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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학을 읽다 보면 몰리에르라는 이름을 접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에 훌륭한 작가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들이 몰리에르의 작품을 인용하는 것을 인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입지가 남다르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언젠가는 그의 작품을 운명적으로 읽을 것 같았고, 그게 지금이었다. 읽고 나니 확실히 비범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리에르는 캐릭터를 정말 잘 만드는 것 같다. 읽으면서 암에 걸릴 듯 답답한 작자들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교활한 작자들도, 이러한 사람들 사이에 치이는 불쌍한 사람들도, 전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풍겼다. 해설을 읽고 나니 몰리에르의 대담함에 경의를 품게 됐다. 몰리에르는 단순히 윤리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당대에 실존하던 '기독교 꼰대들'을 겨냥하고 작품을 썼다. 그만큼 적을 많이 만들고 골치를 앓았지만, 영원히 남을 위선자 타르튀프를 창조했고 그와 함께 불멸을 누리게 됐으니 몰리에르는 세상과 싸워서 승리를 거둔 셈이다.
「타르튀프」의 본문도 아니고 서문에서부터 몰리에르의 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만일 희극의 역할이 인간의 악덕을 교화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거기서 벗어나는 특권을 누리는 인간들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을 나무라는 일에 있어서 그들의 결점을 그려 내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 사람들은 비난을 쉽게 감내하지만 조롱에는 그러지 못한다. 못된 사람이 될지언정 결코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코미디를 예술이라기보다는 싸구려 문화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러나 몰리에르의 코미디는 웃음을 유발하지만 진지하다. 그 웃음을 자아내는 대상이 사회에 만연한, 어쩌면 지금도 독자의 곁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몰리에르의 코미디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단지 자신의 추한 몰골이 보이는 것이 고까워서 몰리에르를 적대시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광학의 법칙은 공평하게 적용된다. 작품으로 세상을 투영하는 작가로서의 본분을 몰리에르는 유감 없이 수행해냈다.
그렇다면 몰리에르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겨냥했는가? 앞서 말했듯이 '기독교 꼰대들'이다. 좀 더 복잡하게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의 조류에 권력을 뺏기지 않으려 생활풍속을 엄격히 통제하려 든 위선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그저 하느님의 계율에 따르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한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하느님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세상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것일 뿐이다. 하느님은 구실일 뿐이다. 타르튀프가 본성을 드러내며 하는 말은 소름이 끼친다. "제 사랑을 가로막는 것이 하느님뿐이라면 그런 장애물을 치우는 것쯤이야 제겐 일도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 쓰실 필요는 없어요. 저는 양심의 가책을 없애는 기술을 알고 있답니다. 사실 하느님이 어떤 종류의 쾌락을 금하고 계시기는 하죠. 하지만 하느님과도 타협하는 수가 있어요. 필요에 따라 양심의 끈을 느슨하게 하고 악행을 의도의 순수성으로 수정하는 기술이 있답니다." 즉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의도가 좋으면 좋은 일을 하려던 것이라고 발뺌할 수 있으니, 의도를 편의에 따라 수정하는 악덕한 기술이 위선자들의 무기인 셈이다. 목표는 부와 권력이지만, 음험한 속내가 드러나려 할 때는 성경의 구절을 어떻게든 끌어오면 되니, 참으로 속이 편한 장사다!
하지만 몰리에르는 이 위선자들만 겨냥하지 않는다. 사실 위선자와 정말로 선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타인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행실이나 바람직하게 다잡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 선한 사람이다. 이를 분간하지 못하고 위선자에게 기대어 돈도 마음도 다 바치는 사람에게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괜히 '호구'라는 말이 비난으로 쓰이겠는가. 실제로 「타르튀프」에서 작중에서 가장 화를 크게 돋우는 존재는 오르공이다. 타르튀프야 초장에서부터 이미 위선자라는 설정이 드러나기 때문에 개의치 않지만, 자신의 마음이 평안하려고 딸을 타르튀프에게 바칠 생각을 하는 오르공을 보면서 피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동 쥐앙」에서 대놓고 여러 다리를 걸치는 동 쥐앙에게 홀리는 여자들도 마찬가지고, 은혜를 한 번 입었다고 복수를 무기한 유예하는 동 카를로스는 짜증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세상의 위선을 타파하겠다면서 셀리멘에게는 유독 인내심이 강한 「인간 혐오자」의 알세스트는 호구의 정점이다.
그리고 몰리에르의 작품에서 위선자들이 마냥 망가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망가지더라도 끝까지 무언가를 보여준다. 타르튀프는 국왕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허무하게 당한 감은 있지만 끝까지 오르공을 농락했다. 고백컨대 나는 「동 쥐앙」에서 동 쥐앙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밝힐 때 큰 매력을 느꼈다. "지조를 지킨다는 허명에 우쭐해서는 영원히 한 여인에 대한 사랑에 파묻힌 채 젊어서부터 우리의 눈길을 잡아끄는 그 아름다운 여인들을 아예 외면하라니, 그 무슨 시시한 짓거리람! 지조야 바보 같은 놈들한테나 좋은 거지.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누구든 우리를 매료시킬 자격이 있어." 물론 동 쥐앙은 절대 옹호할 수 없는 부도덕한 인물이다. 내가 인용한 대사도 윤리적으로 보면 매우 저질스럽다. 하지만 오히려 시커먼 속내를 제대로 드러내니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됐음에도 지조에 묶여서 대놓고 갈아타지는 못하고 뒤에서 부정한 수단을 강구하는 것도 큰 위선이 아닌가. 차라리 속 시원하게 자유연애 사상을 주장하며 대범하게 행동하면 나을 지도 모른다. 물론 동 쥐앙은 이렇게 말해놓고 은밀한 수단을 사용했기에 비판을 피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으로 「인간 혐오자」의 알세스트는 분명 사회부적응자지만 한편으로 작품 속의 세태를 보면 그가 적응하지 못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그런 싸구려 존경은 결코 바라지 않을 게야. 온갖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받는다는 걸 알게 되면 아무리 영광스러운 찬사를 받아도 별 가치가 없는 게지. 무얼 근거로 우리를 존경하든 간에, 모두를 존경한다는 건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다는 얘기야." 이 말에 뼈가 있다. 입에 발린 아부들은 사람을 그 사람으로 온전히 보지 않고 수단으로 보며 꺼낸 말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공허한 말을 교환하지 않으면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 물론 알세스트는 심각한 정도로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데다 셀리멘이라는 최악의 위선자에게만 예외를 두고 있으니 그를 변호하기는 정말 어렵다. 하지만 '위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알세스트를 이렇게 만든 세상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종합해 보면, 결국 위선자들은 악한 존재지만 나름대로의 의의를 가지는 것 같다. 그들은 반면교사이자 나도 모르는 새에 저지르는 문화적 위선을 깨닫게 하는 경종인 셈이다.
사회에서 위선을 뿌리뽑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위선을 저지르는 것은 불가피하다. 위선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되려고 해도 알세스트처럼 강력한 감정에 휩싸이면 자기도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위선자로 변모하고 말 것이다. 세계 자체가 거대한 위선자다. 이 안에서 위선자가 되는 것을 막연히 비난하기도 참 어렵다. 하지만 몰리에르의 작품 속 인물처럼 우스꽝스러워지지 않으려면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위선을 파악한 사람에게 자신이 타르튀프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참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위선자에게 대놓고 먹이를 주는 호구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도린에게 오르공이 저혈압 치료제 역할을 해주었듯이, 위선자에게 휘둘리는 것도 위선 못지 않은 추태다. 그리고 위선자들에게 혐오를 느끼는 동시에 위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안목도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위선자라고 비난받는 사람들은 너무 티나게 위선을 부려서 문제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솔직해지면 간단히 풀릴 문제에 우리가 체면과 관습을 생각하다가 너무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위선자들이 증식할 발판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것으로 몰리에르의 작품을 통해 위선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았다. 사실 위선이야 문학에서 흔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깊이 생각한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결코 어렵지 않은 작품들이었는데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되어 나 자신도 놀랐다. 좋은 작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열린책들에서 낸 다른 선집인 「수전노」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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