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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
신과 인간, 삶과 죽음
길가메쉬. 피의 삼분지 이가 신과 같으며, 거대한 풍채가 마치 산과 같으나, 그의 생은 꼭 인간 삶과 같다. 죄를 짓고, 벌을 받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간의 피가 섞인 탓일까, 인간들 위에 군림한 탓일까. 어쩌면 신과 인간이 같기 때문 아닐까.
인간은 고된 노동에 지친 하급 신들의 반란 때문에 그들을 대신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엔릴의 실수는 폭동의 주모자 웨일라의 피를 재료로 쓴 것이다. 하급 신들의 목소리가 그랬듯, 인간들의 곡소리는 엔릴을 고통스럽게 했다. 인간이 신의 피로 빚어졌으므로, 신 같이 행동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신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신은 영생을 누리며,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신 웨일라는 죽었고 인간 우트나피쉬팀은 살았다. 생사 앞에서 신과 인간은 똑같다. 인간이 언젠가 죽듯, 신도 언젠가 죽는다. 인간은 수명이 다했을 때 죽는다. 신은 과연 어느 때에 죽을까.
사람들에게서 잊혔을 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그건 그저 잠든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나 신들의 이름과 이야기가 발견됐을 때 그들은 깨어난다. 신은 예전처럼 인간에게 자신의 말씀을 전한다. 그때 비로소 신은 깨닫는다. 신어가 신화가 됐을 때 신은 죽는다는 것을.
절대불변하다는 엔릴의 말도 말 그대로 옛말이다. 신들의 이야기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전락했다. 그것이 신의 죽음이라면, 인간의 죽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육신이 죽어도, 자신의 말이 본뜻으로 영원히 남는다면 그것이 영생 아닐까. 나는 말로써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찾은 불로초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렇게 내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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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맞어. 초야권 남발, 무모한 훔바바 죽이기 등등 비영웅적이고 인간적인 면모가 강하지. 길가메쉬가 아니라 엔키두를 죽인 것은 그것이 더 고통스러운 벌이라는 것을 신들이 알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더라.
생사는 결국 고대인한테나 현대인한테나 같은 문제니까. 이런 원론적인 주제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게 고전의 매력 같아.
좋지. 책 추천 가능?
ㄱㅅ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