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티우스..

하 이 하찮은..

물론 단테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단테는 스토티우스를 싫어하지 않았을까요?

진솔한 얘기 쓰고 싶어서 지옥갈라 맘 먹은 분인데 말이죠

사실 스토티우스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신곡에서 그런 분위기가 보여서 해 본 말이긴 합니다



베르길리우스가 스토티우스의 작품을 언급하며

그런 니가 천국 가는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물어보는 장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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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 quando tu cantasti le crude armi
de la doppia trestizia di Giocasta»,
disse ’l cantor de’ buccolici carmi,

이제 당신이 이오카스테의 이중적인 슬픔이라는
잔혹한 무기를 노래할 때,"
목가적인 시를 부르는 가수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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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좀 대놓고 꼽주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중비극이란 지칭은 상투성을 표현하는 상투적인 표현입니다

무기를 노래한다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베르길리우스가 황제를 위해 쓴 그 서사시도 그렇게 시작하고요

잔혹하다는 수식어도 뻔하게 강조된 상투성이라는 웃기고자 하는 클래식한 기교가 보이는 표현입니다


심지어 2중비극과 잔혹한 무기의 노래가 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대상에 대한 수식이라

서사시의 클리셰와 비극의 클리셰가 겹쳐지면서 클리셰의 클리셰라는게 이중 비극 이란 말과 함께 박자감 마저 줍니다

 
백미는 그 말을 하는 베르길리우스를 단테가 목가 시인이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라틴 목가시는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느낌 그 자체고

베르길리우스도 스토티우스도 목가시라는 관점에선

그냥 그리스 시인들 따라하는 etc 느낌이 더 낭낭해지거든요



근데 막 자기들끼리 라틴어의 영광이 어쩌고 물고 빨고 이미 다했고

단테도 이성의 상징,마스터 같은 말로 마땅히 로마 제국의 건국공신급 시성에게 필요한 예우는 다 갖춰주긴 했지만


그 마스터께서 천국으로 먼저 출세하는 후배 석 죽이려는 대사에 정박자(쿵쿵짝)로 끼어들어

그를 목가시인이라고 한정해서 부를때

스토티우스는 물론이고 베르길리우스 즉 이성의 상징이자 마스터에 대한 단테의 본심이 드러나는 거죠


그 상투성 마저 로마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의 상투성이야! 하고 집요한 풍자로 애초부터 새로운 서사가 불가능했다고 비웃는 서늘한 냉소가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니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스토티우스가 어떻게 천국에 간거야?

베르길리우스가 쓴 시에서 기독교의 신성성을 수식할 가능성이 발견되어서요

??? 스토티우스는 아무것도 안했고 나태의 지옥은 아직 통과도 안했는데 바로 가요?


그리고 지금 이들이 탐식의 지옥 앞에서 이런 만담을 나누고 있는 걸 문득 깨달을 때

 단테의 범상치 않은 악의가 느껴집니다

아..

베르길리우스가 단테 시대의 후세에까지 이르러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건 그의 작품보다도

 키우던 파리에게 제사 지내 주고 만든 속담입니다

그리고 단테는 지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베르길리우스 외엔 오직 불어터진 아다모만 그렇게 불렀단 말이죠

그리고 탐식의 상징은 그 유명한 바알제붑이고 뜻은 문자 그대로 파리의 마스터입니다


베르길리우스를 파리의 마스터라고 인식할 수 있는 이미지를 그동안 은연중에 만들고

말하자면 물가에서 수종으로 부풀어 올라있는 시체와 파리는 뗄 수 없는데 이미지인데

그런 죽음과 베르길리우스만 마스터라고 부르면서 그가 생전에 세금 내기 싫어서 파리한테 제사 지내 준 일을 상기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쌓아온 빌드업을 탐식의 지옥에서

스토티우스-버질을 라틴어 시인으로 묶어 라틴 서사의 마스터라는 정체성을 최고조로 올려놓고 신랄한 냉소로 떨어뜨려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라틴 서사시의 전통을 통째로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합니다


/Secol si rinova;
torna giustizia e primo tempo umano,
e progenïe scende da ciel nova/

/세기가 새롭게 시작되고,
정의와 최초의 인간 시대가 돌아오며,
새로운 자손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스토티우스가 자신을 천국으로 보내준 베르길리우스의 말이라고 가져온 이 문장은 거의 단테의 순수 창작입니다

직전에 구체적으로 황금에 대한 탐욕을 꾸짖어 놔서 황금의 시대를 갈망한 원문을 가져오면 직접적인 비판의 의도가 드러나기 때문에

원문의 saturina(황금시대)를 의도적으로 누락해 놓았고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의미가 작지만 날카롭게 다릅니다


베르길리우스의 목가시 라틴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시기에 이미 베르길리우스의 아래의 문장이 성모와 예수를 예언한 신성한 표현으로 상투적으로 오래전 부터 사용됐고
그냥 베르길리우스의 기독교적 신성한 문장이라면 아래 문장을 뜻하는 겁니다

/Ultima Cumaei venit iam carminis aetas;

Magnus ab integro saeclorum nascitur ordo;

Iam redit et Virgo, redeunt Saturnia regna/

/쿠마에 예언의 마지막 시대가 왔다.
새로운 세대의 위대한 질서가 다시 태어나리라.
처녀가 다시 오고, 황금시대가 돌아오리라/

그런데 이 문장은 로마에서 대대로 지속적으로 신성한 표현으로 인용되고 곳곳에서 상투적으로 사용했지만

 꼭 신성함에 의했다기보다 그냥 처음 적힐 때 부터 널리 사용되던 상투적인 표현의 재현이었습니다

헤시오도스가 일과날에서 시대를 금속으로 구분하면서 그 중 하나 황금의 시대에 부여한 가치에 기반하고

  필연적인 몰락이 있을 것이다,다시 황금의 시대(이미 지나갔던)가 돌아온다, 평화나 정의같은 미덕(처녀) 이 다시 선다
 
이와 같은 표현은 그리스에서 상투적으로 사용하던 문구들이고

저기서 루시페르가 떠오르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닙니다 애초에 거기서 온 거니까요

지금 신곡에선 지옥 가장 아래에서 하얀 빛의 얼음과 붉은 피를 영원히 뿜어대고 있지만

특별한 목적이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고정하여 가두기 전에도 원래 있던 언어들이란 것입니다


단테는 언어가 만들어질 때 황금의 시대를 정의하던 미덕은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상투적인 신성함만 남은 것에 대해 말하고 있고

  또한 그 상투성이란 습관이 스토티우스를 연옥 중간에서 그냥 관습처럼 천국으로 보내고 있는 것도 지적하는 것입니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꼬박꼬박 마스터라 불러주고, 이탈리아어 시도 대신 써줬지만

이는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상투적인 라틴 문학 전통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대와 사람 그리고 언어로 새 서사를 열겠다는 선언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표면적으로 치른 존경은 라틴문화의 꽃 피렌체에 속한 단테가 내야 하는 세금같은 것이죠

진심의 존경은 베르길리우스의 탈세만큼이나 창의적으로 회피했습니다만


그렇게 지옥에 영원히 머물 수 밖에 없는 파리의 대왕을 두고 말하는 단테의 이야기를 봤고
이제 진짜 사람들의 왕들을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