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어바흐는 신곡이 사용한 figura라는 개념을 가지고 그것이 예표라고 규정하고 헛소리를 이어나갑니다만
단테는 그 단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명징하게 의도를 드러냅니다
/E ’l duca disse a me: «Più non si desta
di qua dal suon de l’angelica tromba,
quando verrà la nimica podesta:
ciascun rivederà la trista tomba,
ripiglierà sua carne e sua figura,
udirà quel ch’in etterno rimbomba/
/그리고 스승은 내게 말했다. '더 이상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천사의 나팔 소리가 울리기 전까지는,
적대적인 권능(최후의 심판)이 올 때까지는.
각자는 비참한 무덤을 다시 보게 될 것이며,
자신의 살과 형체를 다시 취하고,
영원히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탐식의 지옥 앞에서 죄인들을 두고 베르길리우스가 고하는 내용이고
여기서 figura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는데
아우어바흐는 여기서 실현될 예언이 피구라로 드러난다고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figua는 '고정된 페르소나'란 뜻이고
저 죄인들의 피구라는 죄인으로 페르소나가 고정이 끝났지만
최후의 심판날이라는 언어의 규정상 그 집행의 순간에 페르소나가 더 명확해진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모든 죄인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까지 죄는 고정되어 보관이 되어있고
단테의 수동적 순례자란 피구라는 그 사실을 절대수용하기 때문에 지옥에 대한 증언이란 발언권을 얻고
피구라를 잃었다는 지옥의 죄인들이 여전히 촛불을 흔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두번째 피구라가 사용된 순간
아우어바흐가 단테의 피구라가 figura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왜 그 개념을 그렇게 썼는지가 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그 의도에 따라 처음 말한 예표로서의 피구라가 아이러니에 빠집니다
/Sempre a quel ver c’ha faccia di menzogna
de’ l’uom chiuder le labbra fin ch’el puote,
però che sanza colpa fa vergogna;
/
/늘, 거짓의 얼굴을 한 진실에 대해서는
사람은 가능한 한 입을 다물어야 한다,
죄 없이도 부끄러움을 자아내기 때문이니;/
/ma qui tacer nol posso; e per le note
di questa comedìa, lettor, ti giuro,
s’elle non sien di lunga grazia vòte,
ch’i’ vidi per quell’ aere grosso e scuro
venir notando una figura in suso,
maravigliosa ad ogne cor sicuro/
/그러나 여기서 침묵할 수는 없다; 독자여, 이 코메디아의 운율에 대고 맹세하건대,
이 시가 오랜 은총으로 헛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짙고 어두운 공기를 헤치고 위로 헤엄쳐 올라오는,
어떤 확고한 마음에도 경이로운 한 형체를 내가 보았음을./
위 문장은 행위만 보는게 아니라 생각을 들여다 보는 사람을 조심해야한다는 말 뒤에 덧붙혀진
다소 철학적인 내용입니다만 바로 뒤에 단테가 본 것(figura)에 대한 증언의 신빙성을 수식하는 문구가 될 수도 있고
허구를 창작하는 것의 부끄러움을 말하는 대사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로 이해한 아우어바흐에게 figura가 구약과 신약간의 관계를 신곡까지 확장하여 신성을 증명하는 예표가 된 것이지요
하지만 게리온은 그리스 신화속의 존재고 성경이 예언한바 없고 신곡속에서도 예언으로 드러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름에 담긴 목동이란 예언적 본질을 깡그리 무시한 채 그냥 신곡에선 탈것으로 한 번 쓰고 버려버리는 그야말로 예표라는 전제와 완전히 모순이지요
그 뿐 아니라 이 문장들엔 전자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섭텍스트의 맥락이 있습니다
우선 그 전에 단테는 자신의 코메디아의 구조에 대고 자신이 뭔가 봤다고 맹세합니다(신성에 대고 말한다 뿐이지 지옥과 천국은 애초에 허구의 대칭입니다)
그리고 단테가 본 것은 사기의 상징이자 새의 몸통을 하고 사람의 얼굴을 한 게리온입니다만 말했듯이 그냥 목동입니다
지옥의 왕 하데스의 목동에게 소를 도둑 맞았단 소식을 듣고 소도둑 헤라클레스를 쫓다 죽은 목동이고 전혀 사기의 맥락이고 뭐고 죄가 없습니다
신곡에서는 오직 게리온의 외모가 풍기는 뉘앙스로만 그를 사기의 상징으로 칭할 뿐입니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단테가 피구라를 고정한거죠
말하자면 단테가 창조한 코메디아의 구조처럼 미리 목동으로 만들어져 알려진 이름일 뿐 심지어 일전의 그리스 신화속 무능한 목동의 피구라를 그냥 무시하고
사람 얼굴을 한 맹금류같은 사기꾼의 피구라를 맥락없이 준 것 뿐입니다
게다가 단테의 게리온에 대한 반응은 그저 공포에 떨고 기다리는 수동적인 모습이고 베르길리우스가 게리온을 통제하여 단테도 실어 나르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는 단테가 스스로를 아름답다는 이유로 제우스에게 납치당하는 트로이인 가니메데스에 빙의해 꿈 속에서 독수리에 납치당하고
그가 자는 동안 실제로도 그를 옮기는 베르길리우스의 장면과 심상이 이어집니다
가니메데스는 베르길리우스가 황제를 위해 쓴 서사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로마의 정체성에 존재하지 않는 트로이를 녹여 입히기 위해서 가니메데스의 납치를 활용합니다
그 납치가 가니메데스를 불멸로 만들고 신들의 술잔시종으로 이어진 걸 질투한다는 이유로 유노가 트로이를 증오하고(다른 이유도 있습니다만)
아이에나스의 서사 속에서 로마의 정체성이 라틴+트로이로 완료된 시점에서
로마를 저주하는 유노의 화를 푸는 조건으로 트로이인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버리고 완전히 라틴문화에 동화될 것을 약속하게 됩니다
이 창작이야 말로 사기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고 단테가 게리온을 맥락없이 사기의 상징으로 만든 창작을 뭐나 되는 양 figura라고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말하자면 게리온의 겉모습, 마스터라고 불리우는 베르길리우스, 그를 마스터로 부르고 따르며 지옥을 통과하는 단테라는 각각의 피구라는 신성에 어긋남이 없는데
그들이 얽히고 또 심상이 겹치면서 그 피구라의 모순과 거짓됨이 드러나는 것이죠
거기에 숨은 사기를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테는 목적을 갖고 지옥으로 떠났습니다
이는 데메테르 밀교의 도움을 받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옥을 다녀간 헤라클레스와 같지만
단테의 목적은 남의 심부름이라기 보단
데메테르나 헤파이스토스와 결을 같이 합니다
자연의 딸을 빚고 싶은 단테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도록 구속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하데스에게 딸을 뺏긴 데메테르이자 지옥으로 납치 구금된 페르세포네와 비슷한 입장인 것이지요
단테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옥에 왔습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신들이 인간을 시험하고 규율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이듯
단테의 코메디아 속 지옥·연옥·천국도 사실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고안된 인공 장치, 곧 권력의 기계라는 것을 보이면서
왜 지상에서 그가 딸을 빚을 수 없었는지 밝히고
판도라가 그러했듯이 그걸 열 수 밖에 없는 실존적인 인간인 단테 자신을 그려냅니다
표면적으로 단테의 피구라는 베아트리체라는 서사적 동기만을 쫓고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수동적으로 천국에 도달하는 순례자이자 그저 보고 정해진 순리에 따르는 존재지만
그의 실존적 목적은 쓰기를 통해서 신학적,교리적 틀로 덮여 있던 인간을 다시 상자를 열어젖히는 존재로 회복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옥 여행은 기독교적 구0원의 서사라기보단, 고대 신화적 모티프를 재가공하여 자기만의 창조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과정이자
신성한 약속을 배신하고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존재 판도라의 미메시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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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많은 분석을 바탕으로 결론에 도달하고 싶었지만
단테 하나 제대로 마무리하는것도 버겁네용
걍 나태의 지옥 갈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었네요 신곡 해석이 되게 재미있는데 나중에라도 길게 써주신다면 좋겠네요!! 다른 글들도 기대하고 있을께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