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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SF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쟈마친의 <우리들> 방금 다 읽음


역시 20세기 초반 작품이라 지금 시각으로 봤을 때 막 새롭거나 그런 건 없었음


기본적으로 전체주의에 사람들이 번호로 불리고 사생활이라는 게 없고 이성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고


모든 교제와 교미는 통제되고 절대적인 일부일처 관계는 없고 아기들도 인공적으로 생산되며


합리적이고 자유 대신 행복과 안전을 지향하고 자연 외부와는 말 그대로 벽을 쌓고 하나의 권력과 체제 아래에서 순응하는 세계관



거기서 우주선 기술자인 주인공이(쟈마친이 조선업 기술자라 그렇게 설정한듯) 어떤 여자와 만나게 되는데


그 여자는 이 체제에 저항하는 비밀조직원이었고, 국가규모 산업인 우주선 산업(인쩨그랄)을 감독하는 주인공에게 접근해 꼬드김


주인공은 그 전까지 매우 충실한 체제의 숭배자였기 때문에 여자의 유혹에 거부하면서도 그 여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점점 넘어감


이후부터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생략



기본적으로는 다른 디스토피아물과 비슷하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먼저 단순히 세계관과 사회 구조를 기술하는 걸 넘어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영역에도 꽤나 서술했음


<멋진 신세계>나 <1984>도 그 체제의 의미나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찰했지만, <우리들>은 거기서 더 들어간 느낌


그래서 대부분의 분량이 사건이 진행되기보다는 주인공의 심리와 사색을 다루는 데에 할애된 느낌임


그 소재 자체도 현학적이고 깊지만 문체가 굉장히 난해하고 뒤죽박죽이라서 솔직히 따라가기 좀 힘듦 

약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 읽는 느낌도 났음


그래서 장르 소설로 읽고자 한다면 지금 기준으로는 진부한 소재와 설정에 지루하고 답답한 진행에 별로일 거임


순문학으로써는... 근데 난 문학 잘 몰라서 머라 평가를 못 하것네



암튼 그 외에 또 인상적이었던 게 '마지막 혁명'에 대한 언급


말했듯 <우리들>은 다른 디스토피아 작품에 비해 인간과 사회에 대해 좀 더 깊게 다뤘는데


이를 잘 드러내는 부분이 세계의 무한성에 관한 얘기임


소설 속 체계는 2백년의 전쟁 후에 겨우 완성된 완벽한 세계로 상정되고, 그래서 더 이상의 혁명은 없다고 함


마치 실제 주인공이 사는 나라가 물리적 벽으로 둘러쌓였듯, 이 체제는 세계가 유한하고 불변하며 영원하다고 함


반면 이에 대척하는 위의 레지스탕스 여자는 마지막 숫자가 없듯이 마지막 혁명도 없다고 하며, 자신들의 혁명도 마지막이 아닐 거라고 함


주인공은 그 당시에는 반박하지만, 결국 나중에 주인공도 이 우주가 유한하다는 증명을 들었을 때, 그렇다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냐며, 무한을 추구함


즉 단순히 이 세계가 무한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인 이상 끝없이 그 너머를 무한히 추구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하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그 특정 체제(쟈마친 입장에서는 소련)를 비판하는 걸 넘어, 인간의 본성은 무한을 추구하는 자유로움이며, 이를 억압하는 것은 그르다는 주장이 이 소설의 핵심 주제인듯 함




마지막으로 위 '무한성에 대한 추구'를 담은 구절을 올림



나는 벌떡 일어섰다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에요! 어리석은 짓이에요! 당신들이 계획하고 있는 게 혁명이란 걸 모른단 말입니까?"


"그래요 혁명이에요! 어째서 그것이 어리석죠?"


"어리석어요. 왜냐하면 혁명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우리의 -당신이 말하는 우리가 아니고 나의 우리- 혁명이 마지막 혁명이었기 때문이에요.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죠......"


조롱하는 듯한 날카로운 삼각형의 눈썹.


"사랑스러운 분! 당신은 수학자죠. 아니, 그 이상이죠. 철학자며 수학자예요. 그러면 이제 제게 마지막 숫자를 불러보세요."


"그게 무슨 얘기죠? 나...... 나는 이해를 못하겠어요. 마지막이라니 그게 어떤 숫자죠?"


"음. 마지막의, 가장 높은, 가장 큰 숫자 말이에요."


"그렇지만 I, 그건 말이 안 돼요. 숫자란 무한한 거예요. 도대체 어떤 마지막 수를 원하는 겁니까?"


"당신은 그럼 도대체 어떤 마지막 혁명을 원하는 거죠? 마지막이란 없어요. 혁명이란 무한한 거예요. 마지막 혁명이란 어린아이들을 위한 얘기죠. 아이들은 무한성에 겁을 집어먹죠. 따라서 그 애들이 밤에 편히 자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러나 도대체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은혜로운 분>을 위해서 말해 줘요. 일단 모두가 다 행복해졌는데 그럴 필요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만일...... 아니 좋아요. 그렇다고 쳐요. 그러고 나선 어떻게 되죠?"


"우습군요! 완전히 어린애 같은 질문이에요 아이들에게 무언가 끝까지 다 얘길 해주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꼭 이렇게 묻지요. 그리고 어떻게 됐어? 그래서?"


"아이들은 유일하게 용감한 철학자들이에요. 그리고 용감한 철학자는 반드시 어린이들이고요. 아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언제나 <그리고 어떻게 됐어?>가 필요해요."


"그러고 나서는 끝이에요! 마침표. 전 우주에 균등하게, 도처에 분포되어 있는 것은......"


"아하! 균등하게, 도처에! 바로 그것이 엔트로피, 심리적 엔트로피예요. 당신은 철학자니까 분명히 아시겠죠. 다양성만이, 체온의 다양성, 열량의 대비만이 생명을 구성한다는 걸요. 만일 우주 도처에 동일하게 차갑거나 동일하게 뜨거운 것만이 있다면 그것은 없어져야만 해요. 불과 폭발과 지옥을 위해서죠.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제거할 거예요."


"그러나 I, 생각해 봐요. 2백년전쟁 중에 우리의 선조가 했던 게 바로 그거예요......"


"오, 그리고 그들은 옳았어요. 천번 만번 옳았지요. 그들의 실수는 단 한 가지, 즉 얼마 후에 자신들이 바로 마지막 숫자라고 확신했던 거예요. 자연계에는 있을 수도 없는 마지막 숫자라고요. 그들의 실수는 갈릴레요의 실수였지요. 갈릴레요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믿었던 것은 옳아요. 그러나 그는 태양계 전체가 다른 어떤 중심의 주위를 돈다는 것은 몰랐죠. 지구의 진정하고 절대적인 궤도는 단순한 원이 결코 아니라는 걸 몰랐죠."


"그러면 당신들은?"


"우리는 마지막 숫자가 없다는 걸 아직은 알고 있죠. 그러나 어쩌면 그 사실을 잊어버리게 될지도 몰라요. 아니, 모든 것이 불가피하게 늙어 가듯이 우리도 늙어 가면서 잊어버리게 되겠죠. 그리고 그때 우리 또한 불가피하게 추락하겠지요. 가을날의 낙엽처럼, 내일모레의 당신들처럼....... 아니, 아니에요. 사랑스러운 분, 당신은 아니에요. 당신은 우리 편이에요. 우리 편!"


그녀는 활활 타오르고, 소용돌이치고, 번쩍번쩍 빛났다. 나는 그와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나를 온몸으로 포옹했다. 그러자 나는 사라졌다.......


p220-2




"(...) 나는 무한이란 없다는 것을 계산해 냈어요!"


나는 거칠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그래. 다시 한 번 말해 드리죠. 무한은 없어요. 만일 세계가 무한이라면 물질의 평균 밀도는 0이 되어야 해요.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평균 밀도는 0이 아니에요. 따라서 우주는 유한한 것입니다. 그것은 구형이며 우주의 반경의 제곱 Yv2=()x평균밀도예요. 그리고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수적인 계수를 산출해 내는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해하시겠죠. 모든 것은 유한하며 단순합니다. 모든 것은 계산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철학적으로 승리하게 되는 거죠. 아시겠어요? 존경하는 선생, 내가 계산을 끝내는 걸 막아 주세요. 소리를 질러 주세요."


무엇이 내게 더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발견인지 아니면 종말의 순간에 보여 준 그의 신념인지. 그의 손에는(그 때야 비로소 내 눈에 띈 것이지만) 공책과 대수판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해했다. 모든 것이 파멸한다 해도 내 의무는 (사랑스러운 미지의 독자에 대한) 나의 원고를 완성된 형태로 남기는 것임을.


나는 그에게 종이를 달라고 한 다음, 화장실에서 이 마지막 행동을 썼다....... 나는 고대인들이 시체를 파묻은 구덩이 위에 십자가를 놓듯이 내 글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연필이 떨리며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이봐요......"


나는 내 이웃을 잡아당겼다.


"이봐요, 내 말 안 들려요? 당신은 대답해야만 해요. 당신의 유한한 우주가 끝나는 곳이 어딥니까? 그리고 끝 다음에는 어떻게 되죠?"


그에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위에서 층계를 따라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p2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