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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에 제목과 캐치프레이즈(혼을 담는 글쓰기)만 보고 글쓰기에 관한 책인줄 알았음
근데 이 책에서 글쓰기에 관한 글은 단 한 문장밖에 없더라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
레바나스와 찰스 테일러를 뿌리로 퍼져나간 관계론은 이제 라캉주의(지젝, 사사키 아타루, 백상현, 이종영, 홍준기 등등) 들뢰즈주의(네그리, 자바 마사야, 김재인, 이진경, 이정우 등등)에 비견되는 사상적 유행, 현상이라 볼 수 있을듯. 한국에서도 한병철이 관계주의에 숟가락을 얹히고도 했고, (지금은 관계론 책을안내는거 같긴 하지만) 신영복, 정지우 등등이 있음. 우치다 다쓰루도 관계주의의 물결에 속하는 사상가라고 볼 수 있을듯. 관계주의의 공통된 명제는 '타자와의 관계가 주체를 결정한다' 이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작가마다 다 다름.
타인과 관계해야 나르시즘에서 벗어난다는 정지우의 분노사회. 타인과 관계해야 성장한다는 엄기호의 단속사회. (기본적으론 찰스 테일러에 기반해서 담론을 전개함) 같은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관계론도 있다면, 우치다 다쓰루는 비교적 실용적인 노선인듯? 하여튼 이 책도 좋은 글쓰기란 타자를 위한것, 타자를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것, 이라는 논지를 치열하게 설득함 .
"‘마음을 다하는’ 태도야말로 독자를 향한 경의의 표시인 동시에 언어가 지닌 창조성의 실질이라고 생각합니다." - 24쪽
"인간은 자연스레 타자의 언어에 가상적으로 동일화하고 타자에 동기화하려고 합니다" -264쪽
결국 글쓴이의 논지는 타자(처음 글을 쓸때는 내면의 알 수 없는 타자와 미래의 예정된 독자)가 나의 글쓰기의 방향과 내용, 글의 난이도, 언어와 단어의 선택을 결정한다는 것임. 이걸 여러 예를 들면서 글쓰기는 오직 나만의 것이 아닌 독자와의 관계라는걸 설득함.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부르디외의 문화귀족 부분인데, 프랑스와 같은 유럽권의 계급은 문화예술로 형성되어 있고, 그러한 계급 언어 사용을 형성하며, 그러한 언어사용이 브루주아와 프티브루주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를 결정짓는다는 것임.
"롤랑바르트도, 푸코도, 데리다도, 라캉도 '어째서 여러분은 이렇게 어렵게 글을 씁니까'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깜짝 놀라서 이렇게 말하겠지요. '내 글이 어렵다고? 그건 네가 독자로 상정되지 않았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읽지 않아도 돼.'"
하지만 일본은 비계층사회며 그러기에 어렵게 씌여진걸 싫어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임. (한국도 비계층사회임. 내 생각에 한국와 일본에서 계급을 결정하는건 문화보단 자본인듯.) 우치다 다쓰루는 자신의 사상을 행동으로 실현하는 사람이라 볼 수 있음.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등등 철학가에 대한 사상을 쉽게 전달하는 서적을 썼으니까.
하루키의 브라질 연설을 인용하는 마지막 14장이 특히 감동적임. 민족의 역사가 우리를 구속하고 있지만 그것은 비극적인 일이 아니라는것.
마지막으로 사사키 아타루와 같은 말을 하는데도 논지가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게 재미남 ㅋ 다쓰루는 관계론자고 사사키는 라캉주의에 기반한 반관계주의에 가까우니 ㅋ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 dc App
그건 네가 독자로 상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좋은 글이다 그런데 네그리가 들뢰즈주의였나.. 처음 알았네
확실히 관계주의가 유행인갑다. 나는 내가 동양의 사상적 근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관계주의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다. 너무 분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겠디.