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지아(Borgia)처럼 생각하면서 리트레(Littré)처럼 살겠다는 발상은 완전히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바로 그 불협화음. <선한 의도로 포장된 지옥.>
그는 단지 자신의 영광을 위해 뇌리를 혼란스럽게 하려 할 뿐이다.
한 푼의 이익도 위협하지 않는 격노들.
그는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든 것의 정반대이며,
되기를 바라는 그 어떤 것도 되지 못한다.
심지어 심리학자조차도 아니다.
내가 이 이름으로 부르는 이는,
기계적 작용을 아는 듯한 환상에 빠지거나,
어떤 개별 사례를 명료히 정리하는 이가 아니라,
[ ]의 심각하고 가혹한 과업 전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그는 깔끔하지 않으며, 장황하기만 하다.
지중해인도 아니며, 그리스인도 아니고, 로마인도 아니며, 조직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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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탁월한 인간이었다: 좋은 문헌학 학생, 메츠 성벽 아래서 훌륭한 간호사, 청년 시절 근면하고 절제하며, 뛰어난 교수였고, 병에 걸려도 쉽게 체념하지 않았으며, 미쳐버린 가운데서도 평화로웠다. 그의 삶은 진정한 기독교인 혹은 현인의 그것과 같다 ― 그리고 그가 부여받은 금욕은 어쩌면 현인보다 차라리 기독교적이다.
(영광을 갈망하는 문필가)
우연히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된 후
미쳐버린
그러나 그의 존재 중 가장 하찮은 일면이 가장 시끄러워진 듯하다. 대체로 부드럽고 규칙적인 이 체계는 난폭하고 과장된 망상적인 부분을 지닌다. 이 유순한 동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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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본능들. 해적도, 사티로스(색욕의 상징)도, 괴물도, 미식가도 아니다. (그의 요리는 시뮬라크르다.)
오직 하나: 위대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 —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엔 너무 고상하고, 그에 몰두하기엔 너무 순진하며, 그것을 포기하기엔 너무 나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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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 이 니체가 선과 악을 넘어선 적이 그렇게 적었다는 것 — 늘 지나치게 인간적이었고, 늘 기독교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바그너의 화신이기도 했다는 것 — 문학적인 철학 — 그토록 비(非)도취적이고, 학문적이며, 역사적이었다는 것 — 책 속에 파묻힌 인간 — 그 진정한 광기는 그가 알고 있는 것, 느끼는 것, 자기 자신인 것과 글로 쓸 수 있는 것을 혼동하는 데 있다.
어느 작가가 떨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독자의 자의적 조명에 — 그 희귀함에 — 좌우된다는 것을 알면서.
절필 선언하고 몇년 안되어 서신과 노트에 니체 이름이 등장하는걸 보면 그 즈음 열심히 탐독한듯
기독교에 사로잡혔다는 말은 반기독교적 사상에 너무 빠져든 니체를 비꼬는 의미인가?
니체가 기독교는 싫어했어도 예수에는 미친듯이 감탄해서 그런게 아닐까싶음. 예수를 사실상 초인에 가장 가까운 인간으로 뒀음. 다만 선한 자들 사이에서 삶을 살고 너무 짧게 살아서 대지(현세)를 사랑하지 못했다고... 도덕의 계보학에서도 유대교의 엄청난 승리로 노예도덕이 승리하는 변환점으로 대단하다고 적음. 말년에는 자기를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린자라 하고.
@ㅇㅇ(223.39) 그렇군 니체가 예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바울을 싫어했다는 얘기는 들어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