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은 단테의 저승 유람기인데


그 유람기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행위는 '보다' 보다는 '쓰다' 여야 합니다


이건 일반적인 유람기가 아니고


언젠가는 저승을 모두가 가지만 아무도 유람기를 쓸 수가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읽는 신곡이기 때문에요 



말 장난 같긴 하지만 행위는 의도에 의하고 그것에 의해 구분하니 포지션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 특별한 유람기를 쓰는 입장에선


보다라는 언어를 확장 시키는 순간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




O voi che sanz’ alcuna pena siete,

e non so io perché, nel mondo gramo»,

diss’ elli a noi, «guardate e attendete



그런 맥락에서 이 문장의 마지막 구절을 자세히 보면 


see(Vedere)가 아니라 watch에 해당하는 guardare의 명령형을 사용하고


그리고 기다려라는 말까지 더해지면서 see에서 의미가 확장이 되고 있는 상황의 직관적인 심상을 그리는 시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원래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의 영향을 받아서

영어에서 구분하는 see/watch 보다 인식의 목적과 방식을 더 분명히 구분하여 후자일 수록 의식적인 행위로 생각하고


더 의도를 갖고 능동적으로 본다는 걸 강조하고 보는 대상도 영어보다 약간은 덜 가리는 느낌이라고 하네요


말하자면 보는 주관이 중요하지 미리 대상에 의해서 see/watch의 용례가 정해지는 정도가 조금은 덜 하다는 뜻(물론 없진 않음)


그러니 능동을 명령하는 것이 그 자체로도 사알짝 모순적인 느낌이 있음 (미리 공유하는 의무에 대한 상기의 맥락이면 모순이 없지만) 

더구나 지옥의 죄수가 천국갈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는 것도 상당히 대비적인 느낌이 들어 그 단어의 사용을 더 극적으로 만들고


왓노라 보앗노라 이겻노라 같은 제일 유명한 v삼행시 생각하면 보라-나의 위대함의 증거 같은 그리스-로마적 영웅들의 클리셰의 역으로도 보입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전혀 그 단어 자체가 그런 모순의 맥락을 갖진 않고 그냥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약속에 불과한데


이 문장과 전후의 맥락이 그런 뉘앙스를 끄집어내고 거기서 의미가 발생한다는 말이죠



능동적으로 보라는 건 그렇지 못한 상태에 대한 인식이 먼저인데 그 인식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관찰이 가능할 때까지 attendete(내 말을 기다리란 중의적인 뜻이 단어 자체에 있음)


하라는 요구까지 뒤에 붙으니


 그냥 보는 순간이나 미리 결정하고 판단을 끝내지 말고 기다리란 요구의 의미가 더 짙어집니다


언제까지? 이성이 역할을 할 때까지


그리고 이 뒤에 바로 어제 분석을 올린 마스터 아다모의 죄의 고백에  "세례자 요한의 유대의 봉인" 의 상태에 대한 말이 있습니다




guardate 란 단어 자체에 모순과 확장의 기억과 복선이 생겼다는 것이고 이 말은 단순히 보라가 아니라 '숙고를 요구하는 보라' 가 생겼다는 거죠



그리고 신곡에서 이 명령어는 저걸 시작으로 단 4번만 사용됐고 보다라는 동사가 여러 형태로 수백번 사용(직접 검색함) 된 걸 생각하면


꽤 주목이 가는 빈도입니다만



그렇다고 바로 2번째 사용된 문장을 보러 가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사실 제일 먼저 보고 하는 말입니다만 ㅠ)


분명히 그걸 바로 연결해서 할 말이 있고 또 앞으로도 하게 되겠지만 


미리 가는 것은 편견일 수 있고 guardate란 단어 자체가 별이 되는건 단테의 의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는 



신곡의 처음서 


"E quindi uscimmo a riveder le stelle"


그리고 우리는 다시 별을 보러 나갔다고 


지옥 유람을 마치면서 하는 선언까지의



전반적인 서사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합니다


이제까지 꽤 길게 이런저런 신곡 얘기를 며칠 째 주구장창 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또 봐야한다는 말을 하기가 좀 그렇지만



근데 그동안 해왔던 말들에 의해 말을 상당히 줄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ché la diritta via era smarrita.


Ahi quanto a dir qual era è cosa dura

esta selva selvaggia e aspra e forte

che nel pensier rinova la paura!



신곡의 지옥 제 1곡 첫 두 문단인데



어두운 숲 속이라는 심상으로

하 사는거 쉽지 않다 곧은 길이 없어서 


그리고 그 심상은 떠올리기만해도 

무섭게 만드는 거칠고 험하고 강인한 숲인데


그게 뭔지는 참 말하기가 어렵다 


 

라고 이해를 하면 되고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심상이 어떻게 이후에 맥락을 가지느냐라는 관점에서 


 확장의 씨앗들이 될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뭔지 모르겠는 cosa 입니다


앞으로 이게 뭔지 말하니까 잘 들으라는 것이고 

나는 지금부터 cosa 알아보러 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저승에 대한 증언자의 방명록으로 신성에 대한 증명으로의 신곡이란 관점에선


곧은 길은 별을 바라보고 걸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하고 


그게 없어 별이 없는 곳이자 

추즙고 숭한데 지나가니까 코막고 숨참으면서 정신 단디 차리라는 경고가 되겠죠


자 그럼 전자의 입장에서 지옥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굴까요?(후자의 관점에선 아무도 안 중요합니다)

길이 없고 어둡고 험한 곳에서도 별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다 부질없고 좆같은 인생 같은데 

뭔데 쟤들은 우울에 빠져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발버둥치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저 놈들의 cosa에 대해서 궁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말인즉슨



신곡에서 명시적으로 별을 보는 지옥 현지인은 그 그리스 모험가뿐입니다만


그 사람의 역할은 단테에게 너는 별을 보게 될 사람이야라고 일러주기 위해서만 특별할 뿐


사실 지옥의 거의 모든 놈들은 저마다의 cosa를 쫓아 여기에 처박히게 됐고

저마다 쫓은 가슴속의 각자의 태도 각자의 입장에서 보는 남다른 사이트의 별 하나씩 있는 놈들이란 거임


물론 자신의 cosa를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가 될때까지 기다리면서 보고 거기에 맞게 못 살아서 여기 잡혀 온 놈이 대부분입니다만


어쨌든


단테는 저 놈들 보러(이해하려고) 여기 왔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