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게으른 자에게 개미에게서 부지런함의 지혜를 얻을 것을 요구합니다
그 지혜가 무엇인지 탐구해야 나태의 지옥을 성경의 뜻에 따라 진정으로 통과할 수 있기에
그 지혜에 대해 이해하고 설파하는 것이 단테의 의무가 될 것입니다
자연의 딸을 빚는 단테에게 지혜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것이고
감각하고 기억하고 경험으로 축척된 것에서 찾는것입니다
/da l’erba e da li fior, dentr’ a quel seno
posti, ciascun saria di color vinto,
come dal suo maggiore è vinto il meno.
Non avea pur natura ivi dipinto,
ma di soavità di mille odori
vi facea uno incognito e indistinto.
‘Salve, Regina’ in sul verde e ’n su’ fiori
quindi seder cantando anime vidi,
che per la valle non parean di fuori/
/그 가슴속에 놓인 풀과 꽃들에
모두가 그 빛깔에 압도될 것이다.
마치 작은 것이 큰 것에 압도되듯이.
자연은 그저 그곳에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천 가지 향기의 달콤함으로
미지의, 불분명한 향기를 창조했다.
푸른 풀과 꽃들 사이에서 "여왕 만세!"
그러자 나는 계곡에 앉아 노래하는 영혼들을 보았다.
그들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나태의 지옥을 묘사하는 연옥 7곡의 원문과 직역에 가까운 구글 번역입니다
전후의 맥락을 고려하여 자세히 보면
여러가지 색과 빛을 각자 가진 다양한(인공적인 것들을 포함한 자연) 것들을 앞서 보았지만
골짜기라는 품 안에서 놓여진(posti=position) 그것들 각각은
di color vinto 즉 색에의 정복으로 완료되었고
Non avea pur natura ivi dipinto 그 압도는 자연만이 만든게 아니다 즉 자연이 그린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 대한 가치평가를 결정하는 의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비교하고 우열을 느끼거나 그것은 인간의 입장을 기반한 인식이며
그러니 uno는 논리적으로는 무입장이 아니라 결국은 수렴된 하나의 입장으로 받아들이기 쉬워집니다
또한 그 하나의 향기는 수천의 향기의 조화가 아니라 작은 것이 큰 것에 정복 당하듯이 합쳐진 것이고요
즉
꽃들의 빛과 색의 승리가 정복이 되는 것은 자연의 의지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각자의 향기의 달콤함이라는 효과가
uno incognito e indistinto
알 수 없고 구별할 수 없는 uno로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이 uno의 창조가 자연이 아니라 신에 의한 것이다를 신을 언급하지 않고 우회적 암시를 하고 있지만
정복이란 인위적인 개념도 그걸 완료한 마지막 하나의 입장으로 신성에 포괄해놓습니다
euphemism 은 17세기부터 완곡어법이란 수사학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장인 헤파이스토스와 광휘의 여신 아글라이아 사이에 딸이자 찬양과 환호 승리의 함성을 상징하는 유페메에서 유래한 말이고
기술(Ars)과 광휘(자연적 아름다움)의 결합에서 '찬양과 환호'를 상징하는 유페메가 태어났다는 것은
그 조합의 의도를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여 아름다움을 창조할때 진정한 찬사가 따를 것이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의미로 이해한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칭찬이란 조화를 위한 대상의 이해가 필요해 얻는 불완전한 발견일 것입니다
앞서 지옥 11곡에서 단테는 본인의 창작물을 신의 손녀(신-자연-내 글)라고 칭찬했는데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추구를 따라 신곡이 자연의 딸이자 신의 손녀가 되려한다는 것이지 그게 미리 정해진 본질은 아닙니다
또 그 말은 필요에 의해 베르길리우스의 입을 빌어 말하는 즉 발화의 거리를 벌리고 권위를 차용하는 수사적 기교를 통하고 있습니다
7곡에서 역시 신으로부터 자연을 거쳐 일어나는 창조라는 같은 주제의 내용을 다루고 비슷한 수사적 기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 비슷한 '감각'에서 얻는 차이라는 '경험'이 단테의 의도로 드러납니다
그 의도는
uno incognito e indistinto 의 탄생은 자연을 imitatur 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딸이 아니며 자신이 추구하는 창작이 아님을 고지하고
그 긴장에서 신성의 소극적 반역자들을 떠오르게 만들고 단테의 뜻의 방향성을 자세히 볼 것을 요구하는데 있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진정한 찬사'는 의도를 감추고 불완전한 이해에서 나오는 상대를 도취시키게 하는 수사학적 기교가 아닙니다
이해할 필요없이 하나로 정복된 향기에 도취되어 감각적 충만에 빠지는 것은 단테가 지혜를 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하나의 향기와 색을 감각하고 기억하고 경험으로 축척하는것이 지혜입니다
그렇게 단테는 나태라는 죄앞에서 인간이 배워야하는 자연에 대해서 논하면서
uno incognito e indistinto를 만들었습니다만
지금 분석해 본 이 말의 함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자연스럽게 개별적 성찰을 차단하고 권력의 언어로 고립됩니다
잠언에 언급된 개미, 그들의 사회가 인간의 자아는 합리적으로 느낄 수 없는 수준의 유기성을 갖고 있는 점을 떠올리게 되고
uno incognito e indistinto 는 이유를 묻지 말고 따르고 도달해야할 유기성의 수준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알 필요없는 유기성이 지상에서 나태라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되는 미덕인 것이지요
이런 이해에 대한 요구를 단테는 또 한 번에 무너뜨립니다
현세에서 인간의 각 개체가 따라야 되는 것은 봉건제고 그 질서의 정점에는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은 무엇을 왜 원하고 주장할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게 만드는 uno incognito e indistinto 가
아주 맘에 드는 통치 이데올로기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단테는 유기성을 미덕으로 요구하는 제단을 만들고 거기에 왕을 나태의 죄로 끌고 오고
그 왕들을 두고 독자들에게 두번째 guardate 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잠언이 언급한 개미는 개미라는 본질이 아니라 그들의 특성이고
개미에겐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다는 특성도 포함합니다
또 다른 지혜로운 자연으로 지목된 메뚜기에 대해서도 그들은 왕이 없다고 잠언은 말합니다
uno incognito e indistinto는 이해할 수 없고 궁금할 필요가 없는 유기성이고 그 유기성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오직 위라는 방향만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의 꼭대기에 있는 왕이 유기성이라는 미덕을 잊고 잡혀와 있으니
무조건 위로 향하는 추종에서 미덕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깨달음이 거기에 있습니다
단테의 나태는 그냥 물리적 게으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추종과 같은 지적 태만과 그것을 부추기는 이데올로기도 지칭합니다
/
말하고자 한 내용이
루시퍼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고 머리속에서만 정리하다보니
나태의 지옥이 탐식의 지옥 뒤에 있던 것으로 순간 착각했습니다
지난 글은 이미 나태의 지옥을 지나온 순간에 대한 것이 맞습니다
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