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작상 10주년 특별판을 접할 기회가 생겨서 다시 읽었는데 그냥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레이먼드 카버의 '깃털들'이라는 단편을 올타임급으로 좋아하는데, 비슷한 경지에 다다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아주 일상적인, 누구나 겪어봤을 불편한 경험을 담담하면서도 어찌보면 냉소적으로 보일 정도로 묘사하는데,
악의없어 보이는, 도덕적 기준에서는 선량하다고 할 사람들 (부당하게 떠안게 된 빚을 책임지려고 인생을 갈아넣을 정도의)
그런 사람들의 무리가 서로 밀착되어 여행을 떠났을 때의, 그 가까운 거리감 자체에서 오는 불쾌하고 축축한 감각을 이렇게 생생하고 섬세하게 묘사할 수가 있을까 싶다
작중의 가족은 서로 긴밀하게 의지하는 관계이기에 서로 폐를 끼치며 손잡고 진창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그런 관계에 대한 이상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던 화자가 그 진창에 함께 빠져들어가며 겪는 공포를 작가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서술해냄,
결국 화자는 그런 관계를 견뎌내지 못해 떠나가고 형제 자매가 없는, 가족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남자와 살게 되는데
도망쳐온 관계를 회상하며 느끼는 그 미묘한 감정을 정확하게 묘사해내는 후일담 또한 압권임.
관련 비평에서는 이걸 '현대인의 자기합리화에 대한 반성'이라는 식으로 서술해뒀던데, 솔직히 작품의 결을 완전히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비평이라고 생각함.
카버의 '깃털들'은 불쾌한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만남으로부터의 후일담을 화자조차 조롱해버리는 냉소로 무자비하게 끝내버린다는 느낌인데,
황정은은 거기서 온갖 복합적이고 미묘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뽑아낸다는 인상임. 한국 단편이 이룬 한 경지 중 하나라고 생각.
10주년 작품집에서 편혜영 '저녁의 구애', 김애란 '물 속 골리앗'도 진짜 좋게 읽었는데 '상류엔 맹금류'가 걍 압도적이란 생각이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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