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어렸을 때 좋아하던 학습 만화에 미래의 세상을 상상하는 장면이 나왔다. 복제 인간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단 복제 인간이 존재할 것이라는 이야기만 할 뿐, 복제 인간이라는 것이 왜 필요하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내심 궁금해하던 질문이 있었다. 만약 나를 복제한다면, 나와 복제된 나 중에 누가 나일까? 물론 둘 다 나겠지.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돼. 나는 나 한 명이잖아. (아니, 그래야만 하잖아.) 그럼 복제된 나는 왜 필요한 거지? 복제된 나는 원래의 나를 뭐라 생각할까? 도와줘야 할 사람? 눈엣가시?
그 학습 만화의 제목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나를 보내지 마」를 읽으며 오랜만에 옛날에 품은 질문을 파고들 수 있었다. 「나를 보내지 마」의 세계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곳이다. 아프면 복제 인간으로부터 장기를 받아 교체하면 된다. 장기의 출처를 보면 가슴이 아파질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 출처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도록 교묘하게 설계돼 있으니 그리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복제 인간이 들려주는 복제 인간들의 삶을 읽었다. 장기를 내줄 수 있으면 네 번이나 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기원이 무엇이든 아무튼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다.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만 사랑할 줄은 알고, 미래가 정해져 있지만 꿈꿀 줄 안다. 차라리 그들 스스로 반기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너무도 뚜렷하다. 사람들은 헤일셤에서 받은 대우만 해도 그들의 분에 넘친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복제 인간 자신들도 주체성조차 교육 속에서 거세당한 사람들인데, 무슨 기적을 바랄까.
특히 작중에 악역이라 할 사람이 딱히 없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더욱 가슴 아팠다. (물론 루스의 따귀를 갈기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들었다.) 복제 인간들의 처우와 운명이 부당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헤일셤이 위선적인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제 인간들의 생명이 어떻게 기원했으며 어떻게 성숙했는지를 생각하면, 헤일셤의 태도는 정나미가 떨어지기는 해도 그들의 입장에서 최선인 것도 사실이다. 복제 인간의 의지는 아니지만 우생학에 악용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중의 설정을 바꾼대도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을 아예 금지하면 원천적으로 해결이 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병자들에게도 살 권리는 있다. 작중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그들 각자에게도 복제 인간만큼 뭉클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복제 인간이라는 생명의 기회를 줬다가 뺏는다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도축되는 동물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만 고기는 못 끊는 내가 새삼 이 세계관에 대해 비판을 꺼낼 수나 있을까.
결국 내가 이 작품으로부터 느낀 것은 생명의 무한한 무게 뿐이었던 것 같다.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났고 입이 있다면, '나를 보내지 마'라고 노래할 권리가 있다. 어쩌면 이미 도축장의 가축들도 제 나름의 언어로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하는 생각,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우리 인간이 가진 것과 진정 동등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삶이 있고 소중한 사랑이 있다면, 이별은 가슴 아픈 사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토미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 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서로 부둥켜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거야. 우리가 바로 그런 것 같아. 부끄러운 일이야, 캐시. 우린 평생 서로 사랑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영원히 함꼐 있을 순 없어." 소중한 삶, 그리고 소중한 존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자 하는 의지는 모든 생물에게 똑같을 것 같다. 우리가 그 의지를 꺾을 권리가 있을까. 그리고 운명이 우리의 그 의지를 꺾을 권리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실제로 벌어진다. 그게 세상이고, 우리가 살기 위해 하는 일이고, 그게 우리의 원죄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새삼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도 없고, 생명의 양분을 찾아 방에 들어온 모기를 용서할 생각은 없다. 단 생명의 무게에 대해서는 항상 진지하게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사람과 가축의 관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한쪽을 다른 쪽을 위한 희생물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서운한 일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그런 관계는 늘 있었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라지만, 지금도 남들보다 더 평등한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가엾은 청춘들을 장기짝처럼 전선에 보내고 있다. 지금도 사람을 돈으로 사서 가축처럼 부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삶만큼은 내 의지로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공고히 다져 본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독특하다고 느꼈던 매력을 짚으려 한다. 캐시는 작중의 설정을 직접 설명해 주지 않는다. '당연히 너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잖아.'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철저히 '복제 인간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정체성을 고집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정보가 부족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친절한 서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내게는 나름 좋게 작용한 수법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긴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부조리한 운명을 끝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복제 인간들의 심정에 더 처절히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마음을 더 자극했던 것 같다. 「나를 보내지 마」는 내가 처음으로 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라고 들어서 내심 기대를 많이 했는데, 내 기대에 아주 훌륭히 부응하는 작품이었다. 다른 작품도 이런 느낌이려나? 당장 그의 작품을 더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다음에 재회하게 되면 반가울 것 같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