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들어서는 단테의 두가지 입장에 대해서 말하고

지옥을 핑계로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려 했다는 관점을 강조하기 위해

신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선 지옥의 누구도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만

조금 말이 과했던 걸 인정합니다

사실 이 관점에서도 누가 몇 층에 있어야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옥 갔더만 유다가 1층에 있더라고?! 이러면 화자의 신뢰나 신성 둘 중에 하나는 깨지겠죠


당연한 소리를 굳이 하는 이유는

지옥의 끝에

유다 외에 카시우스와 브루투스와 루시페르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위해서 입니다


일단 딱 봐도 아주 이상합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상한 조합입니다



루시퍼는 원래 바빌론 왕의 몰락을 상징하는 존재였고

위대한 예수가 올 것과 유대인들의 노예생활이 끝날 것을 예언했기 때문에 복음의 근본이 된

구약 이사야 서가 기록한 예언에 근거합니다

제 아무리 밝게 빛나더라도 아침이면 자연히 지게 되는 샛별이었고요

그 샛별의 뜻을 그대로 라틴어로 옮긴게 루시페르였으니

지금 신곡에서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영원히 빛나는 별이기도 한 셈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보자면

 그 몰락의 상징이 복사된 바빌론 몰락의 원인은 페르시아라는 제국의 존재입니다

페르시아가 어떻게 생겨 제국이 됐냐면

아마도 모든 세력과 국가들이 얽혀 해가 지고 뜨고 별이 지고 뜨듯이 그렇게 생겼겠지만요

그 탄생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가장 그리스적인 이야기들입니다

어쩌면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장 그리스적으로 할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메디아의 왕이 자신의 왕위를 뺏을거라는 아들에 대한 신탁을 받고 죽이라고 명령하는 그 클리셰에서 시작하지만

이름 없는 목동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름 왕의 신하 하르파고스가 그 아들을 살리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일의 업보로 왕에 의해 자신의 아들이 살해당하고 요리가 되어

그게 뭔지도 모르고 먹게 됩니다

그 클리셰들 속의 아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게 된 게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역시 그리스적인 막장 스토리의 복사로 표현하고 있는 걸 보면 역사라기 보단 아마 순수 창작이지 않았을까 생각은 들지만

또 그래서 그리스 밖으로 떠난 헤로도토스와

지옥으로 떠난 단테가 진하게 겹쳐서 보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하르파고스는 그 아들의 복수를 위해서 수모를 평생 참고 견디다가

때가 왔을때 페르시아의 편에서 메디아를 배신하여 복수를 완료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하르파고스가 왕명을 따르지 않아서 살아남은 아이가 자라서 페르시아를 세우고

 하르파고스의 도움으로 메디아를 멸망시키는 이야기이자

배신의 시작과 결과로 맺어지는 배신의 서사시인 셈이죠


 이야기들만 믿는다면

유대인을 해방한 것은 둘 중 하날겁니다

뭔 말씀께서 그리 된다해서 된 것이거나

죄 없는 아이를 못 죽여서 해버린 배신이거나



그리고 카이사르는 공화정의 배신자죠



루시페르는 거기서 벌을 주고 있는 존재이자 스스로에게 받는 존재


그는 구약에서 아무리 빛나는 존재더라도 자연히 지고 만다는 몰락의 상징이었다가

아마도 영원성,신성의 몰락(망하고 사라짐)이란 이미지가 맘에 안들어 영원성과 신성은 가진 채 자신의 의지에 의해 타락한 결과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간 거니까

몰락의 영원인 셈인데... 이를 지옥의 끝에 가시화 해놓은 것은 신적 서사의 모순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국에는 신성한 빛과 그것을 향한 노래 밖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까요


카이사르를 생각하면

브루투스와 카시아스가 받는 벌의 이유도 배신 그 자체보다는

카이사르의 신격화가 곧 기독교의 영광의 시작이니까


권력으로 관철시키지 못하는 배신이 죄악이라

진 놈이 범인이고 배신자인 셈이죠


패자에 대한 괜한 조롱이 아니라


이 들이 이상하다고 인지하는 순간

더 이상 이상한 조합이 아니란 겁니다


그래서 유다,브루투스,카시아스를 다른 층에 넣어?

이들에 대한 모든게 영원히 얼어붙어 있지 말아야해? 라고 물어보면 전혀 아닙니다

기독교 질서가 만든 지옥의 바닥엔 그들이 마땅히 얼어서 보존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상한 건 그 조합이 아니라 그 예언에 의지해 만든 지옥의 구조와 기독교의 질서 그 자체인 것이죠

지옥은 문자 그대로 승자가 기록한 역사와 정의로 구성되었고

그 세계기에 베르길리우스나 스토티우스 같은 자들이 이성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이고요



필연적으로 유다·브루투스·카시우스,반역의 루시페르가 나란히 있어
 
신성의 배신과 제국의 배신이 겹쳐질때

세속 권력을 기반으로 교황권과 기독교 질서가 강화되고

역으로 제국의 권력의 정통성을 기독교가 신성하게 수식하는 상부상조의 구조가 명백히 드러나고

더 이상 신곡의 지옥은 신성의 설계도가 아니라, 패자와 승자의 권력 관계를 영원으로 고정시킨 정치적 장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설령 신성의 설계도가 제 아무리 꼼꼼했다 한들

지옥의 가장 하층으로 사람을 끌고 갈 만한 절대적인 죄목 같은 것이 있을까요? 아니 있어야 할까요?

적어도 그게 배신은 될 수 없을겁니다

저의 자기애는 모두를 배신자로 부르고 싶어하고

요한도 예수가 자신을 구하러 감옥으로 오리라 믿었다는데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단테가 그렇게 생각했을리 없다고 말입니다

이제 피렌체에서 패배한 망명자 단테의

연옥에 머무는 황제들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진술을 들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