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바다를 읽으면 미시마 유키오는 단지 광인인 극우 천황주의자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문학과 자기 삶을 구분할 수 없던 개인의 모든 사념이 들어간 이 총 4네권의 풍요의 바다 시리즈의 마지막 파트를 읽으면서 나는 많이 울었다.
우리가 봄눈, 달리는 말, 새벽의 사원, 천인오쇠를 이해할 때
보통 각 권의 주제를 로맨스 순정, 정치, 관음증, 일본문화의 쇠락 같은 표면적인 주제로만 인식하고 있을 텐데 나는 풍요 시리즈가 단일 주제의 맥락로 이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
꿈과 환생과 기억 그리고 인식의 한계와 유식론,
역사에 대해 개입하려는 개인의 속성. 그리고 그 개인의 노력은 헛되며 오직 순수성만이 남는다는 인식
정열을 질투하는 인식자
끝없는 회의감 끝없는 인식 끝없는 관음 끝없는 허무..
책속의 문장과 문장사이에는 좀더 복잡한 사념의 기류가 흐르고있다...

풍요 시리즈는 사람을 단순한 이미지로 바라보지않는다. 즉 인식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우리가 인지하고 표상하는 모든 이미지들은 사실 실제와 분리되어있으며 우리는 우리 앎과 인식속에 갇혀산다. (혼다의 마지막 깨달음)
나는 어릴 때 엄마가 방안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소리로 무언가 계속 속삭이는 소리를 문밖에서 들은 적이 있다. 이질적인 경험이었다. 기도하는 것일까 혼잣말을 하는 것일까...알 수 없다. 나의 인식은 여기서 끝이 난다. 금방 잊어버렸다. 이질적인 경험은 다들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엄마는 그냥 평범한 엄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실타래보다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함이 가득하다. 우울하면 우울할 수록 사람은 자신의 복잡한 이면들을 더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은 현상에 대해서 좀더 조밀하고 세밀하게 분석하려 할 수록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복잡한 신경으로 만들어진 인형이란걸 알게된다. 그리고 그건 형언할 수 없다.

작금의 작가들은 현대문명의 정치적 주제만을 텍스트 속에 녹여낼려고 하지 예술의 본질인 "이해"를 도외시하고 있다.

아니 예술의 본질이 "이해"라니 웃기지않은가. 예술은 철학이 아니다. 예술은 무언가 이해하려는게 아니라 무언가를 느끼는데 핵심이 있다.

그러나 내가 하고싶은 말은 이거다
철학은 우리가 명료하게 언어로 발화할 수 있는 것들을 탐구하고
예술은 우리가 형언하지 못하는 것을 마치 우리가 그것을 이해라도 하는 것마냥 우리 마음속에 녹여주는 것이라는거다.

기요아키는 사토코의 약혼이 정해지기 전에는 사토코를 업신여기다가 약혼이 정해지자 왜 끝없이 불타는 정열속에서 산화해버렸을까?

이것만 봐도 기요아키는 평범한 로맨스 주인공이 아니다. 게다가 통속소설이었다면 다른 남자랑 사귀든지 아니면 기요아키와 사귀거나 죽거나 했어야할 여자주인공인 사토코는 기요아키를 버리고 닿을 수 없는 깨달음의 피안으로 변모해버리고만다...

보통 "사랑" 이라고 하면 뭘 떠올리는가?
개인의 성취로서 기능하는, 안정적인 연애, 행복한 가정, 활력넘치는 삶이다.

그러나 미시마가 표현한 사랑은 무엇인가?
닿을 수 없음으로서 완성되는 로맨틱, 그리고 죽음과 파멸이다.

파멸과 사랑을 구분짓지 않는 이 우울한 인식은 예술에서는 오래된 소재다.

바그너의 오페라인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끝을 맡은 '사랑의 죽음'이란 곡을 들어본적 있는가? (들어보길 권한다)
예술가들은 사랑을 일상의 번잡함, 친숙함, 사람냄새나는 생활의 공간에서 찾지않는다. 세상에 행복한 부부는 있어도 평생동안 서로 영원히 끌어당기듯이 사랑하는 부부는 없다.

가장 강렬한 감정의 형태로서의 사랑은 오로지 모든게 무너질 때, 파멸과 함께 '끝'이 나야하며 그래야만 완결적인 순수성을 얻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달리는 말에서 이사오 소년이 얻으려 한 것은 이것이었다. 사랑과 충성은 같은 감정이다. )

또한 그 '순수성'이야 말로, 쓰나미 처럼 현재의 모든 작고 소중하고 복잡한 감성을 단순한 텍스트로 손실압축해버리는 역사의 흐름에서 마치 흔들리는 모랫속 금가루 마냥 유일하게 남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인식속에서 미시마의 할복자살은 역사에서 순수성을 얻으려는 시도이며,실제로 50년 전의 미시마 사건이 현재에도 큰 영향을 주고있다는 것은 놀랍다, 만약 미시마가 그때 죽지않았더라면 그저 멍청한 고어쇼로 잊혀졌을 텐데..)


미시마의 소설은 행복하고 마음이 안정적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싸픽이 아니다)
평생을 슬픈 게이로 살아온 인간의 소설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삶이 아니라 파멸을 향한지 오래인 우울인간의 행동원리에는 에로틱한 멜랑꼴리함이 스며들어있다...

그러나 우울인간을 위로하는 마지막 남은 멜랑꼴리마저도
닿을 수 없는 사토코가 앗아가고
남은 것은 모든 것이 해체되고 정지된 시공간속 강렬히 내리쬐는 햇볕속에 고요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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