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왈, "생선 요리도 먹고 싶고 곰발바닥 요리도 먹고 싶지만, 동시에 먹을 수 없다면, 생선 요리를 버리고 곰발바닥 요리를 취하겠다. 삶도 원하고 의도 원하지만, 동시에 가질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 ... 죽음이 싫지만 죽음보다 더 싫은 것이 있으니, 환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맹자, 고자편 上
선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손해를 감수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용기이다. ... 그리스도교 신학은 인간의 현존재에게 두려운 경험들이 있다는 것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려운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그리스도인은 두려움의 서열(ordo timoris)에 대해서 묻는다. ... 두려움을 주는 것은 모든 인간의 실존에서, 그리고 성인들의 삶에서도 실제적인 가능성으로 동반된다. 이렇게 엄청난 두려움은 어떠한 '영웅적 행위'로도 극복될 수 없다. 반면에 이런 두려움은 진정한 모든 영웅주의를 위한 전제이다.
Jesef Pieper, 《그리스도교의 인간상》(Über das christliche Menschenbild), 김형수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p.67ff
전자는 보다시피 맹자의 텍스트이고, 후자는 20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를 이끈 거장 중 하나인 Josef Pieper의 토미즘 해설 텍스트임. 두려움으로부터 초연한 스토아적 영웅상을 까고, 대신 '두려움의 서열'(ordo timoris)에 기반한 토미즘적 '용기(=선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손해를 감수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인데, 맹자 텍스트 떠올라서 재밌더라.
사실 환국 영토 생각하면 이상할것도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