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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보다” 시리즈가 나오면 수록작을 찾아서 읽어보는 편이다.

인터넷에 찾아서 전문이 나오는 작품도 있고 안 나오는 작품도 있다. 만약 찾아서 안 나오는 작품이 있으면 그냥 해당 호를 산다. 이 작품을 읽은 가장 첫번째 이유도 올해 “소설 보다” 시리즈 가을 호에 실렸기 때문이다. 이름보고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나오더라.

두번째 이유는 제목이 “히데오” 였기 때문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왠 이상한 사람이 히데오 코지마 팬픽이라도 적은 줄 알았다. 사실 차라리 그 편이 지금 읽은 소설 내용보다 더 재밌었을 것 같아서 아쉽다.

마지막 이유는, 알라딘 인상깊은 구절에 실린 내용을 보고 이 작품이 연극을 다룬 작품일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나는 희곡을 나름 좋아한다. 지만지에서 내는 존나 비싼 핑크 희곡집도 신간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찾아본다. 내가 꽁돈이 500만원 정도만 있었더라도 핑크 희곡집 다 긁어모아서 아름다운 흰색 책장에 박아뒀을텐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거지 새끼다. 책 10만원 사면 한 달이 간당간당하다. 당장 이번 달에만 책 15만원 긁어서 앞으로 15일간 점심은 존나 싼 파스타면에 소금쳐서 먹어야 한다.

뭔가 존나 잡소리가 많았다. 대충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는 국문학에 별 반감이 없다. 여성서사를 외치건 연대를 외치건 퀴어가 나오건 하다못해 딜도가 화자로 튀어나와도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작품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런 게 튀어나와도 꼬박꼬박 국문학을 챙겨 읽는다. 시발 적다보니까 이딴 지지부진한 변명을 해야한다는게 웃긴데 이런 병신같은 씹소리를 적지 않으면 꼭 물어뜯는 병신들이 나온다. 양해바란다.


일단 첫번째 실망스러운 점은 히데오라는 놈이 존나 불쌍한 피해자라는 캐릭터성에서 딱히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친구는 일본의 간악한 인종차별 이지메를 당하고 부모님까지 이혼한 불쌍한 피해자다. 존나 불쌍한 과거사는 넘어갈 수 있다. 일본에서 자이니치로 태어났으니 그럴 수 있지 뭐.

문제는 이 친구를 다루는 법이 뭐랄까 기분이 나쁠 정도로 조악하다는 점에 있다. 뭐라고 해야하나, 존나 평면적인 캐릭터가 가끔 ”헐“ 이나 ”ㅜㅜ“ 라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 그 친구를 재밌고 의외로운 인간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불쾌감이라고 해야하나. 

두번째 실망스러운 점은, 내가 근래 국문학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문제점 중 하나인데,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흉내내듯이 대사를 치는 것 같다. 나는 작가나 평론가가 아니니까 이 좆같음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뭐랄까, 작 중 등장하는 모든 인간이 카메라 앞에서 드라마를 찍는 듯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그 모습을 “지극히 현실적” 이라고 말하거나 생각할 누군가를 생각하면 존나 기분 나쁘다.

본 작에서 이런 작위성이 나타나는 부분을 하나 가져와봤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미 시작한 이야기를 끝까지 해야겠다는 듯이, 히데오는 제법 긴 이야기를 쉬지 않고 말했다. 그사이 해가 저물었고, 불그스름한 가로등 빛이 길 위로 드리워졌다. 우리는 소음방지벽으로 가로막힌 1호선 철길을 따라 외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래서 그 배역도 꼭 하고 싶었어. 나도 사람들을 좀··· 때려 주고 싶었어.”


내가 너무 꼬인건가?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모를 뿐이지 이 세상 연극인들은 다들 저렇게 말하는 걸지도.



세번째로 실망스러웠던 점은, 작중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간이 착한 놈과 나쁜 새끼의 이분법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내가 뭐 놓치고 있나 싶다. 한국 문창과는 레이먼드 카버나 체호프, 샐린저 같은 단편의 대가들이 어떻게 인물의 이면성을 능숙하게 다뤄왔는지 전혀 가르치지 않는단 말인가? 여류 작가만 하더라도 플래너리 오코너나 프랑수아즈 사강, 버지니아 울프처럼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들은 범접할 수 없는 대가겠지만, 나는 현 작가들이 이런 작가들의 수준에 “도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냥, 조금 인간다운 인간을 다뤄줬으면 할 뿐이다. 성해나는 조금 그런 인물을 적는다는데, 나는 그 사람 단편집을 제대로 안 읽어봤으니 노코멘트로 하겠다. 

사실 위에 적어놓은 대사를 마주한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다. 설마 이 작가는 이런 대사를 넣음으로서 자기가 인물의 양면성과 진지하게 마주봤다고 말할 생각인걸까? 만약 그렇다면 뭐랄까, 아쉽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네번째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작중작이나 연극 묘사가 좀 취약하다. 물론 그 작중극이 실제로 세상에 나왔다면 이 소설 전체보다 재밌는 작품이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거랑 이건 별개다. 사실 이게 모든 단점 중에서 제일 아쉽다. 엄청난 묘사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것보다는 더 길고 알찬 내용을 원했다. 그건 그렇고 요즘 국문학 보면 수상할 정도로 연극에 관한 소설이 늘었는데 무슨 단체로 드라이브 마이 카라도 관람했나? 그런 것 치고는 연극이나 희곡을 다루면서 어떠한 열정이나 세심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상당히 아쉽다. 작중극 내용을 보면 후안 마요르가를 참고하면서 꼼꼼하게 연극 파트를 짰으면 재밌었을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그냥 재미가 없었다. 딱히 이야기에 극적인 사건이 없어도 괜찮다. 당장 같은 국문학인 백의 그림자도 존나 밍밍한데 그건 재미있고 꽤 좋은 소설이었다. 근데 이 작품은 뭔가 중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척하면서도 속이 텅 비어있는데다가, 이야기도 밍밍하고, 흥미로운 표현도 없으며, 곤혹스러울 정도로 미묘하다. 애시당초 압도적인 선으로 묘사되는 존재들이 찌질하게 묘사되는 매력없는 개새끼를 뒤에서 씹고 참교육하는 내용에서 씨발 무슨 재미를 느끼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작가는 자신이 구축한 세상에 자신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 세상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구축한 세상에게 아양을 떨고 있을 뿐이다. 독자인 나로서는 작가가 아양을 떠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무언가에 의심을 품고 부서줬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을거면 적어도 확신에 찬 채로 밀어붙였으면 좋겠다. 


그럼 마지막은, 야스미나 레자가 모 작품에서 적은 대사를 인용하며 끝내볼까.


자기 작품을 보면서 웃고 있는 연출가의 모습만큼 꼴사나운 광경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