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그렇지만


다른 사람 이야기만 하게 될 거 같은데


어쨌든 낮은 자를 다루는 것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임



현대인이라는 관점에서 단테 이해에 가장 효율적인 이야기는 t s 엘리엇의 그 연가라고 생각하는데



효율적으로 지금 말하고자 하는 부분과 연결된 거의 마지막 구절들만 가져왔음 



No! I am not Prince Hamlet, nor was meant to be;

Am an attendant lord, one that will do

To swell a progress, start a scene or two,

Advise the prince; no doubt, an easy tool,

Deferential, glad to be of use,

Politic, cautious, and meticulous;

Full of high sentence, but a bit obtuse;

At times, indeed, almost ridiculous—

Almost, at times, the Fool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일단

단테와 달리 프루프록은 숭고해지는데 실패했고 그게 왜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하나면


단테가 기획한 

베아트리체를 통한 천국행은

기사도 문학에 대한 의도적인 모방임


말하자면

봉건적 질서를 지탱하는 한 축으로서의 사랑의 이데올로기화에 대한 확장적 모방이고


유부녀를 사랑하는 기사가 그 연심을 품고 그걸 물리적으로 실현시키는게 아니라 더 높은 가치인 기사도로 승화시키는 그 수직적 상승 구조가 같다고



다만 그 상승의 주체가 계급 신분에 의해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까지 내려가는 것이지


이는 사랑에 대한 과대평가가 목적이 아니란 말이기도 함


목적은 이미 성경이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귀찮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고 봉건 계급의 지위로 독점할게 아니란 거임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그저 기사도 문학에선 봉건적인 질서와 그 수호자에 대한 엄숙성과 숭고함을 수식하기 위해 수호와 의무의 연장이 되고 높은 가치가 되어야 하는 발사대에 불과했던거 처럼


똑같이 종교적인 질서와 그 수호자를 위해서 숭고해질 필요는 없다는 거지


그래서 단테가 묘사한 지옥에도 처음부터 필연적으로 또 영원히 그리로 향하는 사랑(봉건적 질서를 위협하는 형태의)이 대칭의 구조로 있는거임




또 그건 마침내 기독교로 묶이는 세계가 완전히 분열할때 


대칭이라는 균형을 잃은 이데올로기로 드러나고  


거기에 속한 이가 그 속에서 길을 잃을때 


거기에 대한 시가 엘리엇의 송가고 저 구절이 그 무지가 필연적으로 어디로 귀속되어가는가에 대한 묘사라고 봄


영원이란 숭고가 사라지고 

인간이 다시 시간을 인식하고 영원을 자르고 재고 판단하려 할때인데

아직도 그것에 의해 떠 받들어지던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지


그 상승에 따른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었다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