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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780311



'롤리타'를 읽고 나보코프의 문장력에 완전 감탄해서 이 책을 오래 전에 찜해놓고는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진짜 깜짝 놀랄만한 책이네요. 발상이 정말 너무 기발합니다.

구조 자체부터 엄청 특이합니다.

'존 셰이드'라는 유명 시인의 '창백한 불꽃'이라는 999행짜리 시(詩)에 대해

화자인 '찰스 킨보트'가 주석을 달아서 발간한 책이라는 형식인데

주석이 무려 300페이지가 넘습니다.

시는 약 60여 페이지 남짓하니 한마디로 '주객전도' 된 상황이죠.

내용도 진짜 괴랄합니다.

주석을 가만히 읽어보면 '이게 정말 시에 대해 해석한게 맞아?' 라는 의문이 저절로 듭니다.

화자인 킨보트가 하고 싶은 말만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은 것 같거든요.

시인은 자신의 삶 속의 아내, 딸, 죽음, 인생을 관조하면서 쓴 것인데

주석은 전혀 쌩뚱 맞게 '젬블라(가상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한 암시로 해석합니다.

내용 측면에서도 역시 '주객전도'된 상황이죠.

킨보트는 자기가 평소에 시인에게 영향을 크게 주어서 그것이 시에 반영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킨보트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모든 시 문구를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합니다.

망상 내지는 자의식 과잉으로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마지막에 진짜 크게 폭발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옵니다.

나보코프는 대놓고 문학비평가들을 씹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평가들이 작품을 해석한다고 하면서 결국 자기의 욕망과 이데올로기를 투영하는 모습을 비꼬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처음에는 당연히 '주석'의 내용이 진실이겠거니 하고 읽다가

점점 '엥? 뭔가 너무 이상한데?'하는 생각을 하다가

종국에는 '비평가'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는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처음에는 읽는데 많이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나보코프가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서 허우적대다보니 이해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집중해서 읽다보니 진짜 너무 재밌게 완독했네요.

평가를 좀 찾아보니 나보코프 책 중에서도 좀 어려운 편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나보코프에게 관심이 있으시다면 물론 '롤리타'를 가장 먼저 읽어보시고

'서베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도 엄청 재밌으니 이걸 먼저 읽어보시는게 정신건강(?)에는 좋을 것 같긴 합니다만

깜짝 놀랄만한 특이하고 재밌는 책을 찾고 계신다면 이 책도 한 번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