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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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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하찮게 여겨진다면 이 질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식은 어디까지고 하찮아질 수 있다.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지식 이외에도 실제 실험 중에 확인했듯 '2025년 9월 5일 오전 7시 29분 대한민국에서 120ml의 물이 99.6도에서 끓는다'는 것을 지식이라고 할 수 있고, 수많은 개별적이거나 일회성인 지식이 쌓일 정당성은 늘 유효하다. 사실fact은 그보다도 더 난잡하다.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새로운 동물의 상상 가능성이 매우 한정되었듯 기존에 알고 있던 것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나아가는 지식은 대체로 사실을 따라잡지 못했고, 온갖 사실이 빠르고 다양하게 누적되는 상황 속에서 이 사실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지식'은 무용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듯 보인다. 가장 단순하게 지식의 계층을 설명하는 방식인 DIKW 계층구조는 그래서 개별적인 관측이 담긴 데이터data, 이 관측에서 이끌어내는 일관성 있는 정보information, 그 정보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지식knowledge, 마지막으로 그런 연결관계의 의미를 이해하는 지혜wisdom으로 가장 막연한 지식부터 가장 직관적인 지식까지의 도식을 그려낸다. 물론, 여기에서의 관건은 과연 이 큰 틀에서의 이해가 얼마나 실제로 유용하거나 들어맞느냐에 있지만 말이다. 사실은 대체로 이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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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잡한 지식>은 제목 그대로 이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폭주하는 사실의 물결과 이에 대응하는 시대별 방식의 변천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연역적 지식이 신대륙과 망원경/현미경 속 새로운 사실들과 마주하던 근세 시절, 사실은 제대로 된 분류와 통찰 없이 마구잡이로 쌓였다. 기존 이론은 이 사실들을 전혀 설명해주지 못했고, 정직하고 성실한 학자의 미덕은 미래의 학자들이 언젠가 이 사실을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 하에 다소 부정확하고 무더기로, 사실의 산을 쌓아 올리는 것이었다. 사실은 단순한 관측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첨단 기교를 요구했으며, 이런 특성으로 인해 안 그래도 난잡한 사실을 믿지 못하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이것이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에게 있어 정복해야 할 산이자 지식의 점증적 증가 및 수렴을 믿게 해줬다. 이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고, 한번 확실하게 검증된 지식은 결코 바뀌지 않은 채 문명의 단단한 기틀이 되어줄 것이다. 디드로의 <백과전서>는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소 난잡하게나마 포괄하겠다는 야심이었으며, 박물관 역시 서커스와 비슷하게 사람들을 매력적인 사실로 유혹하며 사람들에게 지식을 알1리고자 했다.



빅토리아 시대에 전체적인 양상은 비슷했지만 그 정도가 달랐다. 실제 사실이 난잡하고 두서없다는 것은 이미 인정되는 상황에서, 합리성이 짜둔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깊고 자세하게 사실을 캐내 매우 밀도 높고 풍요로운 정보를 그 틀 안에 가득 담은 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이는 학습자가 사실의 혼란 속에서 길을 잃지도, 이론의 경직된 틀 속에서 안주하지도 않게끔 보조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사람들의 보편적인 지식 수준을 높히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박물관은 대학처럼 사람들에게 지식을 알2리는 곳으로서 기능하고자 했으며, 수많은 미술 작품, 생물 표본, 화석과 유물이 두서없고 빽빽하게 나열되어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이 그 정보의 해일 속에서 자연의 민낯을 이해하고 그 특성으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 지혜는 반드시 모든 사실을 확실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린네의 생물 체계 분류법이나 판례집이 그랬듯, 지혜는 약간의 불일치를 무시한 채 전체 틀 안에서 유용하게 기능하는 인위적인 선험적 체계였다. 그걸 잊어버리지 않게끔 반례가 늘 튀어나오지만, 그 틀 없이는 아무런 유용한 지식도 얻지 못하는 휴리스틱.



이후 이것은 서서히 요약의 시대에 접어든다. 혼란스러울 정도의 과잉은 더 이상 숙련된 개인조차 제대로 대하기 어려운 규모가 되었으며, 심지어 그것이 각 분야마다 있었다. 다방면의 지식에 두루 능숙한 교양 있는 개인은 전문화라는 새로운 방향성 앞에서 무색해졌고, 대신 이 산더미 같은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하나의 대표로 요약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시대를 대표하는 특정한 사진, 집단을 대표하는 하나의 이미지, 그 밖의 어떤 방식으로든 더 이상 혼란을 가중화하는 대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고정관념이 우선시되었다. 중산층의 삶, 국가의 국민성 등과 같은 국가적인 요약이 유행이었고, 미술관과 박물관은 일반인에게 보여줄 소수의 핵심 요약 전시물과 그 외에 전문가들이 다루고 지식을 익혀야 할 훨씬 수많은 소장품들로 양분되었다. 여기에서 이미지, 즉 그림과 사진은 핵심 역할을 했다. 노먼 록웰의 그림은 미국 중산층의 표준적인 삶을, 버섯 구름 사진은 원자폭탄과 제2차 세계대전과 모든 폭력을 상징했으며, 이러한 이미지를 통하지 않은 채 직접적으로 세상의 지식과 연결된다는 것은 허황된 꿈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요약의 시대는 70년대에 끝난다.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가 유발한 전문가의 신뢰성 문제는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꽃을 피웠다. 대표되는 이미지가 실제를 얼마나 대변할 능력이 있는지를 되묻고, 전문가가 이해관계로부터 얼마나 초연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지를 되물으며, 통일된 이미지가 산산조각나는 동시에 통제되지 않은 난잡하고 화려한 이미지가 새로운 지식으로서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 더 이상 검열은 동작하지 않았고, 무엇이 올바르게 세상을 표상하는 이미지인지에 대한 지침 또한 통하지 않을뿐더러 각 이미지가 표상하는 영역이 너무나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 뒤의 이야기는 대체로 정치적인 영역에 가까울 정도로 검열, 문화 전쟁, 포스트트루스 등의 논쟁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익숙한 이야기니 생략한다. (<난잡한>에서도 추천하듯 <의혹을 팝니다>가 이 주제와 시기에 대해서는 훨씬 더 잘 다루고 있다) 정치적 함의를 제외하고 보면 <난잡한>은 지식의 역사를 마구잡이식의 사실 축적, 선험적인 휴리스틱, 단호한 요약에서 다시 서서히 고삐가 풀리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고, 이 과정에서 이미지는 근세 시절이나 현대에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긴 설명문보다는 단 한 순간의 모습이 진실을 드러내준다고 믿는 우리의 경향은 절묘하게 촬영자의 뜻을 보여주는 사진 한 장에 납득하곤 한다.



흔한 얘기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경향성은 20년대에 AI 기술이 고삐 풀린듯 접근성이 낮아지며 중대한 문제를 낳고 있다. '딥페이크'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사칭 사기부터 중고 거래 같은 소액 사기까지 온갖 영역에서 위조된 사진과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으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IT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나 속아넘어갈 정도로 어색한 구석이 많았던 이미지 생성 모델은 이제는 오히려 사람이 포토샵을 붙잡고 제작하는 컴퓨터 비전 변형 이미지보다 더 다양하게 이미지를 제작해주고 있다. (이따금 한 이미지가 뒤에서 본 것처럼 변형되거나 설계도면 이미지를 바탕으로 3D CAD를 완성도 높게 제작해주는 걸 볼 때면, 이 모델이 이미지보다는 영상 생성 후 프레임을 출력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위조의 방지턱은 나날이 낮아지고 있으며, 그렇다고 다시 글로 돌아간다고 해봤자 이미지보다 오히려-다소 비의도적으로-위조된 글이 널린 것이 현실이다. 



사실, 이쪽은 LLM이 새로운 전문가로서 대두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난잡한>의 다른 문제와 얽혀 있기도 하다. 전문가가 특정 이익 집단을 위해 일한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는 시대라면, LLM 내에 상업적 학습이 섞여 들어가 있는 것을 과연 어떻게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스템 프롬프트 유출본들을 보다보면 사실 프롬프트에 한 줄 정도씩만 추가해줘도 지금도 광고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테다. 그러니 상황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새롭게 무작위적으로 생성되는 지식의 대륙이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근세 유럽으로 되돌아간 것이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그 대륙은 이미 식민제국의 지배에 들어가 있다. 미래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