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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등장 이전에도 수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텔레비전, 비디오 게임, 데스크탑을 통제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노력들이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와는 별개로,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를 침실로 보내는 것으로의 통제가 가능했었으나,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이제 자녀들이 침실로까지 이 모든 기기들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언급되었듯이 기기는 단순한 도구적 사용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사람의 사고 프로세스를 바꾸는데 영향을 미치는데, 스마트폰은 이 미디어 기술의 총체이자 미디어 기술을 24시간 가까이 둘 수 있도록 발전한 기기이다. 그리고 기기의 발전과 함께 생겨난 각종 미디어 앱의 발전은 빅테크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은 더 넓은 범위의 사용자에게 더욱 강력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저자는 기존의 아동기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대재편을 맞이하게 되었는지와 스마트폰 기반 아동 중 여자아이들이 소셜 미디어의 끝없는 비교와 평판 공격의 용이함에 큰 타격을 입는단 것과, 지속적으로 하락한 남성적 가치와 함께 남자아이들이 화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단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둘의 기반에는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부모의 과잉보호 정신이 자리잡고 있으며, 부모는 자녀가 더이상 약간의 위험이라도 감수하기를 원하지 않지만 바로 그 사고가 아이들에게는 위험임을 언급한다.

글의 후반부에는 이에 대한 정부, 테크기업, 부모, 교육기관, 지역사회의 노력을 촉구하는 글이 쓰여졌는데 사실 이 부분은 초중반부의 분석에 비해 다소 아쉬움이 있다. 실제로 끝없는 이익 경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테크 기업, 더 빠르고 널리 퍼지는 아동에 대한 위협 뉴스, 부모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스마트폰의 중독성은 그의 주장처럼 아이들을 자유롭게 뛰놀게 하고 화면을 제어한다는 것에 상당한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마치 오래전 유해만화와 비디오 게임의 유해성을 설파하는 말들처럼.

이 문제점들 중에선 어른들조차 스마트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최근 스마트폰의 아이들에 대한 위험성은 어느정도 사회적 합의가 되어있으며 이를 제어하기 위한 정부권력의 접근이 어느정도 가시화를 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이 더 빠르고 더 넓게 연결한 우리 사회가 더이상 깊은 연결을 추구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난 사회는 아이들에 대한 접근과 다르게 복고적 회귀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와 관련된 부분을 다음 책에서 쓰고자 한다는 점은 하이트의 다음 책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전, 하이트의 '행복의 가설'을 읽을 때의 나는 낡은 옛 교훈이란 것을 거부하는 듯한 사람이었는데, 오늘날 각종 화면과 알림, 알고리즘에 주의를 빼앗기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 이제는 영적 수행에 대한 필요를 느끼고 있단 점에서 많은 변화를 체감한다.

우리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5초만에 세상 누구에게도 분노하되 용서는 평생 이뤄지지 않도록 할 수 있고, 이 모든 것들은 트래픽을 늘려 광고를 얻기 위한 목적이며, 그러한 구조를 모두가 인지함에도 그만두지 못한다는 것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집단적 차원의 행동이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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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문단에서 강한 당사자성을 느낀 문단들이 꽤나 있었는데, 인터넷 커뮤니티를 오래한 입장에서는 폐부를 찌르는 표현들로 가득하다. 이 모든 자각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과의 투쟁을 하고 있단 점에서는 특히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