적 통치술임. 이 주제는 다른 책에서 통렬하게 비판하며 기존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실은 반민주주의라고 비판함.
"대중을 계몽하고, 불평등을 점진적으로 해소하겠다"는 민주주의자들, 진보주의자들은 랑시에르가 보기에 최악의 위선자임. 이들은 우월한 전문가/지식인과 열등한 대중이라는 구도를 전제하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선의는 결국 대중을 영원히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게 하는 '지적 열등화'로 귀결됨.
랑시에르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알튀세르와 결별하며 이 입장을 명확히 했고 이 1987년에 쓰여진 책을 통해 인정받음. 의식화된 소수의 전위당이 '무지한' 노동계급을 이끌어야 한다는 레닌주의적 발상은 랑시에르에게는 단지 스탈린주의적 독재로 귀결될 또 다른 형태의 '설명하는 스승' 놀음에 불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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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썼군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 얼마나 업신여기길래 이런 글 쓰나 싶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지적을 하던가 솔직히 말하면 얼마나 개병신같은 앰생이길래 이런 병신같은 댓글다나 싶다,.
@ㅇㅇ(59.4) 아니지. 내가 첨삭해주면 너는 내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되잖아. 나도 랑시에르에 공감한다. 그러니 니 글 니가 열심히 보면서 뭐가 잘못 됐는지 스스로 생각하렴.
@ㅇㅇ(39.113) 아 그리고 번역에 불만이 많고 랑시에르를 곡해하는 놈들 천지같으면 리뷰 잡지나 언론에 투고해라. 니 말이 맞으면 글 실어주겠지.
진즉에 그런 식으로 댓글을 달던가 병신아 ㅋㅋ
난독증 있는 병신 땜에 하나 추가함 <<결론부터 말하면 랑시에르는 80년대 프랑스 교육 논쟁, 즉 하향 평준화하자는 쪽, 엘리트주의로 가자는 쪽 둘 다 비판함 표면적으로는 싸우는 척하지만 둘 다 대중은 원래 멍청하다는 전제를 깔고 대학교수들이나 정치인들의 지배논리와 권위만 정당화하는 구조라서 똑같다는 거임 무지한 스승은 이 꼰대 프레임 자체를 부수고 교육 논쟁이란 게 사실 대중을 무지 상태로 묶어두는 지배계급 쇼라는 걸 드러낸 책임. 번역을 하도 좆같이 해놔서 저자를 평준화 교육 찬양한 사람으로 오해하는데, 정반대로 평준화 교육 존나 까고, 엘리트교육도 존나 깐 사람임>> 이제 이해 됨?
자동차 잘 고치는 애더러 그쪽으로 머리 좋다고 하지 그럼 머라고 하냐 이러면 엔지니어 보고도 기분상해하겠네 쟤랑 나랑 지성이 같은데, 내가 못하는 걸 쟤는 하니까 이게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임. 엔지니어 아니라 교수면 억압자고 복합하면 억압기제라고 단순화시키는데 단순하게 해놓으면 이해 못하는 건 또 많아지고
많아지면 이 모든 복잡함은 나를 향한 억압이니 내가 이해 못함은 잘못된 것 빨갛게 되어가는 전형적인 코스
랑시에르에 따르면 머리가 좋은게 아니라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거임 자동차 못고치는건 의지와 노력의 문제로 치환함
@ㅇㅇ 자동차 고치기 잘하는게 공부해서 된 건데. 누유부분에서 역추적해서 자동차 엔진 결함의 원인을 찾는 사고는 자동차의 전반 구조 지식을 암기=기억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하잖아. 솔직히 한국 교육 비판하기에는 너무 철지난 주입식 교육탓같음. 절차와 제도는 인간이 세운거라 처음에 저런 걸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절차와 제도가 세련되게 바뀌거나
@ㅇㅇ(106.101) 현재 모습에 이르게된 사회적,정치적,법적 사건 등이 있었고. 지금 교과서나 현존 제도의 내용이 과거의 시행착오에서 유래한 최종물인건데, 이 최종물인 지식을 외우랬다고 이를 '순응'이라고 해석하면 교수는 이렇게 말하겠지. 이 특정 절차와 제도가 어떻게 현재 모습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아서 탐구하고, 대학원으로 와서 마치 입자단위 절차개념에 대해 연구하고 논문
@ㅇㅇ(106.101) 쓰든지 해라. 교수입장에서는 최종물들 가르치기에도 빡셈. 대학에서도 랑시에르처럼 그런 철지난 학습방법 제시하지 않았음. 공부는 알아서, 교수는 그분야 최신연구를 수행하는 지식인으로서 모두 답해주는 사람. 딱 이정도지. 요새 어떤 대학에서 랑시에르가 본 것처럼 가르치지.
저자가 말하는 평등은 기존의 평등 개념과는 다르게 정의함. 지성의 평등이란 "모든 사람의 IQ나 특정 기술 능력이 같다"는 의미가 아님. 랑시에르는 정비공이 교수보다 자동차를 더 잘 고치고, 교수가 정비공보다 플라톤을 더 잘 안다는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사람임. 모르는 것을 마주했을 때, 그걸 자신이 이미 아는 것과 연결하고 번역하여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능력을 말함. 아는 게 많고 적음이 없는,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존재하는 '질적' 능력이라고 하는데 애초에 평등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개념을 비틀어버려서 그럼
@ㅇㅇ(59.4) 랑시에르가 지성의 평등 외치길래 뭔 소린가 했더니 '추론능력이 누구나 있다' 이 뜻이구나. '넌 모르니까 말하지마'라는 건 추론능력 발휘자체를 막으니까 그가 정의한 민주주의 기본도 안지켜진 것이지. 그런데 랑시에르의 논의는 한국 공교육제도에서 속칭 시민사회교육 민주주의교육 부분에 관하여 허수아비 치기같음. 요즘 저걸로 시험조차 많이 보나. 선택도 안하던데
나도 읽었는데 모든 사람의 지능이 동등하다는 걸 전제로 해야한다는 건 솔직히 개씹소리는 맞잖아
지능이 동등하다는 게 사람들 머리가 다 똑같다는 소리가 아님. 일부러 표현 꼬아서 파렴치한 지식인들 비판하려는 구호임. 지능 높은 사람 = 가르치는 사람, 지능 낮은 사람 = 배우는 사람. 학교, 사회, 정치 전부 이 틀로 굴러가는데, 랑시에르는 이 틀이 애초에 부패한 놈들이 만든 권위 구조라고 까는 거임. 일단 너는 원래 멍청하다 전제 깔리면 배우는 놈은 영원히 열등 포지션에 묶이고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비판함. 그래서 나온 게 모든 지능은 같다는 슬로건임. 현실 묘사하려는 게 아니라, 교수들, 정치인들 권위를 부수려고 던진 무기라는 거임. 결국 남는 건 의지랑 노력뿐이고 배우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도 배울 수 있음. 그 순간 스승은 절대 권위가 아니라 그냥 촉매제 역할만 한다는 거임
@ㅇㅇ(59.4) 걍 그런 측면에서 뒤집는 이유로 극단적 소리하는거다 하면 이래라도 가지. 그런 의미만 있다고 하면 모를까, 자코토 얘기하면서 "누구나" 배울 수 있고 누구나 배운 적이 있고 누구나 된다고 하니까 그렇지... 진짜 그런건지, 그냥 주장의 의의만 있는건지 랑시에르 자체도 명확히 안나눔
국내 번역자 병신들이 랑시에르를 평준화 교육 찬양하는 사람으로 왜곡해놨는데 국내 책들이 다 오역 병신이라서 그럼. 정확히는 그 반대의 사상을 가진 사람임. 실제론 평준화 교육 찰지게 뚜드려 팬 사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